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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므 파탈Homme Fatale은 팜프 파탈Femme Fatale의 대꾸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타치오나 영화 고하토의 마츠다 류헤이처럼,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공동체와 개인의 운명을 파국으로 이끄는 뇌쇄적 매력의 남성들. 여성들의 혼을 쥐어짜고 그녀의 삶을 망가뜨리는 카사노바의 빛나는 미소. 첫눈에 그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욕망을 송두리째 무릎 꿇게 만드는 무소불위의 권력,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옴므 파탈은 그냥 잘 생긴 꽃미남 부류의 집합 이상의 그 무엇이다.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는 이 놀라운 생명체와의 조우는 낯익은 일상과 감각의 무료함을 흠씬 조롱한다. 어떤 빛나는 슬픔의 빛깔마저 지니는 그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눈동자, 그게 바로 옴므 파탈과 평범한 존재를 구분짓는 낯선 악센트인 게다.  

때로 이런 옴므 파탈은 그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종내 살해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한다. 고하토의 미소년 카노의 죽음을 보라. 옴므 파탈의 살해범들은 옴므 파탈의 매력에 무효화되는 자아의 경계선을 다시 찾으려는, 생존을 위한 음모자들인 셈이다.

생긴 게 하도 의뭉스러워 난 진작에 그런 옴므 파탈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면 내 생에 있어 그런 옴므 파탈을 만났는가 묻는다면, 잠시 긴 침묵의 공백 속으로 슬쩍 숨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

잠시 긴 침묵. 때론 그런 옴므 파탈을 조우하게 되었을 때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겠다 싶다. 내가 완전히 무효화되기 전에, 자아의 끈마저 미궁 속 어딘가에 잃어버리기 전에.

옴므 파탈과의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옴므 파탈, 그는 아름다움의 권력자, 도저히 찬탈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저 제논의 토끼인 게다. 옴므 파탈이 스스로 자신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옴므 파탈이 아니며, 우리는 곧장 노예의 환각에서 깨어나곤 한다.

치명적인 위험을 본질로 삼은 옴므 파탈과 타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꿈, 아침에 맞는 몽정 직전의 황홀, 혹은 소망욕구가 과잉된 상투적인 3류 멜러물 뿐이다.

옴므 파탈Homme Fatale을 만나거든, 그를 살해하거나 내가 파멸되는 것, 혹은 펀치 드렁크 같은 사랑을 가장하며 만화 같은 감수성으로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 가끔 난 내가 그런 육체를 갖지 못한 것에 역설적으로 안도하곤 한다. 실은 음모 파탈이 거의 대부분, 짧은 순간에 맞는 리비도 공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허무한 것이다.

나는 착한 남자가 좋다.



곡 : Water Garden, Jalan Ja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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