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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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저희가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안종주 기자님의 크낙한 은덕을 배반한 채 은혜도 모르는 배덕자로 낙오될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몰라봤어요.

그렇듯 근엄히 저희 잘못을 꼬집어주시니 그 황송한 인권 사랑에 모골이 다 송연해집니다. 게다가 런던의 소호 거리를 사뿐사뿐 즐거히 산책하시며 동성애자 송년 모임에 친히 기금까지 내주셨다니 그걸 몰랐던 저희들은 차제에 반성을 곱씹어 다시는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일을 하지 않도록 경주하겠나이다.

저희 잘못을 지적해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동성애자들의 앞날과 인권을 고려하여 쓰신 그 기사는 이후 액자로라도 표구해서 길이 보존하겠습니다.

, 라고 사과를 드려야 안종주 기자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거겠지요. 헌데 어쩌지요? 이런 투의 80년대식 신파를 졸업한 지 꽤 오래인지라 이런 식의 얼렁뚱땅 오리발에 이젠 제법 "면역력"이 생겨버렸답니다. 사과문을 내랬더니, 적반하장 격으로 자화자찬을 잔뜩 늘어놓으셨군요.

헌데 자화자찬만 있었더라면 조금 감동적이었을 거예요. 소호 거리를 거닐며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하는 이미지라니,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기 위해 둔 자충수가 워낙 칼끝 위의 헛발질인지라 안종주 기자의 기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네요. 대체 뭐하자는 심사인지 모르겠어요. 잘못했다, 내 욕 많이 묵었다, 고마해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참 코믹하게 궤변을 늘어놓으셨네요.

궤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궤변 : 내 기사 어디에 반인권적인 구석이 있는가?

본인은 정작 자신의 두 꼭지의 기사가 HIV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동성애자에게 조종을 울려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썼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이처럼 애처로운 변명이 또 어디 있을까요? 남성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섹스를 하고 있으며, 섹스의 패턴이 이성애자보다 더 자유로운 관계로 HIV에 대한 노출 정도가 더 경중하다는 사실은 거의 HIV에 대한 생기초입니다.

헌데 안종주 기자는 '여성 동성애자들도 동성애 관계로 에이즈 감염' 따위의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특화해서 보도하고 바로 뒤미처 '동성애자 헌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듯한 기사를 작성, 딱풀로 두 꼭지를 떡허니 붙여놓았지요. 영화에만 몽타쥬가 있는 게 아니라 신문 기사도 몽타쥬 법칙을 따르는 법입니다. 두 기사가 자아내는 호모포빅한 앙상블을 제발 두 눈 뜨고 보세요. 그게 어디 동성애자를 이롭게 하는 일입니까?

그래도 잘했다고 안종주 기자는 반론 글에 대고 "여성동성애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홍보가 더 중요하다." 는 거의 개그 콘서트 성 발언을 서슴치 않고 늘어놓으시네요. 세계적으로도 그 예가 드문 희귀한 사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게 안종주 기자의 길엔 동성애자를 이롭게 하는 일로 비춰지는 모양입니다.

빨갛게, 빨갛게 붉은 색 형광팬으로 그 특화된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려서 여전히 동성애자=에이즈라는 미신에 세뇌당한 대중들에게 대책없이 설파하는 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참인권입니까?

국립보건원조차 그 설문 내역 중 '여성 동성애자 감염 여부'에 관한 역학 조사의 미비점을 지적, 그것을 사실화하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지 않습니까?

예전에 간염은 물컵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는 미신이 팽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컵 따로 준비하느라 우리의 한국인들은 부지런을 떨어야 했었지요. 실제로 간염 바이러스가 물컵이라는 경로를 타고 전염될 수 있는 특이한 케이스가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데 지금 안종주 기자는 ‘물컵으로도 감염이 전염되었다! 물컵을 준비하고, 물컵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훈육을 시켜야 한다. 이는 방역 차원에서 그릇된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 물겁 예가 억울하지요? 허나 님은 기자이고, 특종 예감에 들떠 이 글을 세상에 내보냈다고 칩시다. 그래서 생긴 게 무엇입니까? 바로 95년 대한의사협회 등이 나서 부랴부랴 진화했던 ‘물컵공포증’이지요. 님은 지금 물컵으로도 간염이 전염된 특이 케이스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물컵을 두려운 눈으로 봐야 한다는 물컵공포증을 조장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새 그런 기사 내보내면 의사들한테 혼납니다.

그렇게 동성애자 인권과 HIV 감염 문제에 관해 온몸을 불태우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에이즈포비아를 고칠 일에 경주하고 게이 남성들에게 이쁘고 향이 좋은 콘돔을 주도록 힘쓰면 될 일이지, ‘여성 동성애자가 동성애로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 그것도 HIV 감염인과 조사자 간의 구두와 기술에 의한 확인되지 않은 ‘심증적 판단’에 기초한 특이한 케이스를 붙들고 물컵 장난을 벌이면 이 세상 물컵들 심히 괴로워지는 법입니다.

특종 예감에 들떠 물불 안 가리고 저지른 방화, 요거 이딴 식의 자화자찬 변명으로 진화될 것 같나요?


궤변 : 편견이 있는 설문 내용이 문제지 그것을 옮기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이 무슨 해괴한 이데올로기입니까? 한겨레에서는 그렇게 기자들에게 훈육한답디까? 아니면 안종주 기자만의 독특하고 세련된 방식의 변명입니까? 듣다듣다 이런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보네요.

잘못된 취재원, 편견에 사로잡힌 자료를 기사화하는 건 책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밖엔 되지 않습니다. 그대로 따따부타 앵무새처럼 자료를 읊어대는 것도 기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하기에 충분한 사항인데, 아예 문제가 있는 기사를 그대로 옮겼으니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기자로서 할 짓이 못되지요.

님은 이렇게 반론했지요.

"그 기사가 편견을 조장한다면 설문조사를 한 전문가가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이 담긴 설문조사표를 만든 것이 되며 설문에 응한 동성애자도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답변한 것이 된다. 과연 그런 것인가."

사실에 어긋한 자료를 취재하거나 그것을 기사화했을 때 이후 정정보도를 내거나 사과 기사를 내는 게 상식 아닌가요? 대체 이런 생기초 상식을 어디에서 찜쪄먹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나,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도 사기 사건의 공범일 수도 있지 않냐고 넌지시 '책임분담론'을 꺼내 사태를 호도하려는 그 민망한 술책에는 자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위험군'에 관한 에이즈퇴치연맹, 이주열 교수팀의 설문 조사, 방법, 그것의 외재화 방식에 당연히 문제가 있었고, 기사 보도 이후 사과문이 나오긴 했으나 이후에도 다각의 채널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의견 개진이 있을 것입니다.

허나 지금은 바로 당신이 문제지요. 반론이랍시고 내놓은 글 어디에도 님이 이주열 교수팀의 자료를 슬쩍 빼돌린 비윤리적인 작태에 관한 해명의 글이 없네요. 눈을 씻고 봐도 단어 한 줄 조차 그 부분이 없더군요. 어디에다 빼돌리셨나요?

이번에도 슬쩍 그 부분을 빼돌린 채 '나는 잘못 없다. 잘못을 따지다 보면, 그런 설문 조사를 한 사람들, 설문에 응한 HIV에 감염된 동성애자들에도 다 잘못이 있다'라고 으름짱을 놓고 있습니다. 말문이 다 막힙니다그려. 그건, 사기 당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길이에요.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생기초를 익사시킨 채,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비윤리적인 작태를 누락시킨 채 변명이랍시고 내놓은 이 반론글이 이미 '특종병'에 걸린 한 기자의 동성애자, HIV 감염인에 대한 식민화-수단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요, 무척 아름다운 참인권 기사예요. 몸에 좋은, 참 쓴 약이에요.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글이고, 당신의 이 훌륭한 반론글에 감화 받은 동성애자 단체들이 곧 연이은 사과문을 게재하겠지요.

황무지 2004-01-27 오전 03:45

ㅠㅠ ... 죽었다 깨어나도 난 못 쓸 조목 조목 따져 묻는 저 글발~!!... 감복해서 10번 죽었다 깨어나 다시 읽었습니다... 얼렁~ 얼렁 ~ 이 글을 만방에 떨쳐야 겠습니다...... 멋지다~!! 모던 보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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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