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31 홀릭 : 유니폼을 벗은 여자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썬가드

서른 한 번째이자 두 번째 레즈비언 커밍아웃 인터뷰어는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하 센터)의 활동가이자 엘지비티(LGBT)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홀릭’님이다. 십여 년 전 조용히 나타나 어느새 국내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한 사람이 된 그를 홍대근처에 있는 오가니제이션 요리카페 ‘슬로비’에서 만났다. 센터의 살림을 맡고 있는 꼼꼼한 활동가답게 그는 정확히 약속시간에 등장했다. 수줍은 듯 환한 미소와 함께..



# 첨엔 청소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상근자까지 흘러온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부탁드릴게요.
홀릭 : 네. 저는 홀릭이라는 활동명 쓰고 있고요,

코러스보이 : 혹시 본명도 이야기해주실 수 있어요?
홀릭 : 보통 게이들이 이름 안 쓰는 이유와 L(레즈비언)들의 이유가 좀 다른데요, 내가 원해서 지어진 이름이 아닌 것도 있고요, 너무 종교적이거나 여성적이거나 해서요, 사실 저는 중성적인 이름을 갖고 싶었거든요. 이름은 양은애입니다.

코러스보이 : 커밍아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었던 질문 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름 예쁜데요? ‘달려라 하니’의 고은애가 생각나는데.
홀릭 : (웃음) 어렵진 않은데요, 차라리 고씨면 괜찮은데, 저는 양씨니까요. 여자들은 직장에서 일할 때 김양 이양 이러잖아요. 예전에 다른 직장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양양’ 이렇게 부르는데 들으면 어감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별로 안 좋아해요.

코러스보이 : 그럴 수도 있었겠군요. 나이는요?
홀릭 : 나이는 뱀띠 77년생입니다.

코러스보이 : 굉장한 동안이신데 벌써 삼십대 중반을 살짝 넘기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나이네요.
홀릭 : 그렇다는데 저는 안 열리더라고요. (웃음)

코러스보이 : 지금 하시는 일이?
홀릭 : KSCRC라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활동가로 상근하고 있고, 서울 엘지비티(LGBT)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고요. 크게 두 가지죠.

코러스보이 : 직업활동가로 살기가 쉽진 않을 텐데요, 특히 한국 LGBT커뮤니티에서 전업활동가는 드물잖아요. 꽤 오래전부터 센터에서 일하는 걸로 아는데, 어떤 계기로 용감하게 시작하셨는지.
홀릭 : 용감하긴요, 잘 모르고 그런 거죠.(웃음) 센터에 첨 들어가게 된 건, 성적 정체성을 깨달을 때 쯤? 저는 되게 늦게 깨달았어요. 스물 여덟 살 때. 보통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을 치게 되잖아요. 그렇게 쳐보니까 제일 첨에 나온 게 ‘버디’ 더라고요. 예전에는 잡지였고 그게 인터넷 커뮤니티로 바뀌었던 건데 그 모임에 들어갔다가, 어느 날 센터가 사무실 이사를 간다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말 용기를 내서 갔어요. 그때 낙성대 근처 사무실이었는데 저밖에 안 왔어요. 청소해줄 사람이. 그래서 첨엔 청소를 하다가 상담을 받다가 자연스럽게 반상근하고 상근자까지 흘러온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그 전에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어요?
홀릭 : 네, 다양하게요. 처음엔 전화국에 다녔는데 거기가 옷이 좀... 여자들 유니폼이 있는데 파란색 치마 입고 창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고, 또 영화를 좋아해서 메가@@ 극장에서도 일하고, 사무직으로 무역회사에서도 일하고, 짧게짧게 일했던 거 같아요. 센터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주방에서.

코러스보이 : 요리를 잘하세요?
홀릭 : 아뇨.(웃음) 거기 그냥 들어갔어요. 하고 싶었고, 일을 구해야 됐고. 그래서 들어갔는데 처음에 들어가면 되게 간단한 거 시켜요. 샐러드 세팅해서 나가는 거, 그담에 피자 미는 거 그 담에 스파게티로 들어가는데, 후라이팬을 돌려야 하는데 그게 너무 무거워서 그만뒀어요. 게다가 홍합을 겨울에 10킬로 넘게 씻어야 되는데 그게 주먹질이 아예 안 돼서 아, 이일은 내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그만뒀죠.

코러스보이 : 요리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랑 비슷한데 진짜 그렇게 힘들군요.
홀릭 : 네 힘들어요. 근데  재밌기도 했어요.

코러스보이 : 아무리 재밌어도 신체적인 조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못하는 일도 있네요.
홀릭 : 영화관에서도 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스텝으로 들어갔는데 매니저로 일하려면 이년 동안 스텝으로 일해야 자격이 주어지거든요. 근데 처음엔 조건이 없었는데 갑자기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제한이 생겨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억울하게 일만하고 지원도 못하고 그만뒀죠.

코러스보이 : 어떻게 보면 주류사회 직업 전선의 모순을 몸으로 다 겪고 나서 활동가가 되신 거네요?
홀릭 : 네. 지금 내가 다시 겪는다면 막 ‘왜 이 제도가 지금 생겼나.’ 이렇게 항의라도 해봤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살짝 벗어난 질문이긴 한데, 게이들은 제복이라면 열광하는 사람 많거든요. 경찰이나, 소방관이나 뭐.
홀릭 : (웃음) 저도 소방관이나 경찰복이면 입고 싶은데요. 치마만 아니면 입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레즈비언들 중에서도 그런 제복 판타지 있는 사람들이 좀 있나요?
홀릭 : 있죠. 특히 교복. 근데 내가 입느냐 상대방을 입히느냐는 취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코러스보이 : 아, 그럼 본인은 싫고 상대방 입히는 건 좋아요?
홀릭 : 저는 한복 판타지가 있어요.(웃음) 여자 한복은 아니고 남자 한복.

코러스보이 : 얼굴이 작고 어깨선이 아담하면 한복이 잘 어울린다고 하잖아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홀릭 : 잘 안 입어봤어요. 어렸을 때 가난하기도 했고 색동저고리 같은 거 잘 입는 집도, 제사 지내는 집도 아니고 그래서요.

# 롤모델이 없으니까, 그런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코러스보이 :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청소하다가 시작한 센터 활동을 지금까지 하고 있고, 영화제 활동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홀릭 : 센터는 2006년에 들어갔고 영화제는 2007년부터 스텝으로 도와주면서 하다가, 지금은 국내작품 프로그래머 맡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프로그래머면 스텝들 중에서도 나름 최고로 선망하는 위치 아닌가?
홀릭 : 아시다시피 우리 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와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 간에 상하관계가 없고 보수가 지급되는 영화제도 아니고 해서요. 즐기는 영화제고 그냥 직함은 역할이라 생각하고 평등하게 일하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KSCRC는 급여가 나오는 직장이고 엘지비티 영화제는 직업 외에 활동하는 무대인데 그 두 가지 일이 부딪치거나, 영화제 일 때문에 센터 일에 지장을 받거나 하지는 않나요?
홀릭 : 처음에는 제가 센터 일부터 시작했잖아요. 그러다가 이제 영화제 일이 커져서 비슷해지는 시점인거 같은데, 다행인 것은 센터 풀네임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잖아요. 그래서 ‘문화 활동’에 해당하는 걸 축제기간에 센터 활동가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일에 모두가 다 소홀해 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서로 뭐라고 하진 않지만, 고민이 될 때는 있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각각 있으니까.

코러스보이 : 센터에는 전업 활동가가 몇 명 정도 있어요?
홀릭 : 작년까지는 다섯 명이었는데 지금은 세 명이죠.

코러스보이 : 친구사이 같은 경우에는 대표랑 사무국이 있고 또 운영위원회가 있어서 서로 견제도 해주고 보완도 하면서 일을 하는데 센터는 어떤가요?
홀릭 : 센터는 대표 사무국장 이렇게 직함에 따라 나누어 지지 않고요. 상근활동가 세 명의 합의 체제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자원봉사자나 다른 인력풀들은 좀 있나요?
홀릭 : 센터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한데요 각 프로젝트별로 다양한 인력들이 구성되어 있어요. 퀴어 아카데미, 퀴어 아카이브, 퀴어뱅, 레인보우링 등 프로젝트 마다 체제의 성격에 맞게  운영위원들, 기획단들, 자원활동가들, 상담가들이 있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에요

코러스보이 : 그렇게 나누어서 활동하면 예산 같은 거 나눌 때 팀별로 긴장이 있지 않나요?
홀릭 : 아뇨. (웃음) 워낙 돈이 없어서요. 나눌 것이 거의 없죠. 프로젝트 진행비는  시민사회단체 기금 같은  아름다운재단이나 국가인권위 사업  같은 외부 기금을 받아서 진행을 하구요. 센터의 상근 활동가들의 인건비는 외부 강의 와 원고료를 통해 보충하고 있어요. CMS (자동이체후원) 은 운영비로 쓰고 있는데  그것도 많이 부족한 편이죠.

코러스보이 : 그렇군요. 실제로 CMS는 인건비 사무실 유지비가 다겠네요.
홀릭 : 네. 그것도 모자라죠.

코러스보이 : 대중조직이 아니라서 좀 다를 수는 있지만 센터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요? 예를 들자면 대중과의 소통 혹은 활동가내의 커뮤니케이션 아니면 연대활동의 물리적인 피곤함이라든가 어떤 게 제일 어려워요?
홀릭 : 센터만의 문제는 아닌데, 게이들은 커밍아웃한 사람이 좀 있는데 레즈비언은 거의 없잖아요. 게이들은 홍석천이라는 모델 트랜스젠더는 하리수가 있을텐데, 모델이 있고 없고의 장단점이 있지만 레즈비언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없잖아요. 대중들에게 떠오르는. 운동하면서 힘든 점은 롤모델이 없으니까 그런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근데 어떻게 만들어질지도 모르겠고.

코러스보이 : 내부에서 나올 수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활동가든 커뮤니티든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에.
홀릭 : 음... 그럴 수도 있고 잘 모르겠어요. 어찌되었던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예전에 홍콩인가 대만 다큐를 봤는데 거기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조건이 예를 들어 ‘부모님이 다 안 계셔야 하고...’ 같은 조건들이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사회적 소수자라면 여자 아래에 레즈비언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별받는 지점이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거 같아서, 그런 걸 많이 느끼고,
그리고 문화 컨텐츠 면에서도 게이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생산되고 있잖아요. 얼마 전에 작년엔가 드라마 하나 한고은 나온 거 방영했었잖아요. L드라마(레즈비언드라마)는 겨우 그거 하나인데도 다시보기도 못하게 하고...
  
# 영화제가 더 커져서 퀴어영화 제작도 지원해주고 하면 좋겠어요.



코러스보이 : 올해 엘지비티 영화제에서는 좋은 영화들 좀 상영하나요? 5월 24일부터죠?
홀릭 : 5월 24일에서 30일까진데 안 그래도 그 이야기 나올 거 같아서 갖고 왔어요. 브로셔.(웃음)

코러스보이 : 작년에는 대중적인 게이 영화가 좀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올해 개막작은 게이영화이고 굉장히 대중적이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유치하기 쉽진 않았겠어요.
홀릭 : 우리 영화제가 규모가 큰 영화제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처음 상영하게 되는 프리미어나 아니면 좋은 영화들은 우리 영화제에 주려고 하지 않고, 배급만을 원하려 한다거나 아니면 돈을 너무 많이 부르거나 해요. 그래서 초창기에 프로그램을 짤 때는 되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선정되었다가도 영화제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다보면 이건 이런 이유로, 저건 저런 이유로 현실적으로 힘들겠다. 이렇게 다 못하게 되는 아쉬움이...

코러스보이 : 작년부터 ‘어게인 퀴어무비’라는 섹션이 생겼잖아요. 개인적으로 ‘난 새로운 영화 보고 싶은데, 왜 자꾸 기존에 개봉 했던 걸 또 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때요, 반응은?
홀릭 : 작년에 처음 만들어진 섹션인데 의외로 반응이 되게 좋아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일부러 여기저기서 찾아서 보지만 보통 관객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퀴어영화들은) 메인 영화관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하다가 내리거나 쉽게 찾아볼 수도 없고요. 작년에는 ‘싱글맨’ 같은 경우도 많이 들었어요. 올해는 ‘종로의 기적’도 또 하죠.
그리고 영화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국내에서 레즈비언 영화들이나 퀴어 영화가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만들기도 힘들고 열악하고 그렇잖아요. 우리 영화제가 더 커져서 퀴어영화 제작도 지원해주고 하면 좋겠어요.

코러스보이 : 아. 저도 영화제에서 영화제작 같은 걸 지원해주는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홀릭 : 네. 그런 거 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못하지만 조금씩 될 거라고 믿어요.

코러스보이 : 지금도 영화하시는 분들 중에 영화 만들자는 제안을 센터로 하거나 하진 않나요?
홀릭 : 있죠. 있어요. 며칠 전에도 인터뷰 있었어요. 작년에 ‘하나님과 만난 동성애’라는 책을 교화랑 같이 ‘슘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냈잖아요. 그 책을 보고 기독교 영화 찍고 싶다고 찾아오신 거예요. 근데 아시다시피 일반 사람들이 이쪽 영화를 찍으려면 과장된 거나 극적 스토리를 바라거나 종교랑 잘 지내보자, 뭐 이런 사연들을 다큐로 다루려고 하는데 그걸 만들려면 ‘종로의 기적’처럼 본인이 커밍아웃하고 얘기해야 하고... 거기다 크리스찬이면 되게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런 거 하나도 생각안 하시고 와서 그냥 인터뷰하면 되지 않겠냐고 해서...
사실 연분홍치마(인터뷰이 주.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27번째 커밍아웃 인터뷰 이혁상 편 참조.)가 처음 이 커뮤니티에 들어왔을 때도 똑같이 회의를 하고 활동을 하며 시작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퀴어들과 같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근데 일반 영화 하시는 분들은 그냥 여기 와서 한두 달 친해지면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영화 이야기를 접으면서 올해 영화제 추천작 하나씩만 해주세요. 참. 추천 하라고 하면 그것만 보고 다른 영화를 안 볼 수도 있으니까 홀릭님 취향에 맞는 영화를 꼽아주신다면?
홀릭 : 게이영화는 개막작 Keep the lights on. 이구요 테디 베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이고 아시아 프리미어 입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에릭과 변호사 폴의 뜨겁고 애절한 러브 스토리 이고요 그리고 L영화는 원제는 The secret diaries of miss Anne lister 이고  앤리스터 다이어리라는 영화입니다. 150년 전 실존했던 앤 리스터가 쓴 암호로된 비밀일기가 발견되면서 만들어진 극영화입니다. 그거하고 폐막작인 '왕자가 된 소녀들' 이요..영화에 나오시는 이옥천 선생님도 가능하면 모시고 싶죠.

# 넌 이제 분홍색도 입니?



코러스보이 : 그러면 이제 커밍아웃 이야기를 해볼까요?
홀릭 : 음... 우선 저희 엄마한테 했고요. 가족 얘기 먼저 하면, 그 전에 엄마랑 저랑 살았고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자마자 이혼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 없는 상태에서 살다가, 엄마가 좋으신 분 만나서 재혼해야 하는데 전 그때 이미 많이 컸고 해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어요.  
제가 정체성을 늦게 깨달았지만, 첫사랑을 오래 했어요. 그 사람은 나쁜 여자? 그런 사람이었는데 ‘너는 그냥 너야. 라면서 쥐었다 놨다 하는 사람 있잖아요? 지금 보면 바이였던 거 같은데.’ 근데 한 9년 동안 그러니까 엄마는 이미 눈치는 채고 있었던 거 같고. 어렸을 때부터 남자친구는 없고 여자친구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스물 여덟 살에 독립할 때 커밍아웃을 했죠. 첫사랑 때문에 한 건 아니고, 그 때쯤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접고, 센터에 가서 정체성 상담을 받았는데 ‘보통의 이성애자들은 자기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라고 딱 한마디 들었어요. 그때 모든 고민을 접은 거 같아요. 더 이상 이런 고민 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엄마 저 레즈비언인거 같아요.’ 하면서 확 질렀는데. 근데, 어머니가 전도사시고 기독교 집안이고 그래서 딱 들은 말이 ‘지옥에 가라.’ 이 말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각자의 방에 가서 펑펑 울었는데 한참 있다가 엄마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은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도 있고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너는 이미 이쪽으로 치우쳤는데 어떡하겠니.’ 이런 식으로 넘어간 거 같아요. 그러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집을 나와 독립을 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보통의 부모님 이야기 들어봤을 때 커밍아웃을 해도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거나 서로 그걸 다시 노력들을 안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한번 했는데 굳이 또 꺼내서 상기시켜주고 싶지 않은 마음인거죠.

코러스보이 : 혹시 본인의 커밍아웃 때문에 어머님이 불행해졌다는 생각이 드나요?
홀릭 :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예전에 센터에서 가족모임의 초동을 만들어보자 해서 포럼을 하고 부모님을 위한 가이드북 내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때 일본의 국회의원을 모셨어요. 여자 레즈비언이었는데 그때 커밍아웃 스토리를 얘기해주시는 어머님이 같이 오셨어요. 그때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문 밖으로 나오지만 가족들은 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라고요. 부모님이 딸이랑 그렇게 가족들도 똑같이 충격을 받는다고요.
그래서 저는 확 질렀던 것 보다는 방법이 준비되고 좋은 커밍아웃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때는 꼭 집 나가려고 얘기 한 거처럼 시점이 그래서.
사실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수도 없이 내가 이성애자인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부모님도 똑같이 자녀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얼마나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겠어요. 내가 왜? 내 자녀가 왜? 내가 혹시 태교를 잘못해서?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잖아요. 지금도 엄마가 되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제가 예상하기로는 ‘쟤가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아버지라는 상을 갖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하시는 것도 같고. 사실 그런 게 아닌데.

코러스보이 : 다른 방식의 커밍아웃을 고려한다면 확 지르는 방식이 아닌 어떤 식으로 하면 좋겠어요?
홀릭 : 그니까요, 근데 확 지르지 않았으면 내가 또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서 주변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관련 책을 던져놓는다거나 동성애 관련 영화를 늘어놓는다든가 하는 밑밥을 깔아놓잖아요. 근데 저는 엄마랑 그 전에 많은 이야기를 해서 엄마가 알고 있었을 거 같은데 굳이 그런 밑밥을 깔았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은 했어요. 뭐 이야기 좀 하자고 불러내서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할 수도 있고...
근데 뭐 지금은 이게 잘된 커밍아웃이구나 그래요. 예전에 집에서 생활했을 때는 엄마는 여성스러운 머리나 스타일을 계속 원하셨기 때문에 그때 세팅파마 같은 걸 계속 했어요.(웃음) 진짜예요. 제가 커뮤니티 첨 들어왔을 때 머리가 길었어요. 그때 여긴 머리 길고 여성스런 팸이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머리 자르고 나서 부치들한테 원망을 많이 들었는데. 사실 전 머리 긴 게 별로...
그래서 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머리를 잘랐어요. 그걸 엄마가 바로 보시고 깜짝 놀란 거죠. ‘너가 그건 건 알겠는데 그렇게 티를 내야겠니?’ 그렇게 화를 내시고 육 개월 동안 전화도 안 하고 그랬는데 또 그 다음에는 똑같은 머리인데도 ‘어머. 그 머리 한 미용실 어디냐?’ 이런 식으로 바뀌는 거예요. 엄마의 마음도 가족들의 마음도 왔다 갔다 하시는 거 같아요.
지금은 제가 막 위축되어서요, 얼마 전에 분홍색 남방입고 갔거든요. 그랬더니 ‘넌 이제 분홍색도 입니?’ 그래요. ‘아, 이제 엄마가 아는데,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 난 왜 또 이러고 있을까’ 이랬었죠.
커밍아웃 하고 나서도 처음엔 어머니가 ‘아는 전도사님 아들 있는데 선을 보지 않겠느냐’ 이런 이야기 하고 그랬는데 결혼 얘기는 점점 줄어들고 포기하시는 건 같아요. 이제는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솔로였을 때보다 커플이 되니까 엄마가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 사랑하려고 활동을 했는데 애인이랑 벚꽃 구경 갈 시간도 없구나.



코러스보이 : 지금 커플이세요?
홀릭 : 네. 활동하다가 만났어요. 센터에서 퀴어뱅 활동인 십대 거리이동 상담하러 나갔을때 그 분이 자원 활동 신청해서 만났고  절 꼬시셨어요

코러스보이 : 한명이 활동하고 다른 사람은 활동을 안 하면 불편한 건 없어요?
홀릭 : 그런 문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지금 마포구에 사는데 근처에 엘들이 많이 사니까 동네 친구들이 있잖아요. 동네 친구들 활동가들 중에 이게 정형화된 케이스는 아닌데, 활동가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같이 사귀는 사람의 조건은 말이 통해야 하고 활동을 같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첫 번째고 그 다음 조건은 한 쪽은 직장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둘 다 활동가이거나 서로 가난해지면 힘들어지는데요. 한쪽은 그냥 일반 직장인이거나 그래야 생활이 되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혹시나 한쪽에서 활동을 못하게 하는 건?
홀릭 : 시간을 많이 빼앗기잖아요.  ‘사랑하려고 활동을 했는데 애인이랑 손잡고 벚꽃 구경 갈 시간도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미안하죠.
며칠 전에도 ‘나 뭐하고 열두시에 뭐하고 세시에 뭐하고...’ 그러니까 ‘마지막 들어오는 시간만 얘기해.’ 그러는 거예요. 웃음.

코러스보이 : 같이 살기 시작한 게 얼마나?
홀릭 : 삼년 되었어요. 제가 커밍아웃 하고 집에서 나오고 나서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도둑이 열 번이나 든 거예요.
근데 처음엔 제가 몰랐어요. 조금씩 조금씩 없어지는 좀도둑이었어요. 시계가 없어지고 카메라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가져갈게 없으니까 집을 다 망쳐놓고 나간 거죠. 그래서 그 집에서 나와서 애인이랑 합친 거죠.

코러스보이 : 살림을 합치면 물건에 대한 소유권 때문에 어려운 게 많죠? 집도 한 사람의 명의로 할지 공동명의로 할지 등.
홀릭 : 법적인 체계가 없어서 집을 누구 명의로 할 것인가 하는 건 보증금 많이 낸 사람이 하게 되죠.(웃음) 같이 영화제 일하는 동생이랑 며칠 전에 이야기했는데 우린 애인이랑 헤어지면 진짜 가방 하나만 들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서로 애인한테 잘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웃음) 헤어질 땐 정말 너무, 동거하다 헤어지는 건 잔인한 거 같아요. 되게 치사해지고. 애완견 같은 거 있으면 어떡해요.

코러스보이 : 그렇죠. 아이는 없지만, 애완동물랑 많이들 같이 살던데. 혹시 애완견 있어요?
홀릭 : 고양이 좋아하는데요. 얼마 전에 고양이 영화 보고나서 고양이 밥 주거든요. (기르고 싶었는데) 애인이 알러지가 있어요. 애인이 고양이냐 나냐 선택을 하라고 해서 그냥 길고양이 밥만 주고 있어요. 그냥 집 앞에다 놔두면 오는데 안 그러면 쓰레기봉투 너무 많이 뜯고 안 좋은 거 많이 먹어요.

코러스보이 : 지금 애인은 엄마한테 소개했어요?
홀릭 : 제가 같이 사는 친구라고 얘기 했는데 엄마들 심리는 정말 모르겠어요.  명절 때 가면 ‘ 명절 때 같이 와.’ 그러고 밥 먹을 때도 ‘걔는 밥 먹니?’ 이렇게 물어보고 챙겨주시는 거 같아요. 직접 언급은 안하지만 알고 계시는 거 같고, 다행인 게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헤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서 양쪽 집안에 커밍아웃을 했느냐 하는 것도 헤어짐의 원인이 될 거 같아요.
제가 되게 복이라고 느끼는 건 건 그 친구 어머니도 어느 날 찔러보시더래요. 엄마가 먼저  ‘너 걔 사랑하는 거 같더라. 요새 그런 사람 많은데 너무 우울해하지 마라.’ 그래서 그 친구도‘엄마 난 안 우울해.’ 그러면서 얼떨결에 커밍아웃 한 케이스거든요.

코러스보이 : 부럽군요. 다른 친구들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은?
활동을 많이 하니까 다른 일반 친구들 만날 시간도 별로 없어요. 사실은 아, 이렇게 너무 동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고등학교 친구도 잘 못 만나고

# 게이들 중에 레즈비언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편견을 깼으면 좋겠고.



코러스보이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자면요?
홀릭 : 사실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커밍아웃 인터뷰를 할까 말까. 이런 게... 가족들한테 커밍아웃을 했지만 이런 거 하면 이후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걱정하고 있으니까 센터 사람들이 ‘너 시네21 인터뷰도 했었잖아. 왜 이런 걸 두려워해. ’ 그러면서.

코러스보이 : 그러게요. 말씀도 은근히 재밌게 하시는데요, 평소에 얌전한 이미지라서 단답형으로만 말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시 짬밥이라는 게 무섭군요.
홀릭 : (웃음) 사실 저 초등학교 때는 화장실에 간다는 말도 못하는 아이였어요.

코러스보이 : 그런 사람이 활동가가 되다니!
홀릭 : 맞아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게이들 중에 레즈비언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편견을 깼으면 좋겠고... 참고로 저 얼굴에 상처가 있지만 조폭과 싸우다 그런 건 아니고,(웃음) 고3때 벽유리를 모르고 건너가다 부딪쳐서 유리를 깼어요. 그것 때문에 오해를 받아요. 너 고등학교 때 놀았구나, 날라리였구나 이러고. 또 집회를 가면 사람들이 집회 때 다쳤느냐 그런 오해도 받았죠.
예전에는 L커뮤니티와 게이커뮤니티가 자주 안 어울렸는데 요새는 아니지만. 더 친해졌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레즈비언 커뮤니티에도 이런 커밍아웃 프로젝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홀릭님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또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가녀린 목소리와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졌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에게서는 남다른 뚝심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가 원하는 레즈비언 롤모델의 모습은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본인에게서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홀릭님이 활동하고 있는 공간들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의 활동을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http://www.kscrc.org 로 LGBT영화제가 궁금하신 분들은 http://www.selff.org 를 방문하시기 바란다.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홀릭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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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