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24 정욜 : 군대에서 생긴일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열심히 활동하는 게이들’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정욜 씨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초창기 활동가이면서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굳건히 활동을 지속하는 열혈남입니다. 우연하게도 그의 이름은 터키의 전제정치에 항거하는 영화의 제목과도 같아요. 욜 씨는 자신의 소신에 관한 부분에서는 강직한 논리를 선보이는 달변가인 반면 유머도 지니고 있어요. 그와 나누었던 동인련과 어머니 그리고 군대 이야기 등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라이카 : 안녕하세요. 눈도 오는 날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질문 많이 받아 보셨을 텐데요. 이름이..

정욜 : 특이하지요.(웃음)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길’이라는 뜻이래요. 아버지께서 노동자시거든요. 예전에 중동 지역에 공사를 다니시면서 생각한 이름이라고 하시더군요.

라이카 : 이번 인터뷰의 주제는 ‘열심히 활동하는 게이들’입니다. 이 주제를 생각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분이 욜 씨였어요. 제가 친구사이에 나올 때에도 동인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고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역시 열혈 활동가이십니다. 활동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아 저 친구는 참 열심히 사는 구나’ 라는 느낌을 매번 받곤 하는데요.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정욜 : 솔직히 회원들에게도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데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음, 우선 동인련 활동은 오래하다 보니까 익숙해진 측면이 있구요, 직장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써야한다는 강박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새롭게 활동의지들이 갱신되더라구요. 그리고 하나의 안건으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게 단박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다보니 열심히 활동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라이카 :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욜 씨가 예전에 직장을 잠시 쉬실 때, 어떤 회의에서 만났었는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시면서 활동도 하고, 또 활동에 대한 공부도 하시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그 때 반성도 많이 들었어요.

정욜 : 그런 적이 있었나요.(웃음) 아, 2004년도 겨울 쯤에 잠시 직장 일을 쉬었던 기억이 나네요.

동인련의 터줏대감


라이카 : 정욜 씨 하면 동인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동인련의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지금 동인련 활동하신 지가 얼마나 된 거죠?

정욜 : 1997년도에 동인련이 만들어졌는데 그 때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였거든요, 그 해 겨울에 가입을 했으니까 횟수로는 13년 정도 된 것 같네요. 그런데 중간에 군대에 다녀오고 어쩌고 한 걸 빼면 본격적인 활동은 2000년 정도부터겠네요.

라이카 : 그럼 특별히 동인련이라는 단체를 통해 활동해 봐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정욜 :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극심했었어요. 근데 다니던 학교에 떡하니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동성애자인권연대 전신)’ 이름으로 대자보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몰래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찾아가게 된 거죠. 인권이라는 말이 중요했다기보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거 같아요. 아마 ‘친구사이’를 먼저 알았다면 ‘친구사이’에 나갔을 수도.(웃음)

라이카 : 혹시 대학 때, 학생회 활동은 하셨나요?

정욜 : 예. 그 경험이 동인련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냥 모여만 있는 다고 활동이 되지는 않잖아요? 학생회 활동했던 경험이 동인련에서도 조직을 꾸리고 색깔을 잡아나가게 된 데 영향을 준 거죠.

라이카 : 살짝 비교를 해 본다면요.

정욜 : 학생회는 그 당시만 해도 조직이 탄탄했고 선후배관계가 치밀해서 외롭다거나 불안함도 없었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았어요. 근데 초창기 동성애자 단체는 상황이 좀막막했잖아요. 사람들도 없고 한 명 빠져나가면 휘청휘청대고.(웃음) 책임감도 더 막중했던 거 같아요.

라이카 : 동인련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레즈비언 활동가와 게이 활동가가 지속적으로 활동을 같이하는 부분일 거예요. 어떤가요?

정욜 : 동인련도 레즈비언 활동가가 많은 건 아니에요. 수적으로 보면 레즈비언 활동가가 10% 정도거든요. 그리고 동인련은 원칙상이나 추구하는 바가 게이, 레즈비언을 떠나 다양한 정체성의 회원들이 활동하는 거구요. 하지만 전혀 부침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죠.(웃음)

라이카 : 어떤 부분이....

정욜 : 사소한 거로는 뒤풀이에 게이바를 주로 가야 한다는 거도 될 수 있겠고 내부적으로 보면 용어사용 문제도 걸리죠. 같이 오래 활동한 레즈비언 활동가들에게는 저게 농담이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레즈비언 활동가들에게는 게이 용어들을 좀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동인련이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레즈비언 활동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고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는 부침의 문제는 계속 같이 고민하고 안고 가야하는 문제겠지요. 근데 요즘은 성별보다는 나이문제가 더 심각한 거 같아요.

청소년의 공간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요.


라이카 : 나이요? 세대 문제?

정욜 : 동인련에는 청소년 친구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성인 회원분들과 부딪치는 부분들이 좀 많아졌어요. 근데 저는 자연스럽게 그런 부딪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이카 : 기왕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요즘 다른 사회 단체들도 보면 젊은 친구들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동인련은 옆에서 보기에 끊임없이 청소년, 대학생 또래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것 같더라구요. 그 원동력은 뭘까요?

정욜 : 그래 보이나요. 우리도 나름 힘든데.(웃음) 청소년 친구들은 들어오고 나가는 게 굉장히 활발히(웃음) 이루어지구요. 10명이 들어왔다고 해도 활동가로 남는 건 1명이 될까하는 정도. 그래서 오히려 20대 초반 활동가들은 거의 없고 주축 활동가들은 거의 20대 후반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단체가 젊은 친구들이 좀 들어오는 이유를 생각하면 일단 우리 단체 출발이 대학모임이었잖아요. 그 이유도 있을 거고 그리고 청소년 친구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아요. 그 친구들 또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고 그 친구들이 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제시할 뿐이죠. 그 친구들의 공간에 욕심을 부리고 간섭하지 않으려고 해요.

라이카 : 13년 간 활동을 해오면서 무수히 많은 사업과 사건사고(?)가 있었을 거잖아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었다면요.

정욜 :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죠.(웃음) 근데 뭐니뭐니해도 처음 활동을 시작한 97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제가 했던 일이 제가 다니는 대학 근처의 대학들에 동인련 관련 대자보를 붙이러 다니는 일이었거든요. 원칙은 자기가 다니는 대학은 붙이지 않고.

라이카 : 아웃팅의 위험 때문에요?

정욜 : 예.(웃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 때 몇 시에 누굴 만나서 어느 대학에 무슨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는지가 다 기억나요.

라이카 : 그렇겠네요. 그 당시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정욜 : 그 때의 열정과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활동들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선해요.

라이카 : 그럼 앞으로 꼭 해 보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요.

정욜 : 음, HIV, 에이즈 문제인데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감염인들을 배척하고 배타하지 않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감염인이든 성소수자든 서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물론 장기 프로젝트가 되겠지만요.

라이카 :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간의 활동가운데 동인련에서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HIV, 에이즈 문제인 것 같은데요.

정욜 : 맞아요, 저를 포함한 동인련 회원들이 그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구요,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윤가브리엘 회원 때문이겠죠.

라이카 : 구체적으로 말해 주신다면요.

정욜 : 윤가브리엘 회원을 만나면서 그 분이 갖고 있는 아픔, 감염인이 겪어야 하는 구조적인 사회 문제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까이 있는 회원들이 에이즈 문제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건 몇 명이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고민을 확대하다 보니 규모도 좀 커지고 몇 년이 흐르게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에이즈 문제가 동성애커뮤니티에서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잖아요. 동인련에서는 제작년부터 감염인들이 동성애커뮤니티를 터부시하는 부분까지도 껴안고,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더 이상 그들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라이카 : 아무래도 이 문제는 게이들하고 연결고리가 더 클 것 같은데요, 레즈비언 활동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정욜 : 오히려 레즈비언 활동가들이 더 적극적이고 소통의 중심이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게이 감염인들이 게이 활동가들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 레즈비언 활동가들이 그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잘 해주고 있고 그리고 에이즈 문제가 게이커뮤니티에서만 맴도는 부분을 아쉽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활동하려고 해요.

십 년 동안의 대화


라이카 : 자, 이제 개인적이 부분으로 넘어가 볼게요. 이 인터뷰가 커밍아웃이라는 주제잖아요. 혹시 집에는 커밍아웃을 하셨나요?

정욜 : 쭉 계속 하고 있습니다.(웃음)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라이카 : (웃음) 그럼 최초의 시도는..

정욜 : 의도하지 않게 군대에서 군의관에 의해 부모님께서 알게 되었죠. 그리고 아무래도 군대 기간이다 보니까 어머니하고 편지를 굉장히 자주 주고받았어요. 정말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그 내용은 영화 ‘종로의 기적’팀에 다 넘겼으니 참고하세요.(웃음)

라이카 : 그 뒤로는요?

정욜 : 그 후로 제대도 하고 한 3, 4년 후 우연히 어머니랑 산책을 하다가 제가 어머니에게 물어봤어요. 그 때 군의관이 뭐라 그랬냐고요.

라이카 : 그랬더니요.

정욜 : 군의관이 그랬대요. 군대에 이런 애들 많다고, 나가면 다 멀쩡해지고 이런 걸로 군대 뺄려는 애들 많아서 귀찮다고.(웃음) 그런데 그 당시가 홍석천 씨가 매체에서 커밍아웃 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직접 신문기사도 스크랩하시고 자료도 찾아보시고 그러셨더라구요. 근데 또 흐지부지 시간이 흘러갔죠. 그러다가 세 번째는 최현숙씨가 종로구 후보로 나왔을 때 인터넷 매체에 제가 얼굴을 공개하고 최현숙씨와 대담하는 프로가 있었어요. 근데 그걸 제 동생 친구들이 보고 결국 어머니까지 알게 된 거죠. 그 때 어머니가 정말 실망했다고 문자를 보내시고 저도 하루 종일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무척 힘들었어요.

라이카 : 어머니께서는 욜 씨의 성적 정체성이 지나가는 걸로 생각하셨군요.

정욜 : 어머니께서는 아닐 거다 지나갈 거다 라고 생각한 데다가 그 때 제가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였기 때문에 더 충격을 받으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와 인사동 찻집에서 따로 만났어요. 그 날 어머니께서 많이 우셨는데 저는 이런 과정을 또 반복하기 싫어서 나름 작정하고 말씀드렸죠. 20대에 세 번에 걸쳐 제가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는 어머니도 이해를 해주셔야 하고 앞으로 40이 되어도 난 계속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구요. 어머니는 그게 맘이 많이 아프셨나 봐요.

라이카 : 그래서, 이제는..

정욜 : 아직도죠. 어머니랑은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지만 그 문제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부딪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욕심 부리지 않고 꾸준하게 하기로.(웃음)

라이카 : 그럼 직장에서는 말씀 하신 적이 있나요?

정욜 : 직장에서는 말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그렇게 친밀한 관계들이 아니라서요, 그냥 여직원들과 그런 얘기가 나오면 노코멘트 하는 정도예요.

라이카 : 그런데 ‘종로의 기적’이라는 커밍아웃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잖아요? 흥행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정욜 씨를 알아볼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출연하시게 된 건가요?

정욜 : 우선은 많은 사람들의 설득이 있었구요.(웃음) 설득한 사람들에 대한 제 신뢰가 있었구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나의 모습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출연자체에 대한 고민보다는 제 모습이 게이의 표준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라이카 : 욜 씨는 어떤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거죠?

정욜 : 직장을 다니는 게이.(웃음) 전 커밍아웃이 사회적 관계나 맥락 속에서 생각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아무래도 ‘종로의 기적’은 4명의 게이에 대한 이야기이고 중점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전 직장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거예요. 그래서 아웃팅에 대한 염려보다는 제가 직장에 다니는 게이 모습의 표준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이 좀 드네요.

군대에서 생긴 일


라이카 : 아까 살짝 얘기가 나왔었는데요, 군대 얘기를 좀 해 볼까 해요. 군 병원에 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뭐였나요?

정욜 : 동인련 활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었고 그 당시에 애인이 있었어요. 애인이나 동인련 친구들이 편지도 많이 보내줬었는데 아무래도 그 당시에 제가 고민들이 많았어요. 제 정체성과 결부된 두려움도 있었구요. 그 와중에 부대에 회식이 있어서 사람들이 술을 좀 과하게 먹게 되었어요. 근데 입대 동기가 나가자고 그러더라구요.

라이카 : 나가요? 음, 이건 뭔가요? 얘기가 군화 거꾸로 신는 방향으로 가나요?

정욜 : (웃음) 그게 아니라 나와 동기는 부대 철조망을 넘어 서울까지 오게 된 거죠.

라이카 : 헉!!?? 탈영을..

정욜 : 예, 부대가 파주였거든요, 주황색 국방부 츄리닝을 입고 결국 그 친구랑 동인련 사무실까지 같이 오게 되었어요.

라이카 : 회원들이 난리가 났겠네요.

정욜 : 사무실이 발칵 뒤집어졌죠.(웃음) 근데 그 때 당시 애인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24시간 안에 복귀하면 큰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정이 되기 전에 부대로 다시 들어갔죠.(일동 웃음) 복귀 후 중대장 그리고 선임들과 상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중대장과 부대 간부들은 좋은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부대에 저 같은 전례가 없다보니 저를 병원으로 보내게 된 거였어요.

라이카 : 병원은 어땠나요?

정욜 : 결국 큰 군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병원이라기보다는 감옥이었죠. 창문마다 삼중 철제 장치가 되어 있고 처음에 갔더니 옷을 벗기고 비아냥대더라구요, 야, 너 호모라며 어쩌구저쩌구.

라이카 : 오히려 없는 홧병을 만드는 병원이로군요.

정욜 : 근데 제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게 아니니까 거기서 주로 중증 환자 밥타주거나 발작 환자가 생기면 간호사 도와주고, 거의 준 간호사였죠. 하루가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요.(웃음)

라이카 : 얼마나 있었나요?

정욜 : 한 달 반 정도 있었는데, 결국 그 과정에서 원하지 않게 어머니가 알게 되셨고 성분도 모르는 약도 먹고.

라이카 : 원하지 않는 약도 먹였다구요?

정욜 : 예. 나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그런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하루 종일 내가 환자들 뒤치다꺼리를 다 했는데 밤에는 독방에 가서 혼자 자야 한다는 거였어요.

라이카 : 무슨 의도인지 딱 감이 오네요.

정욜 : 그렇죠.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죠. 게다가 군의관이 나보고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누구 하나 건드려서 사고치고 나가라고 비아냥대고. 정말 어처구니없었죠. 그래서 오기가 생겼고 결국 자대로 돌아가게 되었죠. 그 후 만기 전역할 때까지 관심사병으로 지내게 되었어요.

라이카 : 부대 전출은요?

정욜 : 자대로 오니까 모든 병사들이 다 알게 된 거잖아요. 그래도 전출은 가기 싫었어요. 이미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어 두려운 것도 없었고(웃음) 도망가기도 싫었구요. 근데 자대 선후임들은 나를 잘 대해주었고 오히려 내가 부대에서 관심사병으로 괴로움을 겪는 걸 안타까워해 주었어요.

라이카 : 그 뒤로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정욜 : 나중에 상병 때 쯤에 부대가 철책 근무를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근데 근무는 두 명이 들어가잖아요. 대대장이 부르더라구요. 사고 안 치고 근무 설 수 있겠냐구요. 그냥 여기 남아서 컴퓨터나 배우라며.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철책 근무 들어갔고 거기서 만기 제대했어요. 제대하는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웃음) 그래서 지금도 군 문제와 관련된 상담자나 피해자를 보면 많이 안타깝고 그래요.

5만원의 눈도장


라이카 : 예, 장시간 고생 많으셨어요. 개인적인 아픈 얘기까지 해 주셔서 넘 감사드리구요. 마지막으로 혹시 하실 말씀 있으면 쫘악 해주세요.

정욜 : 제가 오늘 직장 상사 결혼식엘 다녀왔어요. 요즘은 결혼식장에 축의금만 보내고 잘 안가는 편인데 오늘 결혼하신 분은 친분이 두터워서 가게 된 거죠. 근데 제가 이 차림(청바지에 후드티)로 갔는데 거기서 직장 상사들을 보니까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눈도장만 찍고 밥 먹고 가라는 제안에도 약속있다며 뿌리치고 나왔어요. 근데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일동 웃음) 그래서 동인련 사무실에 와서 일처리 하면서 김밥 한 줄 먹고 있는데 이게 뭔 짓인가 싶더라구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엔 경사는 없고 조사만 있잖아요. 나도 머지않아 진심으로 하객으로 참여하고 싶은 결혼식, 축의금이 아깝지 않은 결혼식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걸 위해 내가 할 일이 참 많겠구나 생각했죠.(웃음) 아, 그리고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후원도 좀 마니마니 해 주십사하는.(웃음)



동성애자인권연대 : http://www.lgbtpride.or.kr
후원계좌 : 국민은행 042601-04-000151 예금주 정욜


끝.

정욜 씨의 메일 주소는 yol78@hanmail.net 입니다.
이 인터뷰의 사진과 내용은 정욜 씨와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