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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와 시장: 남성 소비시대 2
[필름 2.0 2006-04-18 20:50]
                                   
                         
        

남성의 아름다움 추구에 대한 터부가 사라지면서 이와 관련한 시장 역시 폭증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무슨 섹슈얼’과 같은 신조어는 성 정체성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새 언어를 창조하는 호모포비아의 교묘한 표현방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십 년 전만해도 명백한 이성애자이자 엄숙한 남자들이 볼록한 눈이나 얼굴 주름 때문에 칼을 댔노라고 시인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대중 앞에 메이크업한 얼굴로 '나타나야 하는' 엔터테이너들이나 정치인들이야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라고 우겼지만, 남자들, 특히 나긋나긋하지 않고 엄격해 보임으로써 탁월해진다고 믿는 ‘사내놈’들이 그런 ‘짓’을 할 턱이 없었다. 그러니 보슬거리는 수건이나 반바지를 걸치고 간이용 침대에 누워 스킨케어를 받는다거나 왁싱을 위한 예약을 한다는 건 다리 사이에 달린 크지도 않은 살덩이가 똑 떨어질 소리였다.

여성성 그 자체인 장신구도 마찬가지다. 새ㄲ ㅣ손가락에 반지를 낀 전문 갬블러들이나, 운동선수, 몇몇 연예인들 말고 XX 염색체를 가진 이들에겐 다이아몬드 따위를 지닌다는 건 말도 안됐다(퍼프 대디며, 엘튼 존처럼 진짜 남자라고 부르기 모호한 부류는 논외로 치자. 그러나 누구라도 다이아몬드를 몸에 매단 이상, 강한 남자라도 뻐기고 싶어 할 거다. 주주총회나, 간부회의장이라고 해도). 그러니까 ‘여성적’이고 어딘지 위협적인 분위기의 스파에 간 남자들은 그야말로 아주 어색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 스킨케어 제품에 에센스, 모이스처라이저, 심지어 아이크림을 ‘일상적으로’ 바르는 남자들이 흔해졌다는 건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피부과에 들르는 남자들의 숫자가 여자들의 3분의 1에 육박하며, 코를 고쳐야겠다고 선언하는 ‘뻔뻔한’ 남자들이 부지기수이며, 모든 세대를 망라한다는 뉴스도 마찬가지다. 속속들이 창간되는 남성 라이선스 잡지들이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따사로운 목소리로 남자들만을 위한 성지(聖地)들을 소개하는 동안, (비슷한 남자들 사이의 친목과 개개인의 취향을 세심하게 만족시켜주는) 남성 전용이라는 기치 아래 수치심 없이 자신의 피부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장소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올봄, 지프의 뒤 칸에 17개의 공구박스를 가지고 다니는 마초이자 가라테 유단자이기도 한 친구와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마음에 드는 가방을 보곤 소녀들이 꿈에도 그리던 핸드백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흥분상태를 보였다.

“와! 나 진짜 몇 년 동안 이런 걸 찾았어. 여기 좀 봐. 핸드폰 주머니도 있잖아. 끝내준다, 정말.” 나는 그의 아랫입술이 감동으로 떨리는 걸 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화이트 린넨 셔츠를 찾지 못했을 땐 실망하기까지 했다. 사실, 오랫동안 남자들의 룩은 군중 속에서 튀지 않는 게 법이었다. 남자들은 옷을 입었을 때 지나치게 개성적이거나 창조적으로 보이는 게 무섭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야 안심하니까. 그러므로 그는 발달된 흉근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착 붙는 티셔츠를 메신저 백을 가로질러 매 가슴 근육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조차 질겁했었다. 그는 “거기 계집애들. 나 멋지지 않아?” 라고 외치는 옷을 입기보다는 거세당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도 남자됨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들을 현실적으로 거스르는, 목구멍을 앗쌀하게 넘어가는 소주 대신 호가든을 마시고, 골프 셔츠를 테일러드 셔츠로 바꿔 입으며, 희미한 복근과 희고도 매끈한 뺨과 문득 주름이 사라진 눈두덩을 가진, 임꺽정과 존스와 제임스 본드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종족이 되었다. 아, 그야말로 급격한 도약이다.

그러나 남자가 쇼핑하는 능력과 안목이 높아지고 있는 게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의 조언 없이도 무엇을 사야 할지 분명히 아는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에게 ‘패션이라는 행위’는 여전히 낯설다(하긴, 인류학적으로 남자는 여자와 아이들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옷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적었다). 여자들은 소비에 관해 언제나 남자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역시 남자들은 약하다). 게다가 남자들에겐 쇼핑할 때도 골프장이나 헬스클럽처럼 사교적 감성이나 소속감이 중요하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 익숙하다는 느낌말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넥타이, 벨트, 셔츠, 화장품 같은 남자를 위한 제품의 주요 구매자는 여자다. 굵은 체크무늬의 셔츠, 포켓 스퀘어, 최고급 시계 같은 대범한 아이템을 살 때는 여자의 결재가 필요하다.

지구력도 문제다. 남자들이 견딜 수 있는 쇼핑 시간의 최대치는 기껏 한 시간이 안 된다. 더 이상이라면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여자들은 에스컬레이터, 계단, 엘리베이터를 통해 원하는 물건이 있는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지치지 않는 능력이 있다. 여자들에게 쇼핑이란 조직적이며 사회적인 채집활동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들에게 쇼핑은 목적이 뚜렷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무엇, 사냥을 하듯 속전속결로 해치워버려야 하는 요구, 명확하고도 단순한 임무의 수행에 불과하다(물론 패션에 민감한 남자들, 그러니까 숙련된 채집가들, 또는 여자친구나 부인을 둔 남자들이야 느긋하게 세일을 기다리면 충분한 보상이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한 중년 남자가 태연한 얼굴로 화장품 가게에 가서 점원에게 말한다. “얼굴에 주름살이 너무 많아서 죽겠어요. 나이도 별로 많이 먹지 않았는데. 주름살을 없애는 화장품 있으면 좀 권해 주시겠어요?” 점원은 그에게 몇 가지 제품을 보여 준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다음, 그중 한 가지를 사거나, 전부 다 산다. 이건 공상이다. 아니 망상이다. 대다수 남자들이 아무 주저 없이, 혹은 그런 행동이 남자다움을 다치게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화장품 가게에 가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다. 화장품은 아무리 시대가 발달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개명해져도 남자에겐 여전히 금기로 묶여 있었다. 물론 여자들은 오래 전부터 남자들이 몰래 자기 화장품을 ‘빌려’ 써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남자들도 화장품을 필요로 하고, 그들도 피부를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요즘 남자들은 노골적인 ‘그루밍’을 통해 지금까지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피부 관리의 효용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여성의 영역이던 ‘미백’까지 맛본 데다 그 이상의 난이도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제한적인 ‘특권’층 남자들의 세련되고도 화려한 ‘남성적 뷰티’가 아니라, 거리 어디서나 보게 되는 보통 남자들의 평균적 약진이다. 왜 이런 원대한 변화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레알 마드리드의 한 미드필더가 남자들에게 확신(너무나 여성적인 범주였던 것들을 즐기면서도 여전히 남성적 신임을 유지할 수 있다는)을 갖게 해줬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이성애자이자 지저분했던 ‘피해자’들이었던 남자들이 제모를 하고 눈썹을 다듬는 조류에 휩쓸렸을 뿐이라고? 그런데 그런 ‘피해’를 입고도 불편해 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우리가 받은 의무교육이나 선택교육의 영역에 남자들이 자신을 가꾼다는 것에 대한 공식적 커리큘럼은 없었다. 그러나 관습에 복속되지 않은 채 자신을 현명하게 존중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서울 강남 어딘가에서 구찌나 에르메스의 새로 바뀐 라인에 대해 30분쯤 ‘구라’를 치거나, 지나치게 코팩을 하는 바람에 콧등에 모공을 잔뜩 열고 있는 패션 피플들만은 아니었다. 피팅룸 안에서 조용히, 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들, 어떤 것이 남자를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만드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남자들은 반드시 존재했었다. 대량 생산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특정 부류, 혹은 특정 직업의 남자들에게 쇼핑은 하나의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무슨 무슨 섹슈얼’과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어감이야 그럴 듯하지만 여자 같은 남자들과 남자다운 남자들 사이에서 모호한 의미를 지니는 불편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성을 분류하는 현대사회의 관습이야말로 ‘무슨 무슨 섹슈얼’ 혁명과 관련된 진짜 문제다. 그건 성문화의 유동성을 일깨우기 위한 구실로 빚어진 환상에 불과하다. 언제나 방어적이었던 남자들이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남성 우월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확실히 사람들은 메트로섹슈얼이 호모섹슈얼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그건 숱한 비즈니스의 경영자들이 게이에 대한 시각이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동승하길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조류들을 정의하는 귀여운 신조어들은 호모포비아의 교묘한 표현방식과 같다. 성 정체성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새 언어를 창조해야 하는 갑작스런 필요-이성애자로 용인되는 사회적 행동이나 기준을 명백히 재정의하는 동시에 동성애자들을 안전하게 반대편 부류로 몰아넣기 위한-는 새로운 호모포비아인 셈이다.

그렇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별의별 미디어에 끝도 없이 등장하며 폭발적으로 주시 받던 이 용어가 무시해도 될 만한 잡음으로 전락한 건 아니다. 분명 재능 있고 잘생긴 데다 건강하기까지 한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의 큐티클을 정리하고, 여자친구보다 더 자주 머리 모양을 바꾼다는 사실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패션과 스타일을 자부심과 개성으로 결부 짖는 언어로 여자와 여자 같은 남자들, 즉 모든 섬세한 계층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아낸 비즈니스 종사자들은 남자들의 소비와 관련해 좀 더 간들간들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판매를 위한 남성성’이랄까. 현재 남성성을 정의하는 기준은 확실히 일(사냥과 채집 같은)에 근거했던 예전과 달리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게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즘 남자들은 아버지 세대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더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더 젊어 보인다. 남자들의 DNA가 달라졌달까, 유전적인 형질이 변했달까. 그러나 세면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수도꼭지를 고치는 일에 능란한 새로운 남자들은 자신을 가꾸는 것이 미덕이었던 고대 용사들의 추억 위에 오랜 자가 검열을 통해 창조된 명백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근원이 무엇이었건 새로 개화한 총명한 남자들을 위한 새로운 사조는 상호 소통을 넘어 시대와 스타일과 인간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남자의 고추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작고 푸른 알약이 전 세계 ‘안 서는’ 남자들에게 혁명적인 구원이 된 것처럼,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남자들만의 지혜는 명백한 의미로 이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승리의 노래는 아직 이르다고 해도.
이충걸(GQ KOREA 편집장)         



취생몽 2007-03-26 오후 23:56

오, 재미있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동감했습니다만, 일련의 현상을 모두 호모포빅으로 연결시키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몽사랑 2007-03-27 오전 02:43

몽 님, 무사하셨군요.
토요일 밤 연약한 몽 님이 우왁녀 인가봐~ 양에게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몽사랑은 솔직히 첫 단락을 읽다가 깜박 졸았답니다.
몽 님이 모두 읽으셨다니 꾹 참고 저도 내일 까지 완독하기로 하겠습니다.
몽 님, 사랑합니다.

돌아온 추적걸 2007-03-27 오전 03:59

몽사랑 = 주기적으로 쪽글 발작질이 일어나는 칫솔. 확률 300%, 개말라네 다 쓴 치약 건다.

취생몽 2007-03-27 오전 04:36

다 읽으시면 레포트 10장 쓰셔서 제출하세요 ^_^

아류같니? 2007-03-27 오전 05:53

호호호...원래 그 동네 애들이 쫌 우악스러워요...
아류년을 봐도...깔깔깔깔~~~

돌아온 추적걸 2007-03-27 오후 13:53

아류같니? = 아류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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