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구조나 구성에 따른 지각적 인식과도
다르고, 그리움, 슬픔, 즐거움 등의 감정과는 달리 특정한 장소에서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느낌에 대한 개념이어서 많은 심리학자 및 현상학자, 건축가, 지리학자 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뚜렷한 연구적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실존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와 발맞추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단어중에 하나가 3rd Place라는 것이다.
이 장소는 집도 직장도 아닌 공간이지만 개개인이 편안한 감정을 느끼며 업무상의 일도
개인적인 일도 처리할 수도 있는 장소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3rd Space는
개개인이 편안함을 느낀다면 어떤 장소라도 상관이 없으나 오늘날 대다수의 이 3rd space는
카페테리아나 레스토랑 같은 편안하고 Open 되어 있으며 사교적이면서도 공적인 성격을
띄는 공간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일까? 10여년 전의 카페는 차마 밖에서는 가부장제적 한국사회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없었던 여성들이나 유학물 좀 먹어서 혹은 당시에도 개방적인 시각을
보유해서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남성들의 커플 들이 쌍쌍이 데이트하는 장소로
눈씻고 봐도 혼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은 찾아보기 없었던 반면 오늘날의 카페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와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열어두고 뭔가에 열중인 모습을
왕왕 찾아볼 수 있다.
특히나 일부 사람들은 카페가 아니면 뭔가를 하지 못하는 카페 중독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중의 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인 것 같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들어간 대학원 연구실은 책상 네개가 따닥 따닥 붙어있는
좁고 폐쇄적이며 상호 비간섭적인 공간이었다. 어느조직에서든 늘 친한 사람 한둘은
있었는데 왠일인지 이 연구실에는 그다지 정이 가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에 연구원들이
많지도 않은 관계로 늘 혼자 있는데다가 인터넷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허비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앞에 테라스의 느낌이 아주 좋은 카페를 발견하였다.
봄 가을 내내 늘상 테라스에서 작업을 하면 Open되어 있는 환경에서 일을 할때도
휴식을 취할 때도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는 일주일에 세번 이상을 하루종일 머무르는
경우도 생겼으며 카페 종업원들이 내가 평상시 마시는 커피까지도 알아서 내주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겨울이 와서 발생했다. 사실 테라스는 마음에 들지만 카페의 내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새로운 카페를 찾아야만 했고 평상시 친구들과 밥먹을 때
자주가는 삼청동에도 가보고, 학교 근처의 카페들도 몇군데 가보고 종로, 대학로 등
자주가는 곳을 돌아다녀봤지만, 경관이 마음에 들면 노트북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없고, 노트북을 쓸 수 있으면 장소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드는 상황...
오늘도 일전에 아는 친구와 와본 명동 중국대사관 뒤쪽의 카페에 와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사관 뒷뜰 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건만 좁디 좁은 명동의 복잡한 거리밖에
안 보이는 반대편 쪽에서만 전선 아웃렛을 찾을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일할 때 이러한 편안한 느낌의
장소는 매우 중요한데 겨울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집중도 안되고 글도 잘 안풀려 넋두리 하는 심정으로 잡문을 끄적여 본다.
햇살이 잘 드는 큰창 옆 테이블에 노트북을 꽂아서 쓸 수 있는 아울렛이 있고
창을 통해 나무들과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며, 편안히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는
푹신한 소파와 요깃거리가 되는 신선하고 그리 비싸지 않은 샌드위치와
맛있고 짙은 커피를 파는 카페를 하나 발견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