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왕의 남자
[중앙일보 2006-01-23 21:04]
[중앙일보 이철호]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천박한 욕망이자 생식 수단으로 업신여겼다. 소크라테스도 아름다운 청년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미셸 푸코는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최고의 사랑 표현은 동성애"라고 단언한다. 아테네에서 미소년은 당연히 숭배 대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얼짱' 아도니스와 나르키소스가 그런 인물이다. 너무 아름다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미소년들이다.
동성애 잣대는 시대마다 다르다. 중세 때에는 신의 섭리를 벗어난 범죄였다. 교회법으로 엄하게 다스렸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76년 동성애 혐의를 받았다. 그는 외모를 기준으로 제자를 뽑기로 유명했다. 젊고 예쁜 제자들 중 제대로 된 예술가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다빈치에 대한 투서는 꼬리를 물었다. 지금도 모나리자를 비롯한 그의 걸작에는 동성애 의혹이 여전하다.
최근 동성애 논쟁은 침팬지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유인원진화 과정을 분석한 명저 '털 없는 원숭이'나 '이기적인 유전자'는 침팬지 세계를 철저한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사회로 묘사한다. 침팬지 수컷은 권력과 피에 굶주려 있다. 침팬지 세계는 성(性) 또한 엄격한 위계질서로 짜여 있다.
그러나 1997년 미 에모리대 프란스 드 월 교수는 보노보 원숭이(피그미 침팬지)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소개했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 원숭이는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이성애(異性愛)나 동성애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성관계는 생식을 넘어 평화를 유지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최근 영화 '왕의 남자' 돌풍이 거세다. 연산군과 광대 사이의 동성애가 줄거리를 이룬다. 의학적으로 그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기도 전에 동성애는 어느새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동성연애자의 군입대나 동성애 영화 상영을 놓고 주(州)마다 입씨름을 벌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타조.갈매기.도요새.돌고래 등 470종 이상의 동물에서 동성애를 관찰했다. 지금도 뉴기니의 일부 부족은 아들에게 동성애를 유도한 뒤 성인식을 치른다. 그러나 '왕의 남자'영화처럼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에게만 눈길을 빼앗기는 게 걱정이다. 자칫 외모 지상주의로 흐를 수 있다. 남성의 외모집착증을 아도니스 콤플렉스, 지나친 자기 사랑은 나르시시즘이라 한다. 둘 다 치료받아야 할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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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해 줄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