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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험 근거, 게이 청소년들의 연애담 판타지로 풀어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인터넷에 ‘김조광수’를 치면 가장 많이 뜨는 연관 어휘들은 아직도 ‘백분 토론’, ‘이송희일 감독’, ‘디워’ 등이다. 지난 10년동안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을 만든 제작자지만, <백분 토론>의 여파는 그를 단순한 동성애자 영화인으로 규정지어버렸다.

물론 그는 지난 93년에 커밍아웃한 상태였지만 과도하게 격앙되어 있던 당시의 ‘넷심’은 그의 블로그를 찾아가 온갖 모욕적 댓글로 심리적 폭행을 가했다.

이만 하면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하지만, 이후의 그의 행보는 오히려 힘찼다. 청년필름이 제작한 <은하해방전선>으로 국내외에서 성공을 맛본 그는 이번에는 직접 메가폰을 잡고 <소년, 소년을 만나다>로 관객 앞에 나섰다.

그를 현장으로 내몬 것은 독립영화로서 또 퀴어영화로서 대성공을 거둔 <후회하지 않아>(2006) 이후 퀴어영화를 찍을 감독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입봉하게 된 초짜 감독은 당연히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작자로서의 날카로운 눈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1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감독 김조광수’의 역량을 냉정히 자평한 결과다. 대신 영화의 내용은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것으로 구성했다.

학창시절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소년들의 연애담을 다룬 것이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이야기는 판타지로 풀어냈다. 다소 엉뚱하고 괴상한 설정도 용인되는 ‘퀴어’ 코드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덕분이다. 그때문인지 두 소년 사이에서 큐피드로 등장하는 예지원은 이질적이면서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일종의 판타지를 그린 만큼 약간 떠 있는 영화에요. 대신 소년이 게이로서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무게를 뒀어요. 이런 걸 이성애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동성애자들의 삶을 알리는 거죠.”

그런데 최근 동성애 코드 영화의 공통적인 성격은 여기서도 발견된다. 바로 꽃미남 배우의 캐스팅이다. 동성애 문화는 꼭 ‘꽃미남’이라는 코드와 결합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을까.

김조광수 대표는 아직은 목표 관객층이 (이성애자)남성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선은 야오이물에 호의적인 젊은 여성층이 될 수밖에 없어요. 동성애 코드가 다루어지는 장르도 멜로나 로맨스에 국한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퀴어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관객층도 넓어지면 더 다양한 퀴어 영화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천성적으로 낙관적이고 느긋해 보이는 그의 성격은 오랜 시간동안 동성애자로서 살면서 체득한 삶의 방식이다. 소재빈곤에 시달리는 상업영화는 동성애를 차용하며 이들을 다시 왜곡하고 심지어 부정적인 면을 강화하기도 한다. 언론은 이들을 포용하자며 동정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당사자’로서 김조광수 대표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어떻게든 동성애 코드가 다루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동성애 문화 자체가 이성애자 관객에게는 낯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익숙해지기 위한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 작품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같은 방을 쓰며 일어나는 이야기 한 편과 퀴어와 호러가 결합된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조광수 대표. 장르 자체가 비주류인 퀴어 영화계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아직 불모지인 세계를 꿋꿋이 걸어가는 그는 퀴어계의 외로운 스타다.

◇ 김조광수 대표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현재 청년필름 대표. <해피엔드>를 창립작품으로 명필름과 공동제작하면서 본격적인 영화제작을 시작했다. 이후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분홍신>, <올드미스 다이어리 - 극장판>, <후회하지 않아>, <은하해방전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색화동> 등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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