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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한 장면.

가령 이렇게 생각해보자. A는 설렁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A에겐 설렁탕 냄새조차 큰 고역이다. 반면 B는 설렁탕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때문에 B로선 A를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 설렁탕을 좋아하지 않는 거지? B는 A에게 설렁탕을 권유하기 시작한다. 너도 먹어보면 홀딱 반할 걸? B는 단순히 A가 설렁탕의 '참맛'을 알지 못하기에 그런 줄로 믿지만, 사실 A에겐 B의 권유 자체가 부담스럽고, 괴롭기 짝이 없다.

이러한 가정은 자신의 기준이나 가치관을 제멋대로 절대적인 진리인양 설정해 놓은 채 상대방에게 들이대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저렇게 강권하는 사람을 보자면 부담의 단계를 넘어서 짜증이 느껴진다. 이러한 무언의 폭력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에게 대단히 민감하게 다가올 것이다.

볼거리 풍성한 종합선물세트? 한국 영화의 부실종합세트!

혼자 동네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아 민규동 감독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를 보았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관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를 제외하면 남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그나마 여자친구의 성화에 떠밀려 앉아있는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앤티크>는 최근 한국 영화가 쉽게 범하곤 하는 우(愚)를 종합적으로 모아 저지르고 있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이 영화를 봤다면 다음과 같이 불평했을 것이다.

"물레방아는 요란한데 밀가루는 나오질 않는구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0대들을 중심으로 한 '명품'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에 이르면서 예의 '웰빙', 혹은 '강남'이란 키워드의 소비 형태로 발달되었다. 영화 <앤티크>엔 그러한 문화가 이야기 전개의 기본 전제로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런 쪽으로 설명해 나가자면 끝도 없으므로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원작 표지.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야만적인 부분은 체념하고 지나가더라도 플롯 구성의 허술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원작 만화의 매력은 과자점에 모인 네 인물들이 아옹다옹 부대끼면서 서로 아픈 과거를 치유해가는 과정이거늘, 영화에선 원작의 외양 재현에 충실한 나머지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나 '트라우마'가 해결되는 지점, 무엇보다 이야기의 인과관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주인공 진혁(주지훈 분)이 영화 내내 끌어안고 있던 유괴 문제의 해결 역시 우연한 기회와 '직감'으로 풀어버린다. 내러티브의 빈곤함을 애써 감추기 위해 엉성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 장면이나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남발하지만 별 위안이 되질 않는다. '디테일한 이야기의 부가 설명은 원작을 참고하세요'라는 안내가 나올 것 같아 겁이 날 정도였다.

무엇보다 <앤티크>에서 견디기 어려웠던 부분은 성을 상품화하는 언행이 무비판적으로 마구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장면 하나. 과자점 번성의 일등 공신인 선우(김재욱 분)에게 프랑스 호텔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오게 된다. 그러자 선우의 공백으로 과자점은 일순 폐업 상태로 전락하고, 사장인 진혁은 과자점을 되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우를 붙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자동차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진혁은 어렵게, 어렵게 "나랑 자게 해주면 계속 있어줄 거냐"고 묻는다. 만약 이 장면이 남녀 혹은 두 여성의 대화였다고 가정하고, 또 그것을 공교롭게도 남성 감독이 연출하게 생각해 보자. 그 감독은 졸지에 남성우월적인 개(犬) 마초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그를 옹호하겠단 소리가 아니라 성(性)을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사고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더욱 발전하여 성의 대상화, 성의 상품화로 이어진다.

동성애 코드의 근간은 무엇인가

이준익 감독의 2005년 작품 <왕의 남자>의 대성공으로 충무로 영화 제작자들은 동성애 코드를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닌 '흥행의 조미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왕의 남자>를 필두로 동성애 코드가 슬며시 가미된 드라마나 영화가 눈에 띄게 많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드라마로는 윤은혜가 남장 바리스타로 분한 MBC <커피프린스 1호점>, 마찬가지로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바람의 화원>(비슷한 소재의 영화로는 <미인도>가 개봉되었다) 등이 있고, 게이 소년들의 퀴어 단편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고려 시대 왕과 무사의 이야기를 다룬 <쌍화점>은 이미 개봉을 했거나 앞두고 있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의 약진은 이른바 '야오이(남성 동성애물) 만화'의 두터운 소비층을 끌어안으려는 제작자들의 시장 마인드가 작용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동성애 코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야오이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학생 시절,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여학생 침실의 서랍에는 야오이 만화책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야오이 만화를 그저 남자들의 결합(?) 정도로만 알고 있던 우리들에게 그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은 포르노를 보잖아."

야오이와 포르노를 동일선상에 올려놓는 그녀의 주장을 극동 지방의 수십만 야오이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분명 수위와 순도(?)의 차이는 작품마다 다르기에 싸잡아 비판하기는 힘들겠다만 어쨌거나 야오이 만화가 부분적으로는 포르노처럼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여성 독자들도 인정하는 것 같다.

다양한 형태의 야오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에 대한 감상법도 독자마다 다르다. 하나는 야오이 만화의 '동성애'를 단순한 '애정전선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태도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금기시되고 비밀스러운 소재로서 동성애를 바라본다. 여기서 연인들은 성 소수자라기보단 비극 속 주인공에 가깝다. 또 남녀유별의 교육(혹은 억압)을 받은 여성 독자들도 만화 속에선 유달리 관대해진다.

<왕의 남자>를 필두로 동성애 코드가 슬며시 가미된 드라마나 영화가 눈에 띄게 많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왕의 남자> 한 장면.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사랑'이란 감정으로 포용되고, 성별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미화된 겉모습과 강조된 여성성은 완화제 역할로 작용한다. 또 다른 감상법은 애초 동성애라는 소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작품의 스토리를 취하는 식이다. 그렇게 감상하는 독자들이 생각하기엔 동성애자 연인이건 이성애자 연인이건 똑같이 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하면 성은 주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대상화된 성은 눈요기나 극적 흥밋거리가 되기 쉬운데, 이런 발상이 상업적 논리로 발전된 실례가 영화 <앤티크>처럼 먹음직스럽게 상품화된 성이다. 안타까운 점은 제작자들이 동성애를 하나의 주제가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여 대중에게 내놓다보니 동성 간의 성적인 관계나 선정적인 부분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편향 묘사된 동성애 코드는 자칫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일부 야오이 만화에서 나오는 이른바 '공수' 역할을 하는 남자들의 사디즘-마조히즘 관계가 동성애자 연인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상품화가 갈 데까지 가면 포르노가 된다. 포르노 속에서 동성애는 철저히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자극'이 될 뿐 소수자의 인권은 애초에 제외된다.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 '더러운 사랑'

그렇다면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동성애를 바라보는 지금의 현실을 둘러보자. 어렵지 않게 장면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커밍아웃 사실을 밝힌 여학생이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자식이 '비정상'이란 사실에, 누가 알까 두려워 얼른 '자진신고 및 치료'를 해버리는 게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진보진영까지 이상할 정도로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 포스터.

얼마 전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서는 이러한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들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못해 논쟁의 본질적인 문제를 전할 처지는 아니나 결국 '성폭력 2차 가해'라는 당의 판단 아래 한 당원이 징계를 받으면서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이는 정치적으론 진보 성향이나 생활면에선 여전히 보수의 우를 범하고 있는 언행 불일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야오이를 즐겨보는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만화 속의 게이 커플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반면 주변의 레즈비언 커플들에겐 온갖 괄시와 린치를 가하는 여학생들을 통해 이중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강력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서나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기독교의 가치관은 개인의 성을 철저히 억압했을 뿐더러, 동성애와 같은 경우를 병적인 것으로 보거나 신앙의 이탈, 사탄의 문제로 회부하기 일쑤였다. 민족의 존경을 받는 김구 선생도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형무소 수감 생활 중 만난 동성애자를 보고 '더러운 사랑'이라 표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대 이전부터 자리 잡은 강한 거부감 때문에 동성애 담론은 그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좀처럼 사회적 담론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당시의 한국 사회는 툭하면 탱크를 앞세워 청와대에 입성하는 군인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화는 도둑처럼 몰래 찾아왔고, 그와 엇비슷한 시기에 일본 문화가 개방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한국을 찾은 야오이 문화는 철저히 비주류인 가운데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세기가 바뀌면서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가 문화적으로 뒤섞이면서 덩달아 야오이 문화의 동성애 코드가 시쳇말로 '뜨기' 시작했다. 사회적 담론을 거쳐 함의를 도출하기도 전에 어두운 골방에 숨어있던 동성애가 불쑥 나온 것이다.

동성애를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보는 주장의 의식 저변에는 이성애를 정상으로,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놓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논리를 떠나서 한국의 부모들이 갖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공포심에 가깝다. 동성애자란 사실을 밝힌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어머니는 딸이 레즈비언이란 낙인을 달고 사회에서 온갖 지탄과 박해를 받기보단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설사 치유가 불가능하더라도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온전한 사회생활을 누리길 바랐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동성애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거부감은 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경직성과 무관용에 기인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성 소수자여, 골방에서 나오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쌍화점>. 이 영화도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언젠가 멀리 지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의 조그만 화장실에 들렀는데, 허름한 문짝 구석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소심하게 적혀 있었다.

'○○에서 이반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러자 그 밑에 답변이 달려 있었다.

'○○ 목욕탕이나 버스 터미널로 오세요.'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의 이 낙서가 대한민국 성 소수자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성 소수자들은 다수의 손가락질을 피해 음지로 숨어야만 했고, 그렇게 외떨어진 곳에서 비밀리에 문화를 형성하다보니 음침하단 딱지까지 덧씌우게 되었다.

최근 트렌드처럼 미디어에서 몰려온 동성애 코드에서조차 성 소수자들은 소외된다. 일찍 잠들어 꿈나라 아기별이 된 아이에게 '민주야 / 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 / 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 / 배부르고 능력 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하고 자조하는 박노해의 시처럼 관객들이 열광하는 동성애자란 화려한 옷을 입고 장난감처럼 귀여운 외제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들이지 버스 터미널 화장실에 낙서나 하는 이반들이 아니다.

동성애 코드에서 동성애 담론을 형성하기엔 무리가 있을 뿐더러 설령 끄집어내더라도 담론의 주체는 성 소수자들 본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담론은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앞서 소개한 설렁탕의 교훈처럼 말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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