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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그리고 말랑한 미디어] 라디오를 켜봐요 ②
                                                           수수/마포FM 진행자  mediaus@mediaus.co.kr  


“비혼 여성을 위한 라디오 <야성의 꽃다방> 오늘은, 청취자 **님의 라디오 드라마와 함께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오늘 마포FM의 스튜디오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그득합니다. 이번 라디오 방송의 드라마 대본과 연출을 맡은 <야성의 꽃다방> 열혈 청취자 한 분과, 이 열혈 청취자가 쓴 생애 첫 라디오 드라마의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또 응원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또 다른 3명의 청취자들이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둘래둘래 살펴보고 있습니다. <야성의 꽃다방>의 기획자이자 작가이고 엔지니어를 담당하는 3명의 ‘야성녀’들은 대본을 나누어주고, 라디오 방송 녹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합니다. 물론 그 전에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가 공유하는 추억 <야성의 꽃다방> 라디오 방송의 몇 회, 몇 회의 코너들에 대해 수다를 떨어대지요. 훈훈하게 마음이 녹아들 때 쯤, 각자의 마이크와 헤드폰을 점검합니다. 짧은 침묵 이 지나고, 설레임과 수줍음으로 차마 입을 떼지 못하던 4명의 손님들은 온에어가 켜지자마자, 세상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를 시작합니다.
  
다음주 월요일 자정에 자신들이 참여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당황하고 부끄러워하겠지요. 아마도 다시는 라디오 녹음 같은 건 하지 못하겠노라 손사래를 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스튜디오에 얼굴을 배꼼이 내밀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열띤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겠지요. 어떻게 아냐고요? 바로 그것이 공동체 라디오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만들고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공동체 라디오의 진솔한 매력이야말로 3년 전 <야성의 꽃다방>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야성의 꽃다방>은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 기존 매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틀어-에서 비혼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 못 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낀 비혼 여성 당사자 5인이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고 2006년 3월8일 첫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마포구 지역 안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 소출력 방송국,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57분의 방송에 불과하지만, 공공의 대중에게 비혼 여성의 목소리를 소개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었지요. 처음에는 “누가 우리 방송을 들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월요일 자정 마포 지역에 퍼져 나간 주파수는 수많은 비혼 여성들에게 가닿았습니다. 2006년 겨울에는 남해에서 올라온 청취자와 함께 하는 연말 모임도 가졌지요. 그 자리에서 만난 청취자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습니다. “우리들의, 나의 이야기를 이처럼 속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비혼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라디오 방송이라니, 그런 걸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어요, 멋져요.” 이렇게 공감을 표시하던 청취자는, 듣는 사람의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직접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쓰고, 방송을 녹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야성의 꽃다방>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기도 하지요. <야성의 꽃다방>뿐 아니라, 마포FM의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을 위한 라디오<L양장점>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라디오 방송 <함께 쓰는 희망노트> 등도 주류 미디어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존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않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소수자들이 주인이 되어 만들어갈 수 있는 미디어가, 바로 공동체 라디오입니다.

공동체 라디오는 그 시작부터 소수자와 함께였습니다. 공동체 라디오의 시초라고 이야기되는 콜롬비아의 <라디오 수따뗀사(Radio Sutatenza)>는 1947년 가난한 농부들을 대상으로, 지역 공동체에 필요한 기술을 전파하였습니다. 또, 본격적인 공동체 라디오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볼리비아의 탄광 노동자 라디오 방송국 네트워크(1949년)는 지역의 탄광노동자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 하였습니다. 그리고 탄광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렇듯 소수자와 함께 해온 공동체 라디오는 작은 공동체의 단단한 힘을 바탕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수백 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여성 등 소수자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고 커뮤니티(공동체)의 구심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방송위원회가 전국 8개 시범사업자를 선정하여 공동체 라디오가 개국하였습니다. 마포FM(www.mapofm.net)을 포함하여 성서 공동체FM(www.scnfm.or.kr), 관악공동체라디오(www.radiogfm.net), FM분당(www.fmnara.com), 금강FM(www.kkfm.co.kr), 광주시민방송(www.icbn.or.kr), 영주FM(www.yfm.co.kr), 나주FM(www.najufm.com) 등이 지역 공동체 방송,  소수자 방송을 표방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동체 라디오는 더 많은 지역과 소수자 커뮤니티로 확대되고 있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 존립이 위협당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공동체 라디오 사업자를 확대하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저버리고, 공공의 자산인 주파수를 영어FM 방송을 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해 버린 것이지요. 한국 사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차이를 가진 이웃들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상황에서, 소수자 이웃을 위해 할당되어야 할 주파수를 영어권 외국인만을 위한 라디오에 할당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동체 라디오는 여러 가지 규제와 지원의 부족으로 유지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경제적 위기로 많은 이웃들이 공동체를 이탈하고 삶의 희망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어떤 소통이 필요할까요? 분명 강제된 하나의 언어,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목소리가 그런 소통의 역할을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소수자와 함께 호흡하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연대의 주파수가 절실한 이 때, 차이가 있어 더욱 소중한 공동체 라디오의 소리가 널리 널리 퍼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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