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에 가려서 그렇지, 교육방송 EBS에도 볼 만한 교양·토론·시사 프로그램이 꽤 많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9월 말부터 방송을 시작한 ‘똘레랑스, 차이 혹은 다름’(화 밤 10시50분)은 색다른 컨셉트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형식만으로 본다면, MC 홍세화가 우리 사회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재들을 ENG 취재로 소개하고 논평하는 시사물이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자면 열변을 토하는 패널 없이도, 갈등 당사자 사이의 차이, 이슈가 된 현안의 간극을 들어볼 수 있는 훌륭한 시사토론 프로그램이다.
‘똘레랑스’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학벌, 평준화, 이주 노동자, 전과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외 망명객, 동성애자, 문신 등 다른 지상파 방송에서 수없이 전파를 탄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요리한다.
지난해 9월 첫 회 방송한 한총련 편을 보자. 지금까지 여타 프로그램들은 보수세력의 입장을 반영해 한총련의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조직을 비판하는 시각, 진보세력의 측면에서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하는 근거인 국가보안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시각, 아니면 중도의 입장에서 한총련에 이적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동기가 불순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성숙한 만큼 이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시각들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복수의 시각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똘레랑스’는 한총련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수배가 해제된 학생, 수배 중인 학생, 한총련 반대운동을 하는 학생 3명이 한총련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시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한총련에 대한 견해가 다른 두 학생을 만나게 해 의견을 교환하게 한다.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서로 다른 점을 참을성 있게 듣고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프로그램은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똘레랑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왜곡하거나, 상대방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여 기선을 제압하려는 이해 당사자 간 왁자지껄한 토론 프로그램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대체로 우리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는 상충하는 견해의 명확한 차이점 확인 없이, 또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숙고 없이, 다짜고짜 치고받는 본 게임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는 조야한 이념적·정치적 지향에 따라 아주 단순하게 어느 한 편이 되고 만다. 때로는 무엇이 옳고 그름을 차분히 따져 보려는 시청자까지 자신과 입장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토론자와 동조해 덩달아 흥분하고 논점을 놓치게 된다.
기계적 중립과는 엄연히 다른, 열려 있는 관용의 소재 접근 방식이 일반적이 되려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차이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갈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때가 오기까지 ‘똘레랑스’는 미래에 등장할 제대로 된 토론 프로그램의 정초(定礎)작업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KBS PD/mrout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