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법원의 성전환자 강간죄 객체 인정 판결을 환영한다!
오늘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고종주 부장판사)는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강간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MTF 트랜스젠더(생물학적으로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를 강간죄의 객체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이 판결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표한다.
대법원은 지난 1996년 집단 성폭행을 당한 트랜스젠더에 대해 형법상 ‘부녀’로 볼 수 없다며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이러한 입장은, 검찰 측이 이번 사건을 강죄추행죄로 최초 기소한 바와 같이 트랜스젠더가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고 보는 편협한 시각을 강화시켰다. 우리는 이번 부산지법의 판결이 이러한 시각을 전면적으로 뒤집어 트랜스젠더 역시도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흉기로 위협해 강간한 사건을 집행유예로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크게 성장해 왔다. 이 판결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한 판결이라고 본다. 대법원 역시도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과 관련하여 사람의 성을 생물학적 요소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성별 귀속감 등 정신적, 사회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2006. 6. 22. 선고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우리는 향후에도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기관이 트랜스젠더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에서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트랜스젠더에 대한 성폭력을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차등화시키지 말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에 대해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한다. 애초에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를 피해자의 관점과 인권을 충분히 고려하여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면, 이번 사건이 이처럼 크게 다루어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성폭력을 개인의 자아와 인격, 그리고 인권에 대한 침해라는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임신 가능한 여성에 대한 보호’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인 처사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강간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개정하여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권을, 그리고 성별을 넘어 모든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법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트랜스젠더를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한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을 표하는 바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9년 2월 18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