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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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회하지 않아'에서 호스트 빠의 마담 역을 연기한
이름 모를 조연배우에게 난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정말로 게이다움을 다 갖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게이다움을 갖췄다고 해서 그가 실제로 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난 그런 게이다움은 갖추지 못했지만, 누가 뭐래도 난 리얼 게이다.
게이다움의 유무가 게이와는 이처럼 무관한데도
왜 여전히 사람들은 게이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길 할까?

살면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가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이다.
나는 그런 말을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이 나이 먹도록 도무지 그 말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난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겐 마치 외계어같이 어렵기만 하다.

나는...
술을 잘 마셔야 남자다운 남자라고 말하는 이도 보았으며,
싸움을 잘해야 남자 중의 남자라고 말하는 이도 보았으며,
계집질을 잘해야 진짜 남자라고 말하는 이도 보았다.
묻고 싶다. 정말 그런가?

그런 허접스런 판타지만을 심어주는 거품을 제거한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배려라든가, 이해라든가... 하는 내면의 무언가를 채울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것은 여자가 갖추면 안 될 덕목인가? 하고 묻고 싶다.

판타지가 주는 거품을 제거하고 나면 결국 남자다움은 사람다움과 통한다.
즉,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도 "넌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넌 남자가 왜 그 모양이야?!"하고 말을 할 뿐이다.
왜 그럴까? 남성과 여성에 차이를 두고 우위를 차지해 권력을 쥐려 하기 때문이다.
편견이나 차별을 부추기는 것쯤은-그들에겐-상관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그래야 기득권이 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특성적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특성적 차이를 이용해 편견과 차별을 부추겨서
남성 우월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있어서는 안 된다.

난,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차를 마실 때는 새끼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마셔야 해... 따위의 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게이는 운동을 못한다는 차라리 세뇌에 가까운 억지소리를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영향일까?
사기 친 게이를 만났을 때,
운동을 못하는 게이를 만났을 때,
시간 약속을 잘 못 지키는 게이를 만났을 때,
-게이는 다 그래. 게이는 안돼. 라는 부류의 글...
우리나라 최대 동성애 사이트의 자유발언란에 수시로 올라오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성애자가 편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 스스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과거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놈들이 퍼뜨렸던
"한국놈들은 안돼. 맞아야 정신 차려"라는 말을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 하는 것과 같다.)

게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조하게 하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게 만듦으로써
이성애자들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종교적으로 기득권을 누릴 것이며
이성애자들은 우월주의 실현을 유지 시킬 것이다.
우리가 게이다움을 외치는 한.

왜 이성애자들의 놀음에 여전히 놀아나고 있는가? 그저 난 안타깝다.
"~~다움"을 강조할 때는 특성을 살리고, 이해를 바라는 까닭이 있겠지만,
실제로 "~~다움"을 강조 한 경우엔 차별과 편견만이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굳이 "~~다움"을 강조하려거든 "사람다움"을 강조하자.

추신.

어떤 분은 확률적으로 볼 때 게이가 애정결핍의 영향으로 될 수 있고 한다.
그것은 무식한 논리라고 했더니 서점에 가보면 심리학 책에 나와 있으니 읽으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은 어떤가?
같은 애정 결핍의 환경 조건에서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 되었고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가 되지 않았다면, 후자의 경우를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한다.
[확률적으로 애정결핍 환경에서 자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을 통계를 내서 심리학 책을 내면 어떻게 될까?
얼토당토않은 그런 책은 아마도 외면당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분이 읽어 보라던 책은 내게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후천적인 상황이 게이의 정체성을 인지하게 할 수는 있지만,
후천적인 상황이 게이가 되게 하진 못한다.
수많은 게이가 그렇듯이 나 역시 선천적 게이이다.

차돌바우 2006-11-18 오전 01:29

그래서 단비군은 게이다움. ^^

단디 해라 2006-11-18 오전 07:05

음 그래서 그런갑다 ㅠㅠ

단비 2006-11-18 오후 14:03

5,000번째 글을 쓰고 싶었는데 놓쳤네... -_-
10,000번째 글에 재도전해야지...

칫솔 2006-11-18 오후 15:33

정승길

말벌 2006-11-18 오후 19:50

"~~다움" 이 주는 차별과 편견의 부메랑이란 대목에 동의함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되뇌이는 성이나 ,직업이나, 위치에 대하여

사람들은 끈임없이 요구하고
그 결과 거기에 위치한 사람들은 그 요구를 수용하려합니다

남자가...남자 다워야지!
의사가...의사 다워야지!
부장님이..부장님 다워야지!
그렇지 않았을때 주변에서 주는 눈치와 살이 붙는 말꼬리들

그것은 세상 사람의 편견에 대항할수 없기에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그것은 정말 일개인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적임으로-

세상의 뜻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되어지거나, 최소한 본인이 만들어내는 보여지는 면에서는 만들어 집니다

그게 아니면 힘을 모아 정체성을 주장하거나
자기 합리화에 안주하며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는것 같읍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있는 제 삶의 한 편린이기도 하구요....

단비 2006-11-19 오후 12:47

[내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혹시라고 갖게 된다면
필시 삶은 나를 지치게 할 것입니다.
그저 나에게-그게 무엇이든-신념이 있다면, 그 신념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보다 나를 덜 힘겹게 할 것이며
불합리한 세상을 참아내는 것 보다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