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끓이면서, 모 사이트에 들어가니 제논 타령이다. 이제 커피 마시면서 간단히 메모.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 배웠을 제논의 역설. 그리스 역사상 가장 빠른 준족 아킬레스와 느릿한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한다. 거북이가 저만치 앞에서 출발한다. 요땡! 선발주자 거북이와 후발주자 아킬레스가 뜀박질을 시작한다. 과연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있을까? 제논의 대답은 단호히 no!
제논은 아무리 아킬레스가 달려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자, 달리기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을 분할해보자.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거북이가 통과한 어느 지점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거북이도 달리고 있기 때문에 늘 그 지점은 앞서 있다. 공간은 잘게 잘게 분절되고 시간은 멈춰져 있어, 아킬레스는 거북이가 통과하는 지점을 아무리 쫓아가도 거북이는 항상 앞서 있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제논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제논은 운동이 실재한다는 당시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과 싸우기 위해 몇 가지 이런 역설들을 논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은 기만에 불과하다. 운동이나 변화와 같은 감각에 의존하는 외부의 사건들은 기만적인 감각의 변덕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것. 감각보다 내면의 의식을 중시했던 제논의 스토이즘이 결과한 요상한 궤변인 셈이다.
이후 철학사는 제논의 역설과 오랜 동안의 질긴 싸움을 벌이게 된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란 거친 도식을 굳이 도입하지 않더라도 운동과 외부 실재계를 증빙하고자 하는 학자들은 필연적으로 한 번씩이라도 제논과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논의 역설을 그나마 가장 드라마틱하게 비판한 이는 베르그송이다. 이 위대한 생철학자는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팔을 한 번 구부려 움직여보라고 윽박지른다. 팔을 구부려보겠단 인간의 자유의지는 '정지된 시간(구부리다 만 팔뚝)'이라는 가공된 의식보다 선재한다. 외려 공간의 분할, 시간의 멈춤 따위의 말들이 가공되고 조작된 의식의 발로라는 것. 마치 음악이 피아노 건반 하나와 다른 건반의 단속적 비약이 아닌 것처럼 운동은 분할되거나 의식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제논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는 동시대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한 일화에 따르면 제논이 자신의 이 역설을 강의하고 있던 시간에 강의장 뒤에 앉아 가만히 제논의 강의를 듣고 있던 디오게네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저쪽 반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논의 주장을 왔다갔다 하는 행동으로 일거에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키에르케고르는 '반복'이란 저서에서 바로 이 디오게네스의 반복적 움직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사랑의 존재방식을 밝혀내게 이른다. 사랑은 무엇인가? 기만적인 감각으로부터 도피해 순수 표백된 로고스 세계, 혹은 이데아의 질서를 지향했던 철학자들에게 사랑은 허공에 쏘아올린 화살과 같다. 플라톤의 사랑은 '상기想起'다. '향연'의 에로스는 연인들의 등이 아예 붙어버린 채 네 개의 팔다리가 달려 있는 암수 한 몸체, 또는 동성 한 몸체로 단단히 결속된 통합된 주체를 의미한다. 제우스가 내리친 번개 때문에 이들은 등이 떨어졌고, 그들은 이후 서로의 반쪽 존재를 찾으러 헤매고 다닌다. 사랑을 자극하는 욕망은 바로 '결여'이며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곧 상기이며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 감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데아 세계에서 내려보내는 번개의 방전의 순간 속에서 조각난 이데아를 상기할 수 있듯, 사랑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부신을 상기하는 순간인 것이다.
반면 키에르케고르는 플라톤의 이 사랑 개념을 비판한다. 사랑은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일련의 소급 행위가 아니라 반복이다. 어떤 반복? 기억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옛 추억의 그림자를 끝없이 좇는 것. 실제로 결혼을 앞두고 있던 키에르케고르는 돌연 약혼을 취소하고 잠적했다. 이후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연인을 그리워하며 살았고 그의 저서 '반복'은 바로 그 그리움에 대한 고백록이었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복은 '히로시마 내 사랑'의 알랭 레네의 기억의 존재방식과 닮아 있다. 사랑은 기억 속에서, 없거나 있거나 하는 모든 일련의 원초적 기억 속에서 반복을 감행하는 삶의 운동 방식. 섹스는 섹스에 대한 기억의 총합이며, 사랑 역시 기억의 재생 위에 또다시 펼쳐놓는 익숙한 목소리의 복화술인 것. 2004-09-16
사랑은 반복, 그 시작의 첫 떨림조차 반복.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 즐겁게(?) 느낄 수 있어용.
그리고 플라톤의 생각 낭만적이다, 나 플라톤에 한 표yo~
만일 사랑이 기억의 반복이라면
(만빵 만족스런 사랑이란 없을테고, 인간 유기체는 살아 있으니 물론 반복해 나가겠지
비) 이 그 기억의 주체는 진정 나이고파. 아니 그 중 50%라도 말이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