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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2004-11-06 08: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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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몸짱’ 연예인은 얼핏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과 닮았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남성 이상형이란 대개 그러했다고 지나치려는 순간, 그들의 뽀얀 얼굴이 눈길을 가로챈다. 여성 화장품 모델이 무색할 정도로 투명하다. 근육질 몸매는 털 하나 없이 매끈하다. 현대의 남성 이상형은 ‘반남반녀’의 양성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동성애적 자극이기도 하다.
남성 이상형이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 고정됐다는 상식은 그래서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아폴론의 형상은 여러 이념과 결합하며 끊임없이 ‘변주’됐다. 〈남자의 이미지〉는 그 변천에 대한 문명사적 통찰이다. 현대의 남성성이 주조된 18세기 이후가 주된 관심의 시기다.

문명사학자인 지은이가 들여다본 그 시간 동안, ‘남성다움’의 이상형은 정치적 이념에 의해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현대의 남성성은 민족주의와 나란히 탄생해 진화했다. 봉건시대의 기사는 ‘태도(매너)’에 대한 동경이었지만, 근대의 영웅은 ‘외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민족적·인종적 차이의 구분을 그 바탕으로 한다. 이 시대에 이르러 힘과 미를 갖춘 남성 이상형은 민족국가와 시민혁명의 표상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가냘픈 육체에 맑은 영혼이 깃든다는 중세의 관념도 이 시기에 이르러 파국을 맞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신화가 시작되면서, 열등한 육체적 특질은 (긍정적 의미의) ‘스테레오타입’과 비교되는 ‘카운터타입’으로 낙인찍혔다. 그 단골 악역은 유대인·흑인·집시 등이 떠안았다.

‘남자다움’은 전쟁의 시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국가는 죽음·희생·규율 등의 관념을 아름다운 신체에 덧댔다. 청년들은 갈고 닦은 자신의 ‘남성성’을 기꺼이 전쟁의 제단에 바쳤다. 사회주의적 남성상을 통해 이를 전복시키려던 볼셰비키조차도 결국엔 전투적 남성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현대적 남성성의 극단은 나치즘·파시즘과 잇닿아 있다. 그것은 전우애로 대표되는 의리, 희생과 용맹의 정신, 강인한 체력, 그리고 심신의 조화를 유지할 자제심 등이 각각의 절정에서 결합된 고도의 정치적 모델이었다. 유대인 학살은 극단의 남성성이 ‘카운터타입’에 행사한 극단의 폭력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남성다움을 구성하는 주요 특질은 2차 대전 이후 분해되고 있다. 여성과 동성애의 확장된 영역이 남성성의 경계를 침식했다. 이념의 호명을 거부하는 청년문화도 남성성을 개별화시켰다. 그러나 지은이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완성된 ‘남성다움’의 관념은 이미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짚는다. 문제는 “남성성의 몰락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까지 변형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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