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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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게이의 이웃인가라는 것을 딱히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에이즈 치료제나 혹은 에이즈 예방 캠페인 또는 무료 콘덤 배포 운동같은 것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느냐로써 나는 게이의 이웃을 구분하고 싶다.

가끔가다 선심쓰는 내 뱉는 일부 스타들이나 헐리웃 스타들에게서 받는 연민 혹은 동정의 시선들은 모두 거부하고 싶다.

아주 오래전에는 오드리 헵번이나 로이 오비슨같은 사람들이 게이들에게 오래도록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와 입센 로랑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에는 치명적이었던 게이 커뮤니티에 당당하게 모습을 들어냈었고 로이 오비슨은 '인 드림즈'나 '오베이유'같은 노래를 통해 게이들의 시름을 달래주기도 했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당시의 인기를 뒤로 한 채 게이 커뮤니티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게이 아티스트들이 공식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60년대와 '70년대에는 신 자유주의자들이 등장해서 게이 컬쳐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었고 또한 그것을 상업적으로 잘 이용할 줄 알았던 앤디 워홀과 키플링을 만날 수 있었다.

비지스와 다나 서머, 쉬크등의 디스코 엠퍼러들이 시들시들해질 무렵에이즈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80년대 초반, 빌리진과 브레잌 댄스의 시대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의 죽음에 심한 충격을 받았던 듯 하다.

그녀는 에이즈를 전염병으로 몰고 가던 당시의 여론과 맞서 싸웠다.

그녀는 주위의 친한 헐리웃 스타들을 동원해 에이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듯 사비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그녀는 에이즈 예방에는 콘덤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매번 티뷔 인터뷰에서 역설했었고 게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거나 혹은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을 것 같았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브루주와 계급을 아름다운 여인일것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그녀는 게이 커뮤니티와 함께 콘덤 착용 캠페인을 시작한다.

무명시절부터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활동했던 신디 로퍼는 자신의 노래 '쉬밥'에서 타이트한 블루진을 입은 소년들을 나는 블루보이 매거진에서 봤다고 당시에 지금의 HX나 NEXT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블루 매거진과 게이들의 룩을 노래했다.

그리고 T-rex이후로 공식적으로 게이 룩을 가지고 등장했던 컬쳐클럽과 저팬, 카자구구등이 등장했으며 시나 이스턴은 듀랜 듀랜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것에 반발하며 레즈비언 룩을 시도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LA 메틀 아티스트들은 너도나도 여성적인 메이컵을 하기 시작했고 포이즌과 엘에이 건즈, 맛리 크루, 워런티같은 롹 뮤지션들이 그동안 롹 뮤지션 하면 떠오르던 쇠사슬에 피가 줄줄 흐르는 해골이나 혹은 가죽 재킷으로 대표되던 이미지를 순식간에 뒤집어 엎으며 게이 컬쳐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던 게이 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듀랜듀랜이나 저팬 그리고 컬쳐 클럽이 몰고 왔던 글램 룩을 상업적으로 이용했었던 것이지만 그것은 게이 룩을 더 이상 이상하게 보지 않아도 되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몰고 왔다.

심플 마인즈가 바람둥이 남자 친구에게 버림 받은 남자의 이야기를 노래함으로써 데이빗 보위 이후에 은근히 시도되던 게이 송들이 큐어Cure에게서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세상의 엿 같은 편견때문에 살 수 가 없다던 메가데스의 홀리 워Holy War가 나타났다.

메틀리카와 슬레이어나 혹은 베놈 혹은 프롯 삼 앤 젯 삼 같은 보수적이며 남성우월적인 트래쉬 메틀밴드의 주된 가사 내용과 반대편에 서 있던 메가데스의 이 곡은 매니아들에게서 주목을 받았다.

쉐어가 자신의 콘서트에서 콘서트장의 천정에 매달아 놓았던 커다란 콘덤 모양의 바구니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콘덤을 무차별적으로 관객들에게 쏟아부으며 safe sex를 강조했고 무대위에 드랙 퀸들을 세우기도 했다.

보수적인 일반 중산층을 대표하는 스타인 줄 알았던 윗니 휴스턴이 all at once에서 묘한 가사 내용을 풍기며 게이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게이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했으며 뉴저지의 뉴왘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지독한 기독교신자인 그녀는 공공연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고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당시로서는 쉐어와 신디 로퍼 이후에 가장 유명한 스타였던 그녀가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파이널 나잇의 댄스 플로어에 올라섬으로써 일반 대중들과 게이들에게 이슈가 되었다.

k.d 랭이나 엘린 드제너러스가 조앤 제트 이후에 공식적으로 레즈비언 룩을 무대에서 펼쳐보였고 조앤 제트처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에이즈 파운데이션에 빠르게 참여했다.

퀴어 애즈 퐄이 등장해서 게이들을 스테리오 타입화하며 게이 컬쳐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았으며 게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섬세하고 세삼한 디자인성을 이용해 제 멋대로 살고 있는 살마들을 찾아가 메잌오버해주는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잇 가이가 퀴어 애즈 퐄의 왜곡된 이미지를 일반 사람들에게 좋게 파고들기 시작했고 게이 드라마중에서 가장 실력있고 유명한 감독이 에인절스 인 어메리카를 연출했으며 보이 밋 보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형태로 일반이나 게이들의 시선에서 멀어져버렸다.

제니퍼 빌즈를 내세운 레즈비언 드라마가 케이블을 통해 시작됐고 오도넬은 보이 조지를 내세워 본격적인 게이 뮤지컬인 '터부'를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조용하게 시작한 후 드디어 타임스 스퀘어에 빌보드를 깔면서 무사히 브로드 웨이에 안착했다.

컨트리 뮤직 밴드로서는 로이 오비슨 이후에 딬시 칰스가 게이 페스티벌에서 공연함으로써 컨트리 뮤직이 가지고 있던 수퍼 보수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딬시 칰스는 무대에서 게이들을 또 하나의 시스터라고 부르면서 스스로 게이 네이버훗이 되어갔다.
딬시 칰스는 언제나 공화당 지지여야만 했던 컨트리 뮤직씬에서 부시가 우리들과 같은 텍사스 출신인것이 부끄럽다는 멘트를 함으로써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들은 쉐어와 함께 디바 콘서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인터넷 집계로 출연자를 뽑는 이 콘서트에서 게이들이 딬시 칰스에게 많이 투표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디바 콘서트가 처음의 출발과는 달리 유난히 게이화 되어가고 있다는 비난이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바 프로젝트의 프로모터들은 음반사의 추천과 인터넷 집계에 의한 결과물일뿐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했고 어찌되었건 디바 콘서트는 매년 게이들이 라스 베이거스에 가야만 하는 일거리를 만들어주었다.

뉴욕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플로리다의 코카 콜라 공장의 게이 직원을 해고한 사건이후에 스폰서에서 코카 콜라를 제외시켜버렸다.

대부분의 클럽과 바에서는 펩시 콜라를 바꿔버렸으며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펩시 콜라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가장 강력한 스폰서가 되어주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스타 벅스나 매킨토시 컴퓨터, 뉴 밸런스같은 기업들이 유난히 게이들이 자신들을 선호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스폰서가 됨으로써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규모가 커져갔다.

돈이 된다는 것을 눈치 챈 뉴욕 시티에서는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퍼레이드를 지원했으며 줄리아니는 처음으로 퍼레이드에 참여함으로써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정치력 홍보의 수단이 되어갔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정치적인 문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채식주의자들이 맥도널드를 공격했으며 클린턴을 지원했고 클린턴은 보답이라도 하듯 게이 커뮤니티 센터를 세번에 걸쳐 방문했다.

힐러리 여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축하 전문을 보내기도 했고 촬스 슈머는 퍼레이드의 파이널 나잇의 무대에 올라 앞으로도 계속 민주당을 사랑해줄 것을 당부함으로써 게이 프라이드는 점점 민주당 파티가 되어갔다.

클럽에서 그저 댄스 뮤직이나 틀어대던 디제이들이 목소리를 갖기 시작했다. 주니어 바스케즈는 쉐어의 배경을 힘으로, 썬더 퍼스는 윗니 휴스턴의 배경으로 모비는 머다나와 뷰욕, 헥스터는 브릿니 스피어스의 배경등을 업고 스타가 되어갔다.

쉐어가 오스카와 토니 수상 이후에 침체에 빠져있다가 주니어 바스케즈와 함께 재 등장했다.

그녀는 더욱 더 드랙 퀸 다운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음악은 그전의 그녀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believe' 를 통해 일반과 게이들 양쪽 모두에게서 크게 사랑받았다.

911을 천박한 댄스 뮤직 비트에 담아 추모곡으로 발표했다는 비난과는 상관없이 (this is)song for the lonly'가 그녀를 다시 정상으로 올려 놓았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천박한 댄스 비트에 911 추모곡이 어울리기나 하냐는 듯 그들은 '엔야'의 추모곡을 사랑했지만 헥스터와 막스 로드리게즈는 엔야의 911 추모곡을 댄스 비트로 바꾸어서 리믹스 싱글로 내놓기도 했다.

윗니 휴스턴이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이후에 오랫만에 에이즈 파운데이션 기금 모금자리에 얼굴을 드러냈다.

엘튼 존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조지 마이클, 키스 리처드, 밥 겔돌프, 조니 뎁, 저드 로, 퍼프 대디, 멜 깁슨등의 스타들이 에이즈 연구 재단에 오랫동안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에드보케잇 매거진에 알려졌다.

요술병에 갇혀서 스피어스의 모방에 지나지 않다는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비아냥거림을 받던 크리스티나 아귈레라가 '뷰티풀'을 발표함으로써 스스로 더 이상 백인 주류들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다는 듯 본격적으로 더티 룩으로 무장한 채 재 등장했다.

매맞는 여성들에게 싸울 것을 권유하는 파이터와 뷰티풀이 스매쉬 히트를 기록했고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틴 아이들 스타로 출발한 가수들 중에서 가장 윗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에 가까이 다가간 가수가 되었다.

그녀의 뷰티풀은 이제 조지 마이클의 '원 모어 트라이'와 큐어의 '프라이데이 암 인 럽'등의 노래와 함께 게이들이 많이 모인 펍에서 가장 많이 따라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아귈레라는 백인 중산층 팬들을 전혀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듯 M.A.C. 카스매틱 컴패니의 글렘 코스매틱 이미지 모델이 되었는데 수익금의 10%를 에이즈 연구재단에 기부하기로 함으로써 쉐어와 신디 로퍼 이후에 가장 노골적으로 게이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은 가수가 되었다.

그저 그런 뻔한 스테이션에 불과했던 103.5 KTU FM의 CEO들이 진 메커웰 같은 게이 레즈비언 센터의 커뮤니티 국장을 맡았던 사람들이 장악함으로써 주니어 바스케즈라든가 혹은 막스 로드리게즈 혹은 쉐어같은 게이 아이컨들이 점령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그저 그런 뻔한 스테이션에서 가장 뜨거운 스테이션이 되었다.

퍼프 대디를 끌어들임으로써 흑인 애청자들까지 안으며 뉴욕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빠른 음악 선정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스테이션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리믹스 곡들을 내보내며 이제는 클럽이나 바가 아닌 곳에서도 리믹스 디제이들을 들을 수 있도록 했고 스스로의 인기를 눈치 챈 그들은 KTU 리믹스 앨범이라는 것을 시디를 시즌 별로 발매했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수잰 새런든, 팀 로빈스, 스파잌 리, 마틴 스콜세이지,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커폴라등과 함께 뮤지컬 터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게이 커뮤니티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스타들은 프레젠테이션이나 프레스 프리뷰가 아닌 일반 상영일에 모습을 드러내며 당시에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게이간 결혼 합법에 대한 인터뷰를 지지하는 쪽으로 주장하며 게이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아샨티가 게이들과 있으면 때로는 불편한것들이 많고 그들과는 스피릿이 틀린것 같다는 멘트를 함으로써 어차피 게이들에게 별 인기도 없었지만 더욱 더 웃기지도 않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오랫동안 게이 아이컨으로 군림했던 머다나가 그 오랜 기간 동안 단 한번도 게이 커뮤니티나 공식적인 게이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윗니 휴스턴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한번 좋아하게 되면 절대 배신을 모르던 순진한 게이들이 그녀의 앨범을 사는것을 망설이기 시작했고 클럽이나 바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카일리 미노그와 더티 베이거스가 새로운 게이 아이컨으로 부상했고 사키라, 호세 앙드레이스가 라티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함으로써 뉴욕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대표되던 행사가 세분화되었다.

뉴욕의 퀸즈에서는 개별적으로 라티노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시작했고 스패니쉬 스타들이 참여함으로써 스패니쉬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을 끌어모았다.

갑자기 클럽이나 바에서 샤키라의 음악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샤키라는 디바 콘서트에 출연함으로써 데뷔한지 가장 짧은 여가수가 출연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다만, 오늘 오노 요코에 대한 글이 있어서 과연 누가 우리들의 이웃인지 묻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썼다.

때가 되면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는 유명인들에게 더 이상 게이라는 단어나 혹은 누가 무대에서 벗었다는 것들 따위는 이슈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오노 요코의 노래가 싱글 컷트 되어 1위를 했건 말건 상관없이 그녀가 다시 한번 세대가 바뀐 오늘날 게이 아이컨으로 군림하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순진한 신 세대 게이들이 우리들의 동성간 결혼을 지지하는 노래를 발표했다는 이유만으로 쉐어에게 보내는 무차별적인 사랑처럼 그녀도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그것은 마치 에미넴의 뮤직비디오를 볼때 느껴지는 분노와 동급으로 다가온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미처 팻 샵 보이즈의 고 웨스트를 빠트렸습니다. 그외에도 팻 샵 보이즈가 게이 커뮤니티에서 이룬 업적은 많은데도 말이죠. 빌리지 보이스도 빼놓 을 수 없고 조앤 잿 앤 더 블랙 하츠의 '크림슨 글로버'나 마키 마크 앤 더 펑키 번츠의 '굿 바이브레이션'이나 올리비아 뉴튼 존을 빠트린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게이 포른 테잎에서 포르노가 시작되기 전에 에이즈에 대한 위험성과 콘덤 착용을 권유하는 장면을 찍어 배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동물 보호 운동과 함께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피지컬의 말도 안되는 엉터리 가사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프로듀서의 농간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녀는 'let me be there' 'bank of Ohio'등의 노래등을 통해 게이들에게 많이 사랑받기도 했었습니다.

Jin 2004-11-09 오전 11:24

씨티에서 퍼왔는데.. 한때 에이즈 환자들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해서 게이 레즈비언 단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던 오노 요코가 이제와서 게이 결혼에 대한 지지 노래를 냈다는 것에 유감을 하며 쓴 글이더군요..

Jin 2004-11-09 오전 11:28

그런데.. 의외로 마돈나가 게이들에게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분 글을 읽어보면 한땐 그랬지만 마돈나가 게이커뮤니티에 뭔가 기여를 한지 오래되서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게이들한테만 마돈나가 인기가 많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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