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queernews 2004-07-09 23:26:58
+0 725
[박평식의 영화읽기]베르히만과 떠나는 고독여행

[헤럴드경제 2004-07-09 12:20]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제

22일까지 대학로서…소외ㆍ환멸 다룬 `제7의 봉인` 등 상영

스웨덴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영화작가 잉마르 베리만 영화제가 9~22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작품마다 인간의 고독과 소외, 환멸과 굴욕, 악령의 공포를 묘사한 베리만을 `영상 철학자` 로 부르는 것은 필름이 그를 통해 형이상학을 쓰는 만년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로 이를 만한 3편을 소개한다.

1957년 `제7의 봉인` 이 개봉되자 영화는 철학의 무게를 담아내지 못할 낡은 매체라고 얕보던 서구의 지식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경도된 실존주의의 포구에 닻을 내린 베리만은 영상으로 사고하고 이미지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작품은 `회의의 아들` 베리만이 던지는 첫 번째 신학적 토론이자 인류 파멸에 대한 근심이다.

흑사병과 마녀사냥의 광기에 휩싸인 고향으로 돌아온 기사는 죽음의 사자에게 목숨을 건 체스게임을 제안한다. 그가 승산 없는 게임으로 삶을 연장시키는 이유는 신의 목소리라도 듣기 위해서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어둠의 세계로 끌려간다. 신은 부재하는가, 침묵하는가. 베리만은 살아남은 광대 가족을 통해 신음을 쏟는다.

`어두운 유리를 통해` (61년)는 배경에 깔린 바흐의 첼로 조곡 2번의 선율만큼이나 음울한 영화다. 작가인 아버지와 반항적인 아들, 정신병을 앓는 딸과 의사인 사위가 외딴 섬에 머문다. 그들에게 휴가는 즐겁기는커녕 의혹과 적개심만 키워준다. 베리만 영화에서 영혼을 정화하는 도구로 쓰인 연극이 여기서는 `뇌혈관 속의 바늘` 이 된다.

동생을 유혹하고 죄책감에 빠진 누이의 발작이 입신의 경지에 이른 것인지 단순한 히스테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신은 그녀의 눈에 거대한 거미로 비칠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혼에 채인 족쇄는 풀리지 않을 성싶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일까. 신은 사랑이고 사랑은 신이라는 마지막 목소리가 아늑하다.

`외침과 속삭임` (71년)에서 외침은 해일처럼 무섭고 속삭임은 꿈결처럼 몽롱하다. 임종을 앞둔 동생과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두 언니, 수발을 드는 하녀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여성의 감독` 답게 베리만은 각 인물의 동성애와 불안, 도덕적 삶과 자학, 욕망과 쾌락, 연민과 헌신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미지가 갑자기 탈색되는 `워시 아웃` 과 얼굴을 접사한 뒤 붉은색을 덧씌워 인물들 내면의 심층을 도려내는 수법은 탁월하다. 유리조각을 질 속에 넣어 상처를 내는 오싹한 대목도 있지만 젖가슴을 열어 환자에게 체온을 나눠주는 장면은 액자를 끼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죽음은 삶의 논리적인 단계` 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베리만은 밝힌다. <영화평론가>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