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13
오늘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독일 의회에서 12일 나치 치하에서 박해받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계획을 승인하고 이 사업기금으로 6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좌파 연합으로 구성된 의회에서 이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바이스 문화 장관은 "지금이야말로 살해된 동성애자들이 독일 수도 한복판에서 기념돼야 할 때"라고 말했지만 기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너무 늦은 처우임에 분명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조직적으로 단시간 내에 10만 안팎의 동성애자를 학살한 적이 있었던가?
독일 정부에서는 1만 여명 정도 될 거라고 주장했지만 역사적인 정황들은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십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동성애자들이 집단 수용소에 끌려갔고, 그 중 살아남은 사람은 4천 명밖에 되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수용소에 끌려간 동성애자들은 가슴팍에 다윗의 별인 분홍 삼각형을 거꾸로 박은 표식을 달고 다녔으며, 이들은 가스 뿐만 아니라 나치 장교들의 총, 사냥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3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10 명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타리 '형법 175'조를 보면서 소름 돋는 분노 때문에 대책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던 기억이 있다.
형법 175조.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는 이 잔인한 동성애 금지법 때문에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학살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큐멘타리 '형법 175조'에 나오는 늙은 증인들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후 그때까지도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떤 증인은 한사코 카메라를 피했으며, 또 어떤 이는 이제는 마를 법한 눈시울을 여전히 적시고 있었다. 학살의 도가니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 지금까지의 생존자는 10명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태인들과 헝가리인 등은 다각적인 채널을 통해 보상을 받았지만 동성애자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변변한 보상책조차 받지 못했다. 또다시 자신을 동성애자로 전시해야 한다는 공포감과 가족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법정에 나서는 걸 가로막는 장애 요소였던 것이다.
인류 동성애자 역사에 있어 가장 추악한 억압의 사건이었던 이 독일 나치의 동성애자 사냥은 히틀러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1920년대 독일 베를린을 가장 잘 집약하고 있는 뵈블린의 소설 '알렉산더 광장(1929)'에 출연하는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처벌하는 형법 175조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긴 하지만, 당시의 베를린은 '베를린의 어원은 미소년이다'라고 객기를 부릴 만큼 만큼 서유럽 동성애자의 메카를 자처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다소 수세적이긴 했지만 칼 하인리히 울리히(1825~1895)가 동성애를 '우라니언(천상의 사랑)' 또는 '제 3의 성'이라 규정지은 채 동성애자를 핍박해서는 안 된다는 운동을 펼치면서 독일 입법회의에서 연설할 정도로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또, 20세기 들어서는 사민주의의 우산 속에서 마그뉘스 히르쉬펠트(1868~1935)가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를 창설해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 175조를 폐지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펼쳤던 것은 본격적인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효시로 지금껏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큐멘타리 '형법 175'조의 증인들의 말처럼,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까지 베를린은 형법 175조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동성애자들이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수상이 된 후 이 모든 자유는 거짓말처럼 휘발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수상이 된 지 3주만에 법적으로 게이 조직의 결성과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그 뒤에 바로 게이 엑티비스트들을 수용소로 실어 날랐다. 1934년엔 형법 175조에 의거해 비밀 경찰 게쉬타포를 가동시켜 동성애자들의 명단을 만들어, 베를린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 밀고에 의한 추정자들 모두를 싸그리 잡아다 수용소로 끌고 갔던 것이다.
이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들은 유태인과 헝가리인보다 훨씬 더 잔혹한 인격적 모독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성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항문에 막대기를 넣어 고문한다든가, 개처럼 기어다니게 한다든가 하는 증언의 목록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성애자인 척 자신을 속이며 나치 군대에 들어갔던 동성애자 군인들 이야기처럼, 과연 그런 게 가능한지 물어볼 정도로 참혹했다.
10만 명 안팎의 끌려간 동성애자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기껏 4천 명이었고, 그들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 악몽의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이 저주의 형법 175는 그 숱한 학살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1994년에서야 독일 헌법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 우리는 베를린 한복판에, 이제서야,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들을 위한 추모 기념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단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죄목으로 끌려가 개죽음을 당한 그들에게 과연 추모 기념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우리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일과 유럽의 동성애자들에게 아우슈비츠는 물리적 공포의 상징이지만, 한국의 동성애자들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침묵을 종용하는 거대한 아우슈비츠, 가시적 존재로 드러나는 것 자체를 자타가 공히 검열하는 감옥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p.s
대체 성적 소수자가 어떤 인권 탄압을 받는지 대보라는 일부 민노당 당원들의 어처구니 없는 삿대질을 보며.
아래의 사진은 '형법 175조'의 스틸 컷. 나치 등장 이전의 행복한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담고 있는 당시의 실제 사진들
웹서핑을 하다가 뒤늦게 발견한 글이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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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익명 아이디로 정치 사이트에다 올려놨더니 유령처럼 이곳저곳 배회하고 댕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