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1박 2일의 일정, 거기서 사랑에 빠질 줄이야.
40줄에 접어든 게이인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도 좀 놀랍다.
난 피터팬
거기서 웬디를 만나게 된 것이다.
피터팬과 웬디.
동화같은 사랑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인가?
참, 피터팬과 웬디는 해피엔딩이 아니잖아?
서로를 찜했던 나와 녀석은 말도 못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의 싸구려 목걸이가 고장났고 녀석이 그걸 고쳐주면서 시작되었다.
화단을 거닐고 있는 녀석은 예뻤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난 40이라는 나의 나이 때문에 녀석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녀석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나를 위축시켰다.
쪽지 돌리기...
맘에 드는 사람에게 쪽지를 돌리는 시간이 왔다.
녀석에게 쪽지를 보냈다.
영화 소모임에 나오라는 광고성 쪽지였다.
광고성이지만 내 이멜 주소를 적는 걸 잊지 않았다.
뭔가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센스 있는 넘이라면 멜 보내겠지?"
뜻밖에 녀석에게서 쪽지가 왔다.
"너무 재미있으시네요, 형... 그리고 멜 주소"
오호!
녀석도 내가 맘에 든걸까?
확인하고 싶은 맘 간절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게다가 녀석은 같이 온 친구와 줄곧 붙어 다녔다.
둘은 앤 사이 같기도 했다.
어떡하지...어떡하지...
40이 되면서 용기란 놈이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작은 것이지만 거절 당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회사에 차를 가져다 줘야 해서 녀석과 다른 경로로 서울로 돌아왔다.
맘 같아서는 같은 기차를 타고 싶었는데...
기차가 주는 정서라는 게 있지 않나.
그걸 이용해서 작업을 할까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친구사이 사무실에 먼저 도착해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몇몇이 뒷풀이를 한다고 했다.
누가 올까?
녀석은 집에 갔나?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친구사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녀석의 얼굴이 빛났다.
녀석이 서른셋이란다.
7살차이...
좀 가능성 있는 거 아냐?
후미진 식당에서 땀을 흘려가며 밥을 먹었다.
녀석과 마주 앉아 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다들 지친 표정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지하철을 타려고 가는 중에,
사실 난 버스를 타도 되고 버스를 더 좋아하는데 그냥 지하철이 타고 싶었다,
녀석과 나만 지하철을 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야 이게 웬 행운이람.
"난 남산 중턱에 살아요... 남산 좋아해요? 남산에 가실래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불쑥 뱉어 놓고 후회했다.
거절 당할게 뻔했으니까.
녀석도 굉장히 피곤해 보였고... 난 나이 40 아닌가.
"정말요? 남산 좋아요"
남산으로 향하는 버스로 갈아타며 우린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남산의 풀내음, 숲내음이 좋았다.
많은 얘기를 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지?
"울 집에 가실래요? 비오니까..."
집으로 향하면서 녀석의 손을 잡고 싶었다.
꼴깍, 침을 삼키며 호시탐탐 기회를 보았지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었다.
냉수만 마셔대는 녀석이 좀 미웠다.
녀석은 봇물 터진 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을 끊고 물었다.
"어떤 타입 좋아하세요?"
"전 키큰 사람 보다는 아담한 사람이 좋구요, 눈이 큰 사람이 좋고...유머러스한 사람이 좋고...자기 일 열심히 하는..."
그건 나잖아?
"그럼 우리 사귀어 볼래요?"
녀석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볼이 빨개지고.
이렇게 된 이상 밀어 부쳐보고 싶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녀석이 말했다.
"하나만 약속해줘요. 진지하게 만나는 거면 사귀어 볼게요."
두말하면 잔소리.
난 나이 40의 게이야.
진지하게 사귈 거라구.
녀석의 입술이 반짝하고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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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녀석을 데리고 국립극장에 갈 생각이다.
보름 달 환희 비추는 국립극장 계단에서
녀석에게 말해야지.
머리가 텅 비어서, 지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정말 염장 지르기 신공이 대단하시네요.
김광x 선생님 모스크바에서 올 때까정 저 한줄도 안 쓸 거예요. 미워미워.....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