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 보고 다소 실망해서 몇 자 적습니다.]
위에 글 써주신 마녀 님 말마따나 자신의 무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면 돌부처네, 고자네 이야기하는 소위 '일반'하고 바야흐로 님의 편견은 일맥상통하고 있단 생각이 드네요.
다른 사람들의 글에 대해 '쓸자데기 있네, 없네'하는 소리를 하려거든, 그것을 설득력있게 논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내와 관용이 필요하고요. 친구사이 회원인가 아닌가는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쩌면 위에 글 써주신 마녀 님의 "무성애주의"에 관한 논의야말로 양성애와 더불어 게이 커뮤니티에서 폭넓게 사유되어야 할 문제임에도, 계속 방기되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최근 컬티즌에서 무성애에 대해 다뤘던데(유료라서 보진 못했어요. 글 유료, 미워요~~ ^^), 랄프 레이더에 대해 잠깐 언급한 구절이 있더군요. 수잔 새러든과 팀 로빈스 부부가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녹색당 랄프 레이더의 무성애 선언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값진 커밍아웃이자, 인간=성적 존재라는 일괴암적인 성 담론에 새로운 논지를 제공한 값진 선언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무성애자asexual라고 주장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의 좌절된 성 경험을 상상적으로 가공해서 '여성 히스테리' 라는 병을 고안해낸 19세기 서구 남성 의학자들의 태도로 여전히 일관하고 있습니다. 늘 비난 일색이죠. 병원에 가라든지, 니가 남자 맛을 못 봐서 그렇다든지,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나서 그렇다든지 하는 논의들 말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어느 여자 선배가 섹스에 대해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병원과 정신병원에 가도록 권유받은 탓에 괴로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섹스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을 병으로 여기는 태도는 오르가즘을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무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성 담론이 과잉화된 이성애주의의 무지의 소산에 불과할 뿐입니다.
섹스에 대한 이해는, 그 사회의 인간에 대한 이해도와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기 서구 기독교에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마니교는 섹스는 안할 수록 좋은 것, 구원을 위해서는 섹스를 하지 말아야 된다 등의 교리를 숭상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엄청난 금욕주의가 내장되어 있긴 했지만, 그 당시 사회의 수많은 무성애자asexual를 자처한 사람들을 모두 광신도'로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섹스 이외에도 자신의 존재를 근거지우는 저 밑바닥 원리를 믿고 있었을 테니까요.
동성애가 생물학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거나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조작'된 특이 성 행태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성애를 생리학적 병으로 돌리거나 오르가즘과 섹스를 두려워하는 병적 징후라고 주장하는 것과 별 차이 없습니다. 이런 건 당연히 소거해서 버려야 할 편견들입니다.
과잉된 성 담론의 사회에서 자신의 무성애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용기입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말초적인 섹스 못지 않게 다른 언어로 친밀성을 구성하고 싶어하는 무성애적 욕망은 이 사회에 대한 또다른 비판적 힘을 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말 다양한 욕망의 인간들과 다양한 언어로 삶을 사유하는 인간들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사유해야 할 또 다른 점이지대일 것입니다.
무성애, 섹스포비아로 몰아부쳐선 안 될 것입니다. 반여성주의자였던 니체이긴 했지만 그가 가진 무성애에 대한 고집스런 탐색 역시 지금 우리가 사유하고 공부해야 할 또다른 앎의 과제입니다. 섹스가 없으면 친밀성이 구성되지 못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대체 우리가 친밀성과 섹스 없는 에로스의 영역을 알고 있기나 한 걸까요?
에피큐리안(소위 쾌락주의라 잘못 오용된)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아주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고대 사회의 보헤미안들이 말하는 (고통 없는) '쾌락'이야말로 무성애자들만이 취할 수 있는 멋진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어요.
p.s
참고 : 전 섹스를 무지~ 좋아하는 게이입니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는 무성애자들, 혹은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혹은 선택하는) 자들과 다양한 쾌락을 함께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