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 회원이자 이번 인터뷰어인 '전재우' 씨는 며칠 전, 교정이 덜 된 원고를 남긴 채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 류청규 씨의 인터뷰는 이미 일 년 전에 약속된 터였다. 전재우 씨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과연 류청규 씨의 천방지축 입담을 당해냈을까 싶다. 그의 천방지축 입담 이면에는 자신에 대한 자심감이 사과 씨앗처럼 단단히 박혀 있지 않을까?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은 그 의문 부호를 느낌표로 돌려놓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세상의 모든 아침 속에서 단단히 여문 사과 하나를 틀어쥔 듯한 그의 에너지를 감촉할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커밍아웃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쾌히라뇨? 기다린 지가 벌써 일 년째인데.
앗, 죄송합니다. 인터뷰어가 미모 단장하느라 바빠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미모가 그 모양이세요?
하하하. 님을 일 년 동안 기다리게 했던 인터뷰어는 제가 아니라 모던보이(1~9회 인터뷰어)님이셨답니다. 우선 간단한 신상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목소리 깔며) 제 이름은 류청규입니다. 나이는 서른이구요, 겉모습은 마흔 정도로 보이지만...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는 기갈을 부리시더니만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겸손 모드로 들어가시나요?
글쎄요, 내가 미쳤나..
그대로 옮겨도 돼요?
원래 솔직하게 사니까 별로 신경 안 써요.(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눈 두 번 깜박임)
직업은요?
(계속 목소리 깔며)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흠흠. 목소리가 너무 단아한가요?
역겨워요. 평소에 하던 대로 하세요.
역겨워서 그런 게 아니라 미모 때문에 눈이 부셔서 그런 거겠죠.
눈이 부시긴 하지만 미모가 아니라 다른 이유죠. 인터뷰 보시는 분들도 님의 사진을 보시면 수긍을 하실 겁니다. 저기 고개를 돌려서 일단 거울부터 보시지 그러시죠?
- 너무 예쁜데요.
인터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하하. ‘브레이킹 더 아이스’를 했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
흠흠... 갑자기 영어를 쓰시니 당황스럽네요. 게다가 스스로를 인터뷰어로 착각하시나 보죠? 근데 별명이 왜 아류인가요?
군대에 있을 때 생겼어요. 토목건축전기 등을 다루는 일을 했었는데 선배들이 자료를 물어보면 ‘아, 류한테 물어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곤 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아류가 되었어요.
네? 저는 다르게 알고 있었는데요? 원본이 있으면 아류, 즉 모사품이 있잖아요. 미모도 모사품, 하는 행동도 모사품 이런 식으로...
흥, 원래 미모가 뛰어난데 뭐...
아무래도 미모에 컴플랙스가 있는 듯 들리네요. 그럼 커밍아웃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대학교 일학년 때, 저랑 제일 친한 친구가 군에 갈 때였어요. 친구한테 자신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평소에도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여자친구 없냐?’는 질문이었는데 ‘관심 없어.’ 이런 식으로 둘러대는 게 싫었어요.
반응이 어땠어요?
가기 전날 파티를 했는데 그때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난 사실 게이다. 내가 게이인 걸 이해해 줄 수 있다면 휴가 나올 때 편지나 하라’ 고 했죠. 그리고 2주 후에 제가 걔네 가족들보다 먼저 편지를 받았어요. ‘너는 그 정도 일 땜에 내가 널 다르게 볼 거라고 생각하냐? 너 나가면 죽었어.’ 라는. 그 편지 받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지요. 그리고 나서는 다른 친구들한테도 여기저기 커밍아웃을 많이 했어요. 누구라도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면 ‘전 게이인데요. 라고 대답할 정도로요...
가족들은요?
부모님만 빼고 누님들은 다 아세요.
누님들 반응도 비슷했어요?
큰누나 작은누나는 첨에 정신병원에 예약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학생 때라 지방에서 바쁘게 지내느라 기회를 놓쳤지요. 그 때 누님들이 나름대로 동성애에 대해 공부도 하시고, 관심도 가지면서 저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직장생활에서도 커밍아웃 경험이 있어요?
저희 설계소 사람들은 다 알아요.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농담 식으로 ‘전 남자가 좋아요’ 그런 식으로 시작하죠. 사람들이 농담인 줄 알고 안 믿어도 계속 우기고 하니까... 결국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걸요.
나름대로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인거 같네요.
그런 우스개 소리들이 습관이 되니까 자연스럽고 편한 거 같아요. 지나가다가 잘 생긴 남자 지나가면 ‘어 저 남자 내 스타일이야.’ 라고 하는 식으로... 생활의 일부인 거죠.
커밍아웃이 습관이라니... 참 재미있네요. 피곤하거나 귀찮지는 않나요?
물론 나랑 별 관계 없는 사람들한테는 할 필요가 없는데 나랑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통성명하듯 자연스러운 일인 거 같아요.
직장에서 게이라서 차별받는다고 느낀 적 없어요?
전혀 없어요.
정말요? 설계소에 다닌다고 하셨는데 전문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런건가요?
일단은 팀원들이 다 이해하니까요. 사실 차별할 이유가 없어요. 건축설계 사무실이라 아무래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자유롭고 개방적일 수도 있겠죠. 우리 과장님이 결혼한 여자 분인데 ‘우리 청규 시집보내야지.’ 그런 말까지 하곤 해요.
참, 차별은 아니고 딱 한번 팀장님이 ‘게이로 살기에 힘들진 않아? 한 적은 있어요.
애인 없다고 자랑하고 다니나 보죠?
하하. 주변에 멋진 오빠들이 있다면 소개시켜 달라고는 하죠. 물론 기대는 안 하고... 아, 딱 한번 직원 중 한명이 외국인 게이를 안다고 해서 팬팔한 적은 있어요.
얼마동안?
한 번 편지가 왔다갔다 하고 그쳤어요.
왜요?
이탈리아 사람이었던데 그 곳 우편사정이 안 좋아서인지 가는 시간만도 한 달 걸렸던 거 같아요. 그 사람은 이 메일도 안 썼고... 하여간 연락이 자주 안 되니까 흐지부지 되었죠.
그게 아니고, 그쪽에서 청규님을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 미모를 보고도 그럴 수는 없겠죠.
미모? 미모를 보내 그럴 것 같은데?
사진 안 보냈어. 이 삐리리.
뭐? 삐리리? 이 인터뷰 보고 연락오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이미지 관리 좀 하시죠. 아무래도 청규님은 ‘자뻑’ 과인 거 같아요. 인정하죠?
설마요. 자뻑과의 대모인 모던보이(인터뷰어 주: 모던보이는 친구사이 회원 중 한 사람임) 언니가 있는데. 저는 개발의 때예요.
왜 그렇게 자학하세요?
하하, 모던보이 언니. 그 천박한(?) 언니랑 나를 비교하니까...... 사실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저한테 ‘고상 류’라고 불렀답니다.
됐구요, 엄마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나이가 서른이면 엄마도 결혼하라고 하진 않아요?
큰누나가 아직 미혼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간접 커밍아웃을 할 의도로 관련 서적 등을 집에 뿌리고 다녀요. 눈치를 못 채시는 거 같기는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이성애주의 결혼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결혼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걸 어필하죠. 일단 결혼이야기가 나오면 누나들이 스크린 쫙 쳐주시죠.
집안 분위기가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 정도인가 봐요.
군인 집안이라서 좀 엄하긴 하지만 대화는 많이 하는 편입니다. 사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집에서 엄청 욕 먹어요.
음... 뜻밖인데요, 밖에서는 입담이 걸쭉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집에서 못 한 걸 밖에서 풀어요. 어렸을 때 받은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할까. 흐흐
네, 자꾸 어려운 말 쓰지 마시고요, 다시 직장 이야기로 돌아가죠. 밖에서 보기에 직장생활을 참 열심히 한다고나 할까,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모자랄 듯 빠듯하게 사시는 거 같아요.
출근시간은 아홉시, 퇴근 시간은 원래는 여섯 시 반인데 열한 시나 열두 시에 퇴근해요. 휴일 날도 쉰 적이 드물고요. 건축설계 업종 자체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문제랄까, 저임금에 노동시간은 많고... 게다가 회사에서 퇴근해서 설거지 빨래 밥하면 한두 시, 잠깐 자고 일어나서 도시락 싸고... 그러면 또 출근이죠.
도시락까지 싸다니 대단하시군요. 혼자 사시나 보죠?
네.
제일 자신 있는 도시락 반찬은?
뭐든지 잘 하는데... 오호호 나, 좀 재수 없지?
재수 많이 없는데요?
삐리리. 음... 개인적으로 호박을 얇게 썰어서 기름에 지진 다음 양념장에 절여놓으면 아주 맛있는 반찬이 되요. 충청도 음식인가? 어머니한테 배운 거죠.
요리를 잘 하시나봐요?
물론이죠. 누나 따라 맛집에 많이 다니다 보니 요리에 관심도 갖고, 그러다 보니까 요리에 취미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배도 나오고?
최근 한 달 사이에 4k 나왔어요.
그런데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면 연애는 언제 해요?
그러니까 아직 싱글이죠.
남몰래 가끔 호박씨도 깐다고 들었는데...?
작년 겨울에 원나잇스탠드 한번 한 적 있어요.
상당히 솔직하시네요.
진짜... 그리고 그 후엔 또 너댓 번 만난 친구가 있었는데 시간도 없고 돈이 없어서 바로 채였죠.
설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죠.
사실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섹스를 요구했는데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거든요.
참, 특이한 연애관이네요. 한두 번 만에 육체관계를 맺곤 하는 다른 게이들과는 다른데요?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요. 짝사랑만 많이 하고... 지금까지 정절을 지켜왔는데 그 사람이 좋다고 제 가치관을 깨고 싶지 않아요.
정절이라... 섹스에 대해 너무 대단하게 여기거나 판타지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잖아요.
조선시대에서 튀어 나온 거 같아요.
집안 분위기가 보수적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성격도 그래요. 일할 때도 저는 디자인보다는 보고서 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의 일들이 적성에 맞아요. 사실 군대에 있을 때가 저랑 제일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신가보죠?
네.
섹스를 통해서 상대방을 더 잘 알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학생 때, 어떤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첨 만났을 때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그 사람이 계속 섹스를 요구했는데 저는 피했죠. 그러다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 섹스를 했어요. 근데 그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자신에 대한 실망감, 혹은 배신감...
너무 스스로를 구속하거나 철저히 관리한다고는 생각 안 해요?
모르겠어요. 제 좌우명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일, 직장일, 여력이 되면 친구사이 등 인권단체 일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세 가지 다 노력하니까 하나도 못 잡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런 완벽주의가 제 최대의 구속인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상형은 그런 비슷한 가치관이 있는 사람?
‘구리구리넙대대’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외모 상으로는 좀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고 덩치도 있고 수염 자국도 나고,... 음...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지진희? 조승우도 귀엽지요.
조승우는 전혀 ‘구리구리 넙대대’ 한 타입이 아니잖아요.
그런가... 하하. 그때그때 다른 거 같아요.
청규님의 이상형인 ‘구리구리넙대대’가 만나자마자 섹스하자고 하면 어쩌실 건가요?
좀 전에 잠깐 이야기했던 최근 두 달 가량 사귀었던 사람도 그런 내 이상형이었어요. 하지만 안 잤어요.
너무 이기적인 관계가 아닌가요? 연애는 상호작용인데?
상대방도 이해를 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랬죠. 하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마찰이 생기고 헤어지기까지 되었죠.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친구가 원한 건 육체적인 섹스라기보다는 육체적 관계를 통한 정서적 교감이었을 거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지만, 떠나가고 나니까 그 사람을 더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나 자신의 기준만을 강요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그래서 그 사람한테는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진심으로요.
이성애자들처럼 결혼도 하고 싶어요?
네. 부모님들, 친지, 친구, 직장동료 다 모아놓고 축복받으면서 사랑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동성간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은데요?
그게 문제긴 하죠. 하지만 저는 장기적인 일대일 관계를 사회의 용인을 받으면서 살고 싶어요.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적 결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많잖아요. 그런 이성애적 결혼을 원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어요?
이성애주의적 가족제도, 또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로써 결혼 제도를 바라보는 건 아닙니다. 두 사람간의 일대일 관계에 대해서 찬성하는 겁니다. 대안가족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거기도 가능성이 있고요. 외국에는 씨빌 유니언 같은 관계가 있잖아요. 근데 우리나라에 그런 제도가 없다는 건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겠죠. 친구사이나 동인연 같은 단체가 있으니 힘써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저도 힘닿는 데까지 같이 하고 싶구요.
십 년 뒤 청규님의 모습은 어떨 거 같아요?
솔직히 지금처럼 일하진 않을 거 같아요. 공부를 더 할 생각인데, 십 년 후면 엄청 깐깐한 교수가 되어 있겠죠.
청규님을 보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열심히 달려가는 것 같아요. 회의가 들 때는 없나요? 왜 나만 이렇게 열심히 살지 라든가...
최근 개인적으로 악재가 겹쳐있는데... 지금은 힘들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어차피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니까.
쉬고 싶지는 않아요?
무지 쉬고 싶죠. 삼 개월 정도 배낭여행이라도 가고 싶어요. 활시위를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툭 끊어지잖아요. 지금이 툭 끊어지기 전의 상태인 거 같아요.
좋은 남자 만나서 같이 여행가고 싶어요? 아님 혼자?
지금은 그냥 좋은 친구랑 가고 싶어요.
좋은 친구가 많나 보죠?
처음 커밍아웃 했던 그 친구랑 해마다 여행 같이 다녀요. 두세 번씩...
그 분은 결혼 안 했나보죠?
네. 근데 이 년 전부터 연애하더니 저랑 같이 여행 안 다녀요. 작년에는 우연히 제주도에 같은 날 여행을 가게 되어 만났는데 저랑 제 일행들을 피하더라구요. 하하 집에서는 그 친구에 대해 둘째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신뢰를 갖는데...
보통 게이커뮤니티에 들어오면서 이성애자 친구들과 멀어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청규님은 일반 친구들이 더 가까운 거 같이 들려요.
사실인 거 같아요. 일단 게이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제 몇 년 안 되었지만 그 친구들은 십 년, 이십 년 되었고 어떻게 보면 제 생활이나 제 생각을 잘 아니까 더 잘 이해해줘요. 사실 그 친구들 때문에 제가 게이커뮤니티에 자주 나올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복이 많네요. 게이들은 일반친구를 만나면 공통 화제도 부족하고 이해도 잘 못해주니까 재미 없다고 하고, 그래서 소원해지는데 말이죠.
일부러 공통의 화제를 많이 만들어요. 사람 사는 건 똑같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대상만 다른 거죠. 모두가 바쁘게 회사생활하고... 걔네들이 여자이야기 하듯 저는 남자 이야기하고 뭘 물어보면 저는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그 친구들이 의외로 신경을 써주는 것도 있어요. 오래 전에 한 친구에게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사실은 내가 게이인데 동성애자 단체에 가려니 무섭다. 같이 가자’ 그랬지요. 그래서 친구사이에도 같이 왔었어요.
(이 때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친구사이 회원 모군. ‘형, 형이 더 무서워요.’ 라고 함)
또 다른 예로 한 친구한테 커밍아웃하고 나서 멋쩍기도 하고 그래서 그 무리들과 좀 거리감을 둔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네들끼리 내 문제를 상의하고 ‘그냥 기다려주자’ 그렇게 합의를 했대요. 그래서 한참 후에 모임에서 커밍아웃을 했더니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네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 하더군요. 눈물 날 뻔 했어요.
청규님 이야길 주욱 듣다 보니 정말 못 하는 게 없는 사람 같네요.
애인 사귀는 거. 그리고 가끔 성격 콘트롤을 못 해요. 한번 열 오르면 아무도 못 말려요.
성격 때문에 오해도 받겠네요.
저는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이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요. 그래서 화를 내도 아는 사람은 다 이해를 해주죠.
언젠가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커밍아웃하고 나서 사람들한테 신경질 내니까 ‘쟤가 게이라서 뭔가 꼬여서 그렇다.’ 는. 그런 오해를 받은 적도 있나요?
누나가 그런 적 있어요. 큰 누나가 해주는 이야기. 너무 공격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라. 물론 네가 어려서부터 혼자 고민을 안고 자라서 그럴 수 있으니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만 공격적 성향을 띄는 건 도움이 안된다고...
동의하나요?
모르겠어요.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거 같아요. 저희 아버님도 다혈질 적이고 환경의 문제일수도 있고 유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성격콘트롤 하기가 힘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군요. 어떻게 풀어요?
노동이죠. 신체적 노동은 저한테 많은 의미가 있어요. 어렸을 때도 용돈을 탈려면 신발을 닦던지 어머니 심부름하든지 하는 식이었어요. 얼마 전에 굉장히 화가 나서 진정을 못하고 부들부들 떨릴 정도까지 간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집안청소, 옷장청소, 화장실청소까지 다 했어요. 육체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신경을 안 쓰니까 스트레스를 잊게 되더군요.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겠군요?
네. 스트레스 받으면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해라...
후후, 결혼생활이 힘든 아줌마가 하는 이야기 같군요.
그럼요.
참, 제가 청규님을 처음 봤을 때는 긴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몇 년간 잠적했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왜 갑자기 이런 머리로 바꾸신 거죠?
제가 롹음악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무조건 머리부터 기르려 작정을 했었죠. 그렇게 4학년까지 기르니까 허리까지 오더군요.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잘랐어요. 생일날이었는데 완전히 삭발을 했었죠. 몇 달간 그렇게 다녔었죠.
아, 전 저절로 빠진 거라 추측했었는데... 그렇게 변신하니까 주위에서 뭐라고 안 했어요?
아버지가 ‘너 반항하냐?’ 그랬어요.
음악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엠피쓰리가 6기가가 되요. 옛날부터 꾸준히 듣는 건 dream theater 노래랑요... 그 외 melodic death....
헤비메탈 계열인가요?
트랜스나 팝도 들어요. 장르는 힙합이랑 붕어새끼처럼 텔레비젼에서 입만 벙긋벙긋 하는 아이돌 스타들의 노래 외에는 다 들어요.
대충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차피 우리가 소수자고 힘이 없는 사람이니까,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쟤는 쟤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 혹은 ‘재는 나보다는 뛰어난 게 있어.’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칼자루는 하나씩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나 기술이 있는, 혹은 배경이 튼튼한 사람이 아니라면요? 돈 없고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성소수자들은 어떻게 살죠?
음... 그 부분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많이 해볼께요. 저는 항상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노력을 덜 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을 거니까요.
조금만 더 괴롭힐게요. 능력이 똑같다면 성소수자가 차별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네. 다만 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자 인권이 탄탄대로를 걷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세대에서는 평등한 세상이 오기는 힘들 수도 있겠지요. 그런 길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이성애자들보다 우월하게 올라서야지 그런 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근데 이건 개인의 생각이니까 남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각자 생각이 다르니까요.
알겠습니다. 요즘 재미있는 일 없어요?
음... 회사 때려치는 일만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에 마음이 심란해가지고 불교서적을 너댓 권 사다가 읽었는데 굉장히 마음의 평화를 많이 얻었어요. 용서에 대한 부분, 자비에 대한 부분 등 마음에 평화를 많이 얻었어요.
제목이 뭐였었죠?
‘용서’ ‘인도기행’ ‘왜 사는가’ 이런 것들요.
책 읽을 시간이 나요?
버스 안 출퇴근길. 자기 전 삼십 분은 가능하면 읽으려고 해요. 예전에는 전공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이번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하나만 보고 가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 참 소중한 깨달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오늘 청규님이랑 이야기 나누며 저도 즐거웠고요, 수고하셨어요. 부디 구리구리 넙대대한 남자 만나 호박지짐 부쳐먹으며 백년해로 하시기 바랍니다.
언니가 수고하셨죠, 뭐.
*이 인터뷰 내용과 사진은 류청규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
(류청규 : yoshiki@expoapt.net)
(글 : 전재우 jjoohyun@chol.com, 사진 : 이송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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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새롭게 커밍아웃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 라이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해 주신 분은 김용일 형입니다. 나이는 마흔이 살짝 넘었구요. 인터뷰 초짜인 저는 그의 유쾌함을 지면에 옮기고 싶었어요. 친구사이 게이코러스와 수영모임인 마린보이에서 ...
친구사이 회원이자 이번 인터뷰어인 '전재우' 씨는 며칠 전, 교정이 덜 된 원고를 남긴 채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 류청규 씨의 인터뷰는 이미 일 년 전에 약속된 터였다. 전재우 씨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과연 류청규 씨의 천방지축 입담을 당해냈을까 싶다. 그의 천...
그의 별명은 '마님'이다. 항상 단아한 행동거지와 말씀씀이로 천박한 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온 바, 마치 조선 시대 화폭에서 걸어나온 마님을 대하는 듯한 정갈함이 항상 몸에 배여 있다. 또 그는 2000년도 친구사이 회장이기도 하다. 말수를 아끼는 그 세심함 뒤엔, '...
그는 종로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을 조금 잔 후 그는 낮에 회사에 출근한다. 이처럼 맹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우린 주제를 그의 닉네임인 '순수한 소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 가닥은 그의 특이한 이중생활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군...
지금껏 했던 커밍아웃 인터뷰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인터뷰였다. 그의 언어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도발적이었고, 미처 우리가 발설하지 못한 부분을 저어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데 인터뷰어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뼈속까지 게이다, 그의 진정성을...
며칠 전 우리는 그가 퇴근할 무렵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msn을 통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시무룩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셀 위 댄스, 정말로 그에게 맞는 행복한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이...
그는 사랑니를 빼느라 진통제를 먹고 있어 정신이 몽롱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에 대해 궁금하는 이가 많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보겠지만 그는 소박한 소망, ...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재흠은 마음006과 친구사이의 회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밝은 면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한편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도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열성도 함께 겸하고 있는 그와 '복날은 간다'라는 제...
# 인터뷰의 질문들에 답을 달며... 몇년을 알아온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이기 보단 커뮤니티를 알리고 동성애자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과 에이즈문제 등을 다루...
천정남, 98년 친구사이 회장. 이 인터뷰는 2001년에 행해졌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터뷰 뒤에 후기를 적어놓는다. 1. 당신은 98년 친구사이 회장이었다. 우린 당시 언론에서 당신의 인권 운동 활동에 대해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