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남, 98년 친구사이 회장. 이 인터뷰는 2001년에 행해졌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터뷰 뒤에 후기를 적어놓는다.
1. 당신은 98년 친구사이 회장이었다. 우린 당시 언론에서 당신의 인권 운동 활동에 대해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오.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 말입니다.
주위에서는 농담을 섞어서 현재의 나를 보고 ‘유한마담’ 이라고 하기도 한다.내가 생각하기에도 틀린 말은 아니다.연애하고,여행 다니고,건강관리,몸매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돈 많이벌 궁리하고...
내가 친구사이 회장을 할 때는 눈에 띄게 인권운동이라는 것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활동은 안한다.단지 소모임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그 속에서 개개인들이 조금씩 변하게끔 도와주는 편이다.
2. 당신은 소위 '아줌마 부대(?)'라 일컬어지는 한 무리의 게이 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들을 언제 알게 되었고,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친분이 유지되는지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끼리는 ‘종합반’이라고 부르는데 주위에서는 ‘아줌마부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이 말을 들으면 난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기분 나빠 할 것이다.따지고 보면 우리 모임에 아줌마는 나밖에 없다.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다들 처녀다.‘종합반’은 내가 친구사이 회장을 하던 1998년도에 우연히 만들어졌다.당시에는 친구사이에 회원가입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었다.사람이 많다보니 끼리끼리 모이는 경우가 많았었고 ‘종합반’은 그 무리 중 하나였다.물론 ‘종합반’은 친구사이 내에서도많은 활동들을 했었고 98년 이후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일꾼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우리 모임을‘종합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많은 활동들 운동.여행,영화보기,음주등)을 모두함께 하기 때문이다.당연히 한 가지 활동에만 참가하는 사람들은 ‘단과반’이다.현재 종합반은 당시의 멤버들이 대부분이고 우리 모임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도 받아들이고 있다.
3. 당신의 집은 성북동에 있다. 커밍아웃 1호 인터뷰이인 신정한 씨와 함께 동거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연인관계가 아님에도 지금까지 함께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정한이 형과 이 집에서 산 지는 3년이 넘었다.아무리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도 같이 산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둘 중에서 한 사람은 성격이 무던하거나 이해심이 많아야 가능할텐데 나는 그리 무던하지 않은 것 같고 정한이형 성격이 무던하고 이해심이 많은 것 같다.
4. 당신의 친구들인 '아줌마 부대'와 '성북동 집'에 모이면 대체 무얼 하고 노는가? 자주 모이는 걸로 아는데, 그곳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건가?
주말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모이는 편이다.모여서 특별히 하는 건 없지만 모일때마다 동네가 떠나갈 듯 유쾌하다.
5. 당신은 기회가 닿기만 하면 '게이 실버 타운'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뜻이 맞는 게이 친구들이랑 고적한 곳에 다세태 주택을 짓고 함께 모여 살겠다는 계획인가? 당신의 계획을 말해 달라.
‘게이타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정책은 후진국 수준이다.특히나 혼자 사는 사람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결국 우리의 문제는우리끼리 해결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장기적으로 한 지역을 게이타운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지만 우선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한 건물에서 살 계획이다.
6. 스톤월 봉기가 일어났던 뉴욕 크리스토퍼 거리를 중심으로 나이 든 게이들의 마을이 구축되어 있다. 그곳은 실제적인 게이 커뮤니티가 이루어져 있어, 장례식 문제라든지 건강문제라든지 하는 실버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당신과 '아줌마 부대'가 꿈꾸는 '실버 타운'은 그런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는 건가? 다른 계획이라면 차별성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꿈꾸는 실버타운도 마찬가지이다.현재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있다.그 해결책으로 게이타운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모델은 게이타운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이다.
7. 우스개 질문 하나 하겠다. 게이 실버 타운이 들어설 곳을 정했는가? 서울인가?
아직 정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성북동도 후보지 중의 한 곳이다.실제로 성북동과 이일대에는 게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그리고 계속적으로 게이들의 이주를 추진하고 있다.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사를 생각하고 계신 붙이 있다면 성북동 일대로 이사를 오시기 바랍니다.
8. 당신은 친구사이 소모임 몇 군데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이고 어떤 이유로 소모임에 나가는지 말해 달라.
나는 현재 수영모임에만 나가고 있다.수영모임은 종합반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었던 모임이고 수영하기를 좋아한다.
9. 이제, 당신의 연애 이야기를 하자. 애인이 있는가? 있다면 간단히 소개 좀 해달라.
현재 애인이 있다.나보다 나이가 두 살 더 많고 이해심이 많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같이 다니면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10. 당신은 애인이 생기면 지속적인 관계를 꿈꾸는가? 아니면 가볍고 편한 관계를 추구하는가? 당신의 애정관을 알고 싶다. 아울러 현재 애인이 있다면, 그 애인과 나눌 미래의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가볍고 편한 관계도 좋고 지속적인 관계도 좋지만 현재의 애인과는 지속적인 관계를 원한다.그래서지난 연말에 부모님께 소개를 시켰다.물론 부모님도 만족해 하신다.부모님은 이 사람을 내 반려자로 생각하신다.나도 마찬가지이다.
11. 이제는 그만 끼 떨고, 좀 얌전한 질문을 하겠다. 당신이 친구사이 회장으로 있었던 98년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변한 것 같다. 홍석천 커밍아웃 사건이나 엑스존 사건에 대한 공동대응 등 굵직굵직한 사태들이 있었다. 만일 뭔가 변한 것이 있다면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해 달라.
글쎄,내 생각에 별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변한 것이라고는 게이 바가 눈에 잘 뛴다는 것이다.당시만 해도 대부분 지하에 있었는데 지금은 지상에 간판을 크게 걸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숫자도 많이 늘었다.
12. 어쨌든 '인권운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듯' 여겨지는 당신의 눈으로 보기에, 현재의 인권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나는 ‘인권운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듯’이 아니라 먼 발치에 서 있다.그래서 아무런 생각이 없다.그리고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입으로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13. 앞으로 당신은 인권운동에 개입할 계획이 있는가? 있다면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지금은 내가 참가하고 있는 수영소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14.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인 사건이 당신에 의해 연출된 적이 있었다. 당신 어머니 칠순 잔치 때, 당신은 당신의 '아줌마 부대원'들과 함께 시골집에 내려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복을 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당시에 친구사이 게시판에 사진들을 올렸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는 얘기를 했었다.우리집에‘종합반’ 사람들이 놀러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고향이 경북 영덕이기 때문에2000년 여름에도 휴가차 함께 갔었다.어머니 칠순잔치에 아들 친구들이 가서 축하해 주는 것은 어찌 보면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들의 게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간다는 게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더군다나 나는 커밍아웃을 한 지 오래돼서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내 성정체성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이다.하지만 결과를 봐서는 매우 성공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전공을 살려서 그 날 사진촬영과비디오 촬영은 내 친구들이 모두 맡아줬고 주말마다 바에서 노래 부르던 실력을 살려서 몇몇은 기쁨조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스스로 게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본 게 처음일텐데 어머니는한사람씩 모두를 포옹해 주셨다.“우리 정남이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잔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문화적 충격을 좀 받았던 모양이다.나름대로는 조심한다고 무지 애를 썼지만 아마도 종합반 언니들의 끼가 샜던 모양이다.그래도 그날 종합반 사람들은 비싸기로 유명한 영덕게를 배터지게 먹었었다.내 큰형님이 기분 좋다고 50만원 어치나 사줬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친구들 잘 지내냐고 물어보신다.
15. 집안 어른들은 지금 현재 당신을 '게이 아들'로 떳떳이 인정하고 있는가? 만일 인정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건가?
현재는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16. 마지막 질문이다. 한때 친구사이 회장이었던 게이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적인 게이의 입장으로서, 20대 안팎의 젊은 게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허심탄회 말해 달라.
이런 질문을 받으니 내가 마치 중늙은이가 된 것 같군.
동성애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커밍아웃은 필수적이다.
내가 커밍아웃이란 것을 처음 한 게 21살 때 였다.당시 내가 그런 결심을 했던 것은 내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고 타인들로부터 당당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20대 초반에 내가 가장 잘 한 일이 바로 그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고 사회적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조금씩 표현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2003 후기
천정남 그는 2003년 새롭게 변신한 듯하면서도 여전한 면모를 보인다. 당시 인터뷰 할 때 사귀고 있던 애인과 얼마 전에 함께 동거에 들어갔고, 종로에 아담한 게이 바를 차렸다. 게이 바 상호는 '프렌즈'. 그곳에 가면 그를 볼 수 있다.
그의 여전한 면모란, '수영모임'을 이끌고 2003년 퀴어문화축제 거리 퍼레이드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이끄는 데 숨은 주역으로 일했고, 친구사이 내에서도 '챠밍스쿨'을 기획하는 등 지속적으로 인권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그의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종로엔 그가 있다.
* 이 인터뷰 내용은 천정남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이송희일 : gondola21@gondola21.com).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커밍아웃 스물한 번째 이야기를 위해서 바람이 차던 십일 월의 밤에 그를 만났다. 평소 내면의 아름다움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그는 막 퇴근한 수수한 차림 그대로, 조금은 피곤한 듯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샤우비 풋풋한 이십대의 F4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친구사이 커밍아웃시리즈는 동안불패 꽃중년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얼굴과 목소리를 “까실”분은 낙원동의 자랑스런 이쁜이, 친구사이 사무국장 ‘박기호’님입니다. 소개좀 ...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열아홉 번 째 커밍아웃 인터뷰 주자이자 일명 F4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인공은 “아직은” 스물 여덟인 청년 나성천이다. 인터뷰 제의에 한마디로 쉽게 응한 그는 인터뷰 장소를 고르는 데는 꽤 신중했다. 분위기 있는 한적하...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스물두 살. 총기 있는 눈망울과 수줍은 미소. 친구사이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일 년 남짓 된 그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년 같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그는 과감한 몸개그와 예측 불가능한 유머로 주위를 무장해 제...
인터뷰어,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열 여섯 번 째 친구사이 커밍아웃인터뷰의 주자는 이십대의 풋풋한 청년 권동해다. 몇 달 전까지 종로의 어느 빠에서 일하던 그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은 그의 근황이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잘 웃고, 여전히 ...
그의 닉네임은 ‘스파게티나’이다. 스파게티집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장난삼아 붙여준 별명이다. 우아한 닉네임만 듣고 그 역시 예쁘고 도도한 도회풍(?) 게이일 거라는 선입견은 갖지 않기 바란다. 아래 이야기를 읽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그는 생활력 강하고 듬직하...
안녕하세요. 저는 새롭게 커밍아웃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 라이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해 주신 분은 김용일 형입니다. 나이는 마흔이 살짝 넘었구요. 인터뷰 초짜인 저는 그의 유쾌함을 지면에 옮기고 싶었어요. 친구사이 게이코러스와 수영모임인 마린보이에서 ...
친구사이 회원이자 이번 인터뷰어인 '전재우' 씨는 며칠 전, 교정이 덜 된 원고를 남긴 채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 류청규 씨의 인터뷰는 이미 일 년 전에 약속된 터였다. 전재우 씨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과연 류청규 씨의 천방지축 입담을 당해냈을까 싶다. 그의 천...
그의 별명은 '마님'이다. 항상 단아한 행동거지와 말씀씀이로 천박한 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온 바, 마치 조선 시대 화폭에서 걸어나온 마님을 대하는 듯한 정갈함이 항상 몸에 배여 있다. 또 그는 2000년도 친구사이 회장이기도 하다. 말수를 아끼는 그 세심함 뒤엔, '...
그는 종로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을 조금 잔 후 그는 낮에 회사에 출근한다. 이처럼 맹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우린 주제를 그의 닉네임인 '순수한 소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 가닥은 그의 특이한 이중생활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군...
지금껏 했던 커밍아웃 인터뷰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인터뷰였다. 그의 언어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도발적이었고, 미처 우리가 발설하지 못한 부분을 저어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데 인터뷰어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뼈속까지 게이다, 그의 진정성을...
며칠 전 우리는 그가 퇴근할 무렵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msn을 통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시무룩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셀 위 댄스, 정말로 그에게 맞는 행복한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이...
그는 사랑니를 빼느라 진통제를 먹고 있어 정신이 몽롱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에 대해 궁금하는 이가 많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보겠지만 그는 소박한 소망, ...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재흠은 마음006과 친구사이의 회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밝은 면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한편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도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열성도 함께 겸하고 있는 그와 '복날은 간다'라는 제...
# 인터뷰의 질문들에 답을 달며... 몇년을 알아온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이기 보단 커뮤니티를 알리고 동성애자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과 에이즈문제 등을 다루...
천정남, 98년 친구사이 회장. 이 인터뷰는 2001년에 행해졌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터뷰 뒤에 후기를 적어놓는다. 1. 당신은 98년 친구사이 회장이었다. 우린 당시 언론에서 당신의 인권 운동 활동에 대해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