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07 강정현 : 이중생활

그는 종로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을 조금 잔 후 그는 낮에 회사에 출근한다. 이처럼 맹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우린 주제를 그의 닉네임인 '순수한 소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 가닥은 그의 특이한 이중생활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군가의 고약한 충고로 파마머리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는다며, 한참을 쑥스러워하던 그의 속내를 고적한 친구사이 사무실 안에서 들었다. 쉿, 귀기울일 시간.



나이 : 25
이름 : 강정현

하는 일이 뭡니까?

정현 : 낮에는 회사 다니고, 밤에는 가게 아르바이트 뛰고 있어요.

-.- 어떻게 하루 동안 그렇게 복잡하게 살 수가 있나요?

정현 :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니고,  어차피 낮하고 밤하고 나뉘어 있으니까요. 그냥 제 개인적 시간이 없을 뿐입니다. 하루가 복잡한 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도 잠을 자야 되지 않나요? 좀 독자들이 알아먹을 수 있도록 쉽게 좀 설명해주세요. 제 머리가 다 복잡하군요.

정현 : 네. 낮에 출근하는 회사가 일찍 출근하는 게 아니라, 보통 점심 때쯤 출근하거든요. 보통 10시까지 잡니다. 실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빠 회사예요. ^^

아, 그래요? 재벌 아들이신가요?

정현 : 아니에요. 자그만 회사입니다. 뭐, 별로 비젼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요, 통신설비업입니다. 근데 전 아빠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어요. 거기 회사 일이 대부분 인맥으로 형성되는 일들인데, 아버지야 통신업체에서 오래동안 일하면서 그렇게 인맥을 꾸려왔겠지만, 전 그런 인맥 엮는 일을 소화해낼 자신도 없고, 특히 나이든 관료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은 그저 돈을 좀 벌고 싶어서 그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밤에 하는 일은 뭡니까? -.- 꽃 파는 일을 하나요?

정현 : 웃음과 술을 파는 일을 합니다.

네?

정현 : ^^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한답니다.

아, 네. 그래서 밤과 낮을 나눠서 사시는군요. 정말 정력이 대단하십니다. 우리한테 일하고 있는 바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정현 : 안 될 거야 없지요. 종로에 있는 'F'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린 여기서 직접적으로 바 이름이 거론될 경우 간접광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부득이 약축할 수밖에 없었다. 정현 씨와의 인터뷰 내용 중 간접 광고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대부분 삭제했다.)


흠 공교롭군요. 커밍아웃 인터뷰 1호인 천정남 씨가 운영하는 그 가게요?

정현 : 네, 맞아요. 바로 그 가게입니다.

실은 알면서 물어봤어요. ^^

정현 : 그래요? 저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대답한 줄 아세요?

초반부터 세게 나오는군요. 그래도 난 정현 씨가 밤에 아르바이트 하는 일 외에 나머지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친구사이 회원도 아니고 해서요. 이제부턴 정말 제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여쭤볼까 합니다. 본격적으로 당신이 정한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곁가지 사항들을 여쭙겠습니다. 전 무척 궁금해요. 낮에 그렇게 일하고 밤에 또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 젊어도 피곤할 것 같아요. 뭐, 특별히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정현 : 한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까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 일을 물려받을 생각도 없고, 제가 개인적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그러다가 이반 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일을 배우는 거죠 뭐. 시간도 좀 낼 수 있어 이반 인권 운동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직업인 것 같고요.

그리고 노는 일을 워낙 좋아하다보니까 밤에 별다른 일 없이 놀다 보면 개인적으로 유흥비 지출이 많아지는데 그걸 아낄 수도 있고요.  

흠.... 대답치곤 좀 엽기적이네요. 유흥비 아끼려고 아예 바에서 일을 한다고요?

정현 : 아무래도 돈 안 들이고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여러 사람들 만나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우린 이번 인터뷰 주제를 잘못 정한 거 같군요. '순수' 어쩌고 하던데.. 이건 그것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아요. -.-

정현 : 다들 그렇게들 말하곤 하지요. ^^

그래요. 한 번 두고 봅시다. 집에 커밍아웃은 하셨나요?

정현: 네.

언제 어떤 계기로 하셨는지 간략하게 좀 말씀해 주세요.

정현 : 집에 커밍아웃은 두 번을 했어요.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였어요. 식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그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근데 그때는 부모님들이 크게 받아들이질 않으셨어요. 그리고 나서는 서로 그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되더군요. 근데 나중에 2001년도쯤에 잠깐 만났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우리 집에 자주 데리고 갔었지요.

그런데 엄마가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군데 자주 오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다, 누구다 둘러대다가 엄마가 남자 친구(애인)이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렇다'고 대답해버렸습니다.

놀라운데요? 어머님 반응이 어떠셨나요?

정현 : 그다지 충격을 받으셨거나 화를 낸다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더 놀라운데요. 어머님이 그럼 용납하신 건가요?

정현 : 용납이라기보다는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느 정도 충격을 받으셨겠죠. 하지만 다각도로 알아보신 듯 해요.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시다 보니까... 댄스 교습을 하시거든요. 거기 손님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던 것 같아요. 며칠 지나서 어머니가 날 붙들고 말씀하셨지요.

정현 : 남자 역할보다는 여자 역할 하는 사람이 그 생활에서 빠져나오는 게 더 힘들다.. 넌 뭐니? 하고 확인하는 투로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요?

정현 : 그냥... 그것은 빠져나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는 게 운명 아니냐.. 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참 쿨한 어머니에 쿨한 아들이군요. 무척 부러운 일입니다. 그럼, 다른 가족들도 모두 알고 계십니까?

정현 : 친척들을 제외하고.. 직접 같이 사는 식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 모두 인정들을 하고 계시나요?



정현 : 일단 제가 게이라는 건 모두 확실히 알고 있고요. 부모님은 일부러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건 아닌데, 어쨌든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인정하고 계신 듯한 느낌입니다.

아, 네. 지금껏 인터뷰 중에서 가장 편안한 커밍아웃을 하는 것 같아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 이제 우리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가봅시다. 당신은 당신의 주제로 소위 당신이 자주 들었다는 '순수한 소년'을 정하셨는데, 지금까지 말한 바로는 그런 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왜 당신 친구들은 당신을 '순수한 소년'으로 불렀을까요? 비웃음 아니었을까요?

정현 : 제 인터넷 닉넴이 순수한 소년이었는데, 그래서 친구들이 아마 그렇게 불러줬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렇게 하는 게 역겨웠는지 나중에는 앞자와 뒷자만 붙여서 '순년'이라고 불렀어요.

역시 정의심이 있는 친구들이군요. 그럼 본인 스스로 자신을 순수하다고 생각하세요?

정현 : 음... 순수하고 싶다고는 생각해요. 처음에 닉넴을 정할 때 딱히 뭐라고 할지 고민했었는데, 뭐 정할 게 없었거든요. 영어 사전을 뒤적이다가 pure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고, 장을 넘기다 보니까 lad라는 단어가 있는데, 소년이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걸 처음 알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lad라는 단어의 구어 뜻에는 '난봉꾼'이라는 뜻도 있어요. 매치가 잘 안 되나요?

네.

정현 : 뭐 그렇게 생각하시든 말든 어쩔 수 없겠죠.

어련하시겠어요. 당신은 꽤 많은 이반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어디서 만나셨는지...

정현 :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처음 나갔던 모임이 '버디'였었죠. 그때 버디 2000년 송년회를 우리집 앞 노래방을 빌려서 하더라고요. 집도 가깝고 해서 슬쩍 나가봤어요. 누나 한 명이 나와서, 안에는 다 여자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보길래, 난 그냥 가겠다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냥 놀다 가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갔는데, 역시 여자들만 떼거지로 있더군요. -.- 그때 50명 되는 여자들이 일제히 저만 한꺼번에 바라봐서 당황스럽고 민망하고 그랬습니다.

혹시 님을 레즈비언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요?

정현 :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암튼 그래서요?

정현 : 1차에서는 정말 말 한 마디 못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2차로 넘어가서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게 되면서 그냥 편안하게 놀 수 있었어요. 그래서 2년간은 아는 게이보다는 아는 레즈 친구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아, 그래서 레즈비언 친구들이 많았군요. 그리고 게이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정현아... 형 꼭 소개시켜줘야 한다)
(언젠가 제가 생기면 생각해보죠.)
(그럼 포기하란 소리구나... 쩝..)


정현 : 그 송년회 모임 2주 후에 동갑내기 정모가 있었어요. 거기서 지금 만나는 친구들 대부분을 만났지요.

친구들하고 관계가 원만한 것 같은데... 정현 씨 성격은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어때요?

정현 : 일단 내가 판단하기엔, 약간은 싸가지가 없고, 좀 시니컬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을 친구들이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과의 대인 관계는 원만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지금까지는 좀 순하게 질문했지만 지금부터는 정말로 순수한지 공격적으로 질문해야겠어요. 남자 관계는 어때요? 지금껏 몇 명이나 사귀어 봤나요?

정현 : 두 명요.

그 두 명하고의 관계가 어땠는지 우리한테 슬쩍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정현 : 딱히 사귀었다고 표현하기보단 '만나보았다'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두 명 모두 사귄 기간이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만나보다가 안 맞아서 그만 뒀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 불어요..

정현 : 불 게 뭐 있나요? 저게 다인 걸.

그럼 그 동안 그 한 달밖에 사귀지 못한 두 번의 불운을 제외하고 정말로 남자를 사귄 적이 없나요?

정현 : 저도 그 부분이 한스러워요.

흐음..... 알겠어요. 결국, 안 팔려서 '순수했군요!'

정현 : 어쩌다 보니.... -.-

그래도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남자들을 많이 만날 텐데... 그간 아무 사건이 없었나요?

정현 : 아무 사건이 없었다고 보기엔 힘들겠지만, 그 이반 바 사장의 '그늘'에 가려서.....

덩치가 있나요? 웬 그늘? 미모의 그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현 : 아무래도 처음 봤을 땐 편안하게 다가오기가 힘든 얼굴인가 봐요. 게다가 제 식이 독특하다면 독특하다랄까.

손님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정현 씨는 어떻게 하나요?  안주를 막 퍼주나요?

정현 : 그러다 저 잘려요. 그리고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봤어요. 나중에 혹시 보게 되려면... 제가 어떻게 할지는 그때 보여드리죠.

볼 일이 없겠어요.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우시군요.

정현 : 까다롭지는 않은데요. 눈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럼 답은 하나네요. 그 가게 물이 안 좋다는 이야기네요. ^^

정현 : 그렇지는 않아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물이 좋다'라는 것과 내 식이 다른 거지요. 그리고 그 이반 바는 지금 물이 좋다고들 하더군요.

아, 네. 거기까지만. 우린 이반 영업소 홍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참 많은 유형의 손님들을 볼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어서 가장 꼴보기 싫은 손님의 유형이 뭔지 말씀해 주세요.

정현 : 음.. 술에 취해서 들어와서 풀린 눈으로, 날 빤히 응시하는..

헐..... 왜 그렇죠?

정현 : 술 취해도 눈에 띄나 보죠.

제가 죽일 놈입니다. 질문을 잘못 했군요. 우리 다시 당신의 주제로 돌아갑시다. 종종 게이들은 이반 바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떻다라든지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요. 그 편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현 : 별로 신경쓰지 않는 편이에요. 일한 지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또한 다른 이반 바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일하는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뭐, 크게 신경쓰이지 않아요.

네.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당신이 스스로 '순수'하다고 생각하는데는 몇 가지 대답할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누군가 당신한테 왜 순수해요 하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가증스러운 대답들.

정현 : 딱 보기에 순수해보이지 않나요?

우리 오늘의 주제는... 음... '순수'가 아니라 '병'에 관한 것 같네요. 당신의 순수한 마음을 위해서 일 하는 거 말고 뭐 취미라든지 교양이라든지 뭐 그런 갈고 닦는 일들이 없나요?

정현 : 일에 치여 살다보니, 여타의 취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교내 방송 활동에 빠져 있었는데, 다른 취미를 접할 필요랄까 마음의 여유랄까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지요.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방송활동을 하면서, 특히나 제가 엔지니어 부분을 맡아서... 책을 읽는다든지 공연을 본다든지 하는 일들을 못했거든요. 이제부턴 그러고 살고 싶어요.

네.. 꼭 그러길 바랍니다. 지금 애인이 있나요?

정현 : 슬프게도 없습니다.

만일 애인이 생긴다면, 가장 뭘 하고 싶으세요?



정현 : 같이 여행가고 싶어요. 그간 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간 만났던 사람하고 만났을 때도 그냥 같이 만나서 술 마시고 자는 일 말고는 없었거든요. 흔히 말하는 데이트라는 걸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워요. 그래서 이후에 생길 애인하고 같이 놀러도 가고, 소위 데이트라고 하는 것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집에서 독립하셨나요?

정현 : 아니요.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요. 당분간 독립할 의사가 없습니다.

질문 : 애인이 생겨도요? 또, 데리고 갈 건가요?

정현 : 뭐, 애인이 생겼다고 독립해야 되라는 법은 없지요. 굳이 데려가야 한다면 데려가고요. 사실 커밍아웃 이후 어머니가 집에 남자 데려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지만. 집에 누군가가 오면은, 그 사람이 갈 때까지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게 우리집 분위기라서, 굳이 독립할 필요까지는 못 느끼겠어요.

이제서야 대충 정현 씨 사적 삶의 풍경들이 좀 보이네요. 이제는 조금 초점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께요. 예전에 제 기억에 퀴어문화축제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셨죠?

정현 : 퀴어문화축제는 2001, 2002년 두 해 준비하는데 참여했고요, 두 해 모두 제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것은 전시회였습니다. 사실 전시회를 하려면 전시할 작품들이 있어야 하는데, 작가 섭외라든지 기타 진행 여건 등 모두가 힘들었지요.

당시 어떤 걸 전시했었나요?

정현 : 2001년 경우에는 퀴어 영화 포스터나 시드니 마디그라 역대 포스터 등을 전시했고요, 2002년의 경우에는 광화문 갤러리를 대관해서 레이몬드 씨의 작품 등을 전시했었어요.

갑자기 드는 의문인데 전시회 등과 관련한 학과를 나오셨나요?

정현 : 아니에요. 제 전공은 식품공학이에요. 원래는 관광 쪽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식공과를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퀴어문화축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반의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채윤 씨의 소개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여할 정확한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때 스텝으로 참여하던 사람들 중에 전시회 부분을 맡을 사람이 없었고, 저도 저 나름대로 한 번 해보는 게 좋을 듯 싶어서 그렇게 덜컥 하게 되었어요.

보람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정현 : 일단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어떤 형태든간에 무난하게 치뤄진 것 같아 성취감도 느꼈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을 진행하면서 배우게 된 부분도 많았고요. 뿌듯함 같은 걸 느꼈지요.

어쩌면 정현 씨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반 바에서 일도 하고, 퀴어문화축제 같은 게이 인권에 관한 일도 두루두루 겸해서 했기 때문에, 게이 커뮤니티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셨을 것 같아요. 정현 씨가 보시기에 게이 커뮤니티의 가장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현 : 아직 제가 게이 커뮤니티의 문제가 뭐다라고 말할 위치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랄까,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축제를 준비하면서 특히 느꼈던 부분인데, 축제에 대해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공감하지만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그 안에서 부딪히는 걸 대단히 부담스러워하는 걸 느꼈어요. 요새, 젊은층 경우엔 그런 부담을 덜 갖고 종종 즐겁게 참여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활동을 쭈욱 계속 하고 싶어요. 올해 퀴어문화축제를 못하게 된 것도 2002년까지 준비하면서 경제적인 여력이 크게 다가왔거든요. 버스비도 없어서 집밖에도 못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분이 정말 암담하더군요. 뭘 하든간에 경제적 여력, 단 돈 얼마라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 것을 추스리다보니까... 솔직히 이건 핑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올해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거든요, 그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정현 씨 바람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님도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면, 소원이 뭐예요? 통일입니까? 제가 지니의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세요.

정현 : 아이, 좋아요. 첫 번째는 로또 맞게 해주세요. 그리고 두 번째는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되기 전까지 내 남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될까요? 세 번째는 뭐죠?

정현 : 세 번째는 지금 만나는 친구들이 끝까지 오래도록 같이 늙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제가 마술 램프라고 생각하고 절 문지르면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필자는 그가 일하는 곳을 찾아갔다.

질문 : 근데 너 코 수술한 거 인터뷰 중에서 빼먹었다. 그거 물어봐도 되니?
정현 : 네, 하세요.
질문 : 괜찮겠어?
정현 : 뭐, 어때서요.
질문 : 왜 했니?
정현 : 엄마가 잘 가는 절이 있는데, 거기 스님이 저, 코수술시켜야 액땜한다고 그랬대요.
질문 : 참, 이상한 중이네.
정현 : 그리고 나중에 '물장사'도 시키라고 그랬대요. 그래야 잘 된다고.

그는 그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인터뷰 내용은 강정현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
(강정현 : purelad@unitel.co.kr)
(이송희일 : sohappy@sohapp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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