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을 다운받아 볼까 고심하다 극장에 걸리면 봐야지 맘 다잡고,
대신 오늘 개봉했다는 ‘음란서생’을 보았다.
개봉 전부터 요란했던 영화다.
감독의 전작 시나리오들이 휼륭했다는 점,
요즘 트랜드화되고 있는 럭셔리 사극이라는 점,
영화판에 돌았던 시나리오가 넘 재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는 점 등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넘치고도 남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이다.
신경 쓴 띠는 팍팍나는 미술과 소품 등은 이전 작품들(스캔들, 왕의 남자)에서는 새롭게 느껴졌으나 이미 식상한 감이 많았고 등장인물의 연기도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단점은 무리하게 두 장르, 즉 코미디와 로맨스를 점목하려 했다는 점일 것이다.
왜 요즘 우리 영화들은 한 장르나 분위기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는가?
우격다짐으로 뒷부분에 한석규와 김민정의 로맨스를 뜨개질하려다 보니 영화의 맥락이 몸에 맞지 않아 서걱거리는 소리가 진동한다.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한석규의 대사가 압권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한석규는 김민정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데 그게 다 사랑때문이라나?
욕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해 사랑이라 말하지 못했다는 이상한 논리를 끌어다 대는 데 난 도무지 한석규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재해석된 시대극의 미명하에 욕정과 사랑의 이분법적 접근도 그렇고..)
과격하게 말하면 때려놓고 널 사랑해서 그랬어. 이런 식이다.
영화계의 호들갑스런 분위기 띠우기도 좀 거슬리긴 마찬가지.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짐작하겠지만 말이다.
암튼, 분위기만 럭셔리하다고 영화가 풍부해지는 건 아니다.
ps. 요즘 날카로운 신경 탓에 영화를 얄짤없이 본 감도 없지 않다. - 난 A형이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상황에 게이들의 관계를 웃음거리로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짜증 지대로다. 살짝 기분 나쁠뻔도 했고...
저는 그 영화. 나름 재미있게 봤어요.
럭셔리한 사극이라기 보다는 그저 어느 글쟁이(내지는 영화계)의 자기고백 내지는 변명으로 읽었거든요. 영화계 주변에서 흥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로 이해했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한석규의 캐릭터가 이해 되고 '흑곡비사'를 둘러싼 소동 역시 봐 줄 만한 거 같아요. 내관이 당할 땐 좀 짜증났지만 한석규가 당할땐 고소하지 않았나요?
라이카님이 지적하셨듯이 전반부랑 후반부가 다르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저는 전반부를 소설처럼 봤어요.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과 복선들을 제시하는 정도로요. 영화 '킹콩'은 그런 전반부가 긴장감있게 잘 연출되어 재미있었지만 음란서생의 경우에 그런 맛은 부족했다고 봅니다.
후반부는 로맨스라기 보다는 잔인한 복수극 내지는 느와르 처럼 보여졌고 그런 갑작스런 반전이 낯설긴 했지요. 그래도 김민정은 나름 멋있지 않았나요?
암튼 이 영화, 제목만 보고 음란한 코미디로 알고 가신다면 실망할 순 있을 거라 생각해요.
p.s : 신경이 날카로와 지셨다니 걱정이네요. 원만한 음란생활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