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태’의 가족관계와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지난 4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하였다. 성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생활동반자등록법 등의 법률 제정과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을 주문한 것이다. 이는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가 2019. 11. 13. 동성커플을 포함한 1,056명의 성소수자들과 함께, 한국의 동성 커플들에게 어떠한 공적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시정하라는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한 것에 대한 조치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제기한 1,056명의 용기있는 성소수자들과 계속 연대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보호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를 비롯한 관련단체들은 독립적인 국가기관이 가족변화의 현실을 인식하면서 가족다양성 정책에 동성커플의 존재를 명시하고,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법률 제정을 권고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정부가 가족변화에 따른 가족다양성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동성커플에 대한 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해왔다.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 779조 등에서 정한 가족의 정의와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여 현실의 가족 관계와 생활을 담아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법률이 제정될 때부터 많은 시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외쳐왔고, 법률의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증언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국가가 이미 서로를 돌보고 부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법률로 규정된 가족 형태만을 보호하거나 여전히 저출산 해결을 위해서 가족 정책을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에 실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서는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를 가족으로 인식한다는 비율이 68.5%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더이상 정부가 국민의 정서, 시기상조 등의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시민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서 고통받는 동료시민에 대한 연대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하는 일은 함께 살면서 돌보기로 결정한 시민들의 결합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적 가치와 성별이나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국제법과 헌법적 가치를 위배하는 상태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번 인권위의 정책권고는 단지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주거, 의료, 재산분할등 공동체 생활 유지에 필요한 보호기능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하였다.
나아가 우리는 동성커플의 가족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등록법 제정이 단지 동성커플에 대한 인정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안다. 부모의 체류지위로 인해서 한국에서 출생한 아동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시설수용으로 인해서 가족구성권이 박탈된 장애인, 가족결합권을 원천적으로 부정당하는 이주노동자, 결혼 밖에서 출산과 육아를 했다는 이유로 낙인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 빈곤을 이유로 원치않는 가족생활을 유지하도록 강요받거나 강제로 헤어져야 하는 이들의 문제가 중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로 인식되어야 한다. 동성커플은 어디에나 있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 놓일 수도 있고, 또 가족다양성 정책은 모든 시민을 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모든 시민의 공동생활과 결속을 지지하고 보장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하라!
국회는 민법 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범위와 가족정의를 폐지하고, 정부는 실질적인 가족관계에 근거해 가족정책을 펼쳐라.
국회는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2022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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