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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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2-19 1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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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장국영이 그렇게 떠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네요. 시간 참 빠르네요. 1주기를 앞두고 G 고릴라가 장국영을 기리는 가사의 신곡 '꽃'의 뮤직비디오로 장국영의 동성애를 다룬다고 합니다. 배우들의 농도 짙은 키스 씬도 삽입될 거라네요.(물론 친구사이의 라이카+핑크로봇 커플의 키스 씬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이겠지만)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40218000087140055

뉴스 읽고, 생각 나서 작년에 모 잡지사에 기고했던 글, 퍼옵니다. 한참 우울할 때 쓴건데, 다시 읽어 보니 신파의 범벅이군요. 그래도 장국영의 자살을 생각하니 다시 우울한 마음이 도집니다. --;; 아, 오랜만에 날 새서 일하려니 죽을 맛이네요. 이럴 때 애인이라는 게 있어서 제 어깨도 주물러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ㅠㅠ



“영화계의 커다란 별이 지는 것을 무엇으로도 보상할 길이 없습니다. 장궈룽(장국영)은 위대한 배우였으며 진실된 친구였습니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 성명서에서 밝힌 것처럼 ‘보상할 길이 없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는 보상할 길이 없는 그곳으로 아득히 추락사했고, 우리는 난데없이 맞이한 망연자실을 곱씹는 일 이외에 아무런 보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4월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은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세대’ 누구에게나, 그리고 저 개인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와닿았습니다. 뭐랄까, 허탈함마저 손아귀에서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며 죄다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진/ 영화처럼 살다 영화처럼 죽다. 지난 4월1일 홍콩섬 원화둥팡호텔.(AFP연합)

아마 ‘고삐리’ 시절 처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며 지그시 손톱을 누르고 있을 때, <천녀유혼>을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물통 위로 빼꼼히 고개 내밀던 장궈룽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후로도 몇년간 모포처럼 차곡차곡 개어놓은 채 망각했던 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렴풋이 감지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비정전>을 보고 한없이 기분이 망가져서 우울해하던 20대 초반과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에 들어간 이후 심의불가 판정 때문에 몰래 들어온 해적판 <해피투게더>를 요상한 술집에 쪼그려 앉아 보던 20대 중반에 걸쳐,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장궈룽은, 마치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갑작스레 내습한 홍콩영화의 낯선 충격만큼이나 도드라진 존재였으면서도 그가 가진 묘연한 매력 때문에 단번에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습니다.


사진/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영화배우 겸 가수 장궈룽.(씨네21 자료사진)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들이 훌륭하진 않았습니다. 개중엔 홍콩영화 쇠락의 기미를 풍기던, 매너리즘에 빠진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자웨이, 첸카이거와 함께 만든 영화들은 그가 단지 십대 소녀들의 ‘미소년 오빠’에 머물지 않고 진정성을 가진 ‘배우’로 우리에게 다가와 삶의 한 부분을 아프게 저며내도록 채근하는 ‘울림’을 간직한 작품들이었고, 장궈룽은 흡사 자신의 속절없는 죽음을 예고라도 하듯 그 작품들 속에 지독히 단단한 슬픔의 얼굴을 각인했습니다. 실존의 뿌리를 거세당한 채 맘보 춤을 추던 <아비정전>의 아비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지켜내기 위해 배에 단도를 꽂아넣던 <패왕별희>의 데이로, 그리고 피곤한 삶의 무게와 애절한 사랑을 전이시키느라 수줍게 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해피투게더>의 보영으로.

그리고 또 한번 장궈룽은 우리를 아연 놀라게 했습니다. 1996년 장궈룽은 ‘패왕별희 콘서트’에서 소녀팬들의 예상을 깨고 자신의 연인이 남자임을 밝혔습니다. 그의 유서에 나오는 ‘당당’은 그와 17년 이상 함께 동거해온 은행원 출신의 ‘당학덕’이라는 남자입니다. 장궈룽은 이 콘서트에서 “어머니를 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당당을 소개하며 <웨이니중칭>(당신과 눈이 맞았다)을 불렀습니다.

사진/〈해피투게더〉

이후 장궈룽은 여러 인터뷰에서 가난했던 시절 정작 당당 본인은 싼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자신에게 몇 개월치 월급을 꿔주는 등 그와 형제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다 2000년 7월 장궈룽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인디언풍의 치마를 입고 나와 소녀처럼 무릎을 굽히며 “어머, 정말 봤니 세상에 겁도 없구나. 집에 가서 눈 씻지 마!”라고 외치는가 하면, 그해 다른 콘서트에선 아예 관람석에 있는 당당만을 위한 노래를 불러 동성애자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당돌한 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그에 대한 우리의 애틋한 애정을 희석시키지는 않습니다. 마법처럼 홀연히 나타나 우리 삶을 흔들어놓은 아름다운 남자에 대한 기억은 그것 자체로 소중한 일일 겁니다. 오히려 그를 추모하는 자리에, 이성애자/동성애자 구분 없이, 그런 차별 없이 열렬한 팬으로서 함께 애도의 손짓으로 그를 떠나보내는 광경을 그는 거기에서 바랄지 모르겠습니다.

늙어버린다는 것, 점점 머리칼이 빠지고 그가 신비롭게 꾸며놓은 인공의 왕국이 점점 쇠락한다는 것, 영원한 청춘 신화가 부질없다는 것, 오래된 연인과 새로운 연인 사이에서 방황한다는 것, 그 모든 옥죔이 그를 자살로 내몰았겠지요. 죽기 몇달 전부터 이미 홍콩 연예가에선 그의 우울증을 여러 번 보도해 장궈룽의 우울증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곱게 늙어 오래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10여년 그가 누렸던 명예를 끌어안고, 그렇듯 전광석화처럼 우리에게 잊혀졌던 세월을 상기시키며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사진/ 노래 부르는 장궈룽.(AFP연합)

누가 뭐래도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다 간 예술가입니다. 장궈룽은 사랑과 모성애가 평행사변형으로 줄달음치다 마침내 서로를 부둥켜안고 만들어낸 낭만주의의 달콤함을 우리에게 선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애도의 뜻을 공유하는 까닭은 다른 배우들과 달리 그가 영화에서 표현한, ‘아름다움과 슬픔’의 기묘한 동거가 빚어낸 낭만주의 때문입니다. 도시 뒷골목 갱으로 분해 권총을 난사할 때도 총알 저편에 선연히 드러난 그의 얼굴은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고, 그가 출연한 시답잖은 멜로영화들 대부분에서도 그가 표현하는 묘연한 우수는 모성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힘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장궈룽은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항상 로맨스를 구워내길 바라는 우리 소시민의 낭만주의에 대한 충분한 자양분과, 87년 민주화 투쟁을 전후로 하는 삭막했던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도피처를, 홍콩영화의 붐을 타고 제공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의 허무조차 현실에서 탈각된 낭만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스타들의 예상치 못한 죽음이 거의 그렇듯 배우 장궈룽에게 덧씌워진 낭만성을 더욱 극한으로 밀고 갔으며,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문에 형성된 침울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더욱 배가된 듯한 양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바로 스타를 스타이게끔 만드는 삶의 얼개들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그의 죽음마저, 영화가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불멸의 연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장궈룽, 그는 참 아름다운 남자로 계속 기억될 것입니다. 저 또한 그의 빈소에서 그의 연인, 친구들과 함께 등을 조그맣게 옹송그리고 서 있습니다.  

이송희일/영화감독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