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시간이 같아지는 추분을 지나 이제 드디어 가을이 왔나 싶네요
이 가을밤에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이 있어 올립니다
류시화 시인의 페북 페이지에서 퍼왔어요
May the Peace be with you...
-BGM-
달라이 라마가 뉴욕에서 강연을 할 때였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누군가 '자기혐오'에 대해 질문했다. 달라이 라마는 어리둥절해했고, 티베트인 통역관도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당황했다. 티베트어에는 '자기혐오'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던 것이다.
그해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 거처에서 열린 감정에 대한 학술회의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명상가, 심리학자, 과학자들이 모인 그 세미나에서 미국의 명상 지도자 샤론 샐즈버그가 달라이 라마에게 '자기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많은 이들이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봐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싶었다. 모두가 진지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는 "그것이 무엇인가요?" 하고 묻고는 통역자를 돌아보았으며, 두 사람은 티베트어로 한참동안 설명을 주고받았다.
마침내 참석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달라이 라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영어로 말했다. "자기혐오라……. 그것은 일종의 정신 질환인가요? 절망이나 우울증 같은? 그런 사람들은 폭력적인가요?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미워할 수가 있죠?" 많은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미워한다는 설명을 듣고 달라이 라마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보니 아직 무지한 것 같습니다." 자기혐오라는 말이 그에게는 무척 생소했던 것이다. 그 후 달라이 라마는 강연과 법문을 할 때 자기존중에 대해 자주 말했다.
우리는 자기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현대 세계의 많은 문제들 중 가장 큰 문제는 의문의 여지 없이 자기혐오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감정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자기혐오self-hate'는 말 그대로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다. '대체 나는 왜 이런가? 왜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가?'
몇 해 전 네팔의 좀솜 지역을 트래킹하던 중에 우연히 한 여성과 잠시 동행한 적이 있다. 전직 요가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큰 배낭을 메고 혼자서 오지까지 올 정도로 남달랐다. 그러나 반나절 같이 걸으면서 그녀가 자기혐오라는 벽 안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나는 원래 실수투성이인 사람'이라거나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라는 문장을 사용했으며, 요가 강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서도 '나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오른손을 항상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중의 쉬는 곳에서 내가 오른손을 보여달라고 하자 그녀는 갑자기 눈자위가 붉어지고 주먹 쥔 손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네 번째 손가락의 끝마디가 없었다. 해발 2900미터의 에클라베티('하나뿐인 여인숙') 찻집에서 내가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있는 동안 그녀의 눈물이 한두 방울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녀도 웃고 나도 웃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3,800미터의 묵티나트까지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급경사에서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손을 잡아주었고, 그녀는 이제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이 불의의 사고로 인한 그 손가락 장애에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 외에는 매우 매력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활달한 여성이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가 아름다운 인생 전체를 망쳐 놓는다면 실로 불행한 일이었다. 언덕길에서 타인의 손을 잡아주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 손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든 내면에 대해서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된 것이 자기혐오이다. 이 왜곡된 자아상은 타인에 대한 선망, 좌절, 자기혐오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자기혐오만큼 자신의 영혼을 가두는 길은 없다. 그것은 실패한 삶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기혐오는 자기학대로 이어진다. 내 마음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며,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거나 싫어하면 피해서 달아날 수 있지만, 나는 나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나는 어디에 있으나 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혐오는 도망칠 곳도 없는 최악의 공격이다.
미국의 코칭 지도자 케빈 홀은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한 인도인으로부터 '겐샤이'라는 단어를 배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인 '겐샤이'는 '누군가를 대할 때 그가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도록 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는가? 케빈 홀은 자신의 삶을 바꿔 놓은 그 이야기를 <겐샤이Aspire>라는 제목의 책으로 썼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미워할 수가 있죠?'
비록 종교는 없지만 특히 와닿는 구절이네요.
누구나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죠.
어떻게 마음 먹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불성'이 발현될 수 있구요.
물론 자신의 욕망을 경계하고 남을 자기 몸처럼 여긴다는 게 참 어렵지만요.
들판의 꽃이 서로 다르면서도 모두 이쁘고 소중하듯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가 있는 법인데도
어쩌면 피상적인 학력, 직업, 경제력, 인종, 성별 등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남과의 비교, 광고와 방송 등 각종 매체가 내보내는 허상과의 비교 탓에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못 보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죠...
자신의 욕구를 긍정하되 함께 세상을 만드는 이웃들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고
모든 사람의 고유한 개성과 소중함을 인정한다면 세상살이도 덜 팍팍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