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6-05-01 18:06]
[한겨레] 나
2003년 4월 어느날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한 청소년이 문고리에 목을 매 자살했다. 어느 자살 치고 의미가 없겠는가마는 청소년의 자살이 던지는 의미가 더 큰 것이 일반의 정서. 하지만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는 데 실패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사회로부터 외면받았다.
청소년 소설 <나>는 이 사건에서 비롯됐다. 지은이는 당시 죽은 육우당(六友堂)군을 ‘정현’이라는 인물로 설정해 청소년의 동성애 문제를 짚어간다. 정현은 동성애자라는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고민하는 고3. 세상이 알까 두려워, 아니 세상이 알게 됐을 때 자신을 바라볼 차가운 시선이 무서워 속앓이만 한다. 자연스럽게 왜 살까라는 우울증에 빠지고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즉 커밍아웃에 대한 갈등이 정현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면 그를 둘러싼 외적 갈등 또한 엄청난 파괴력으로 그의 삶을 휘몰아친다.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자, 철저한 마초로서 상습적으로 엄마를 폭행하는 아빠에 대한 증오와 경멸, 그리고 잔인무도한 폭행을 당하면서 자식 때문에 참고 지내는 엄마에 대한 연민과 가여움이 그것이다.
펄펄 끓는 편견에 녹아버린 생명
목숨 끊은 청소년 동성애자 실화 바탕
‘다름’ 이해하는 사회의 수준을 물어
안팎으로 그를 조여오는 내적 갈등과 가족간의 갈등은 언뜻 보면 서로 상관 없는 다른 것들의 나열 같지만 따져보면 ‘다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읽힌다. ‘넌덜머리 나는 편견 덩어리’인 세상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양상인 것이다.
정현은 전학 간 학교에서 같은 게이인 상요를 만나면서 자신의 굴레를 서서히 벗어나오기 시작한다.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무조건 아웃, 사회가 학교가 아웃시키지 않으면 내 스스로 아웃시킬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한편으론 “상요에게마저 나를 숨길 생각은 없”다며 ‘영혼의 불쾌한 웃음소리’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마침내 북극 얼음보다 차가운 사회의 시선을 물리치고 이혼을 결심한 엄마와, 이성으로서 자신을 좋아했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진정한 친구로서 좋아하게 되는 여진을 통해 정현은 틀을 깨고 나오게 된다.
그래서인지 상요가 죽었는데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세상을 보고 분노하는 정현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탈출 또한 당연해 보인다. “나는 벽장 속에서 태어나/ 어둡고 축축한 좁은 벽장에서 살아왔다./… 뜨거운 태양이 내 두 눈을 멀게 할 것을 각오하고/ 사람들의 펄펄 끓는 시선이 내 몸을 녹여 버릴 것으로 각오하고/ 살기 위해 벽장을 탈출하기로 한다”(탈출)
지은이는 후기에서 “동성애자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느냐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그가 어떤 사회적 억압을 받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이해하려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 성적 취향이라는 것은 그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감이다.
이경화 글. 바람의 아이들/80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