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가족'이 겪는 사회적 수난
[프레시안 2006-05-23 11:06]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2&article_id=0000026099§ion_id=102&menu_id=102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한국에는 이미 많은 동성애자들이 서로 실질적인 배우자 관계를 맺거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거나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덴마크나 네덜란드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러한 가족들이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는 21일 동성애자가 가족을 구성하며 겪는 구체적인 어려움를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자리로 '동성애자 가족구성 발표대회 스피크 아웃(Speak Out)'을 열었다.
서울 대학로 글로브 극장에서 열린 이 '스피크 아웃' 행사에서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게이와 레즈비언 7명이 나와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동성애자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논의했다.
"동성 배우자는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없다"
동성 배우자와 6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천정남 씨는 그동안 가족들의 인정도 받는 등 별 문제 없이 살아 왔다. 그러나 얼마 전 자신이 수술을 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수술과 입원 수속을 밟는 데 필요한 보호자 동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천 씨는 "내가 입원을 했을 때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간호해주는 이는 나의 파트너인데 그는 법적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면서 "특히 나는 모든 가족이 다 다른 지방에 살고 있어 더욱 곤란했다"고 말했다.
결국 천 씨는 간호사가 천 씨의 부모님께 전화를 해 구두로 동의를 받고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곽이경 씨도 마찬가지 일을 겪었다. 곽 씨의 파트너가 몸이 아파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병원에서는 '친구가 무슨 보호자냐'며 곽 씨를 보호자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게이 친구가 남편으로 가장해 동의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며 살고 싶은 것 아니겠냐"며 "현재 나와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가 내가 보살펴야 할 가족이며 나의 배우자이기에 사회로부터도 이를 보장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성애자 가족의 재산은?"
▲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신촌 레스보스 카페의 김명우 사장 ⓒ 프레시안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유명한 레즈비언 카페 '레스보스'의 사장인 김명우 씨도 이날 행사에 나왔다.
올해 나이가 쉰하나인 그는 함께 살던 예전 파트너와 헤어졌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20년 동안 같이 살던 이와 헤어졌을 때 수중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이성애 부부라면 헤어질 때 위자료를 받거나 재산분할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동성애 부부에게는 그런 것을 보장해줄 법적 장치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그는 비슷한 어려움에 빠져 있다. 김 씨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사람으로 '당연히' 자신의 파트너를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 법률상 파트너가 김 씨의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탓에 별도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는 "연금보험이나 의료보험 등을 꼬박꼬박 붓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이 돈이 누구에게 갈까'하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면서 "우리나라도 파트너십 제도나 동성결혼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허여 씨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왔다.
1.직장에서의 차별
[배우자수당] 직장에서 이성애자 직원들은 그들의 배우자수당을 월 3만 원씩 받았지만 허여 씨는 받을 수 없었다. 그는 2000년 7월에서 2004년 5월까지 총 141만 원을 받지 못한 셈이다.
[직장의료보험] 허여 씨의 파트너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음에도 허여 씨의 직장의료보험에 등록할 수 없어 의료보험료를 직장과 지역에 각각 납부해야 한다. 이것 또한 4년간 월 3만 원씩 140여만 원이 되는 금액이다.
[경조사휴가, 휴직] 허여 씨는 두 사람의 결혼, 배우자 및 부모형제의 장례, 결혼, 환갑 등 각종 경조휴가를 받을 수 없었다. 또 허여 씨의 파트너나 부모님이 아플 때 가족간병 휴직제도를 신청할 수 없다.
[직장에서의 아웃팅] 한 TV 프로그램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허연 씨 커플을 취재했는데 이를 계기로 알게 된 사장은 부서장에게 허여 씨가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2.사회보장의 차별
[국민연금] 허여 씨는 2000년에 국민연금관리공단 인천지사에 자신이 직장에서 불입하는 연금을 파트너가 상속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국민연금 측 담당자는 법에 의해 허여 씨가 독신으로 사망하면 국가에서 연금을 환수하며, 그 돈을 형제에게 상속하려면 사망하기 한 달 전에 형제의 주민등록에 이름을 올리고 동거해야 한다고 했다. 즉 지금까지 허여 씨가 넣어 온 약 1500만 원의 연금을 파트너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허여 씨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하나는 파트너를 법적 배우자로 인정받을 수 없어서 이런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10여 년 동안 피땀 흘려 매달 꼬박꼬박 부어 온 피 같은 연금은 분명 허여 씨의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해 빼앗긴다는 사실이었다.
[건강보험, 암보험, 연금보험 등 보험] 허여 씨와 그의 파트너는 결혼 전에 가입한 여러 보험에서 사망시 수익자로 서로를 지정하기 위해 친구 관계로 서명하여 일일히 전환해야 했다. 배우자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허여 씨는 요즘에는 동성혼 배우자라고 당당히 쓴다고 밝혔다. 그는 1년마다 계약해야 하는 자동차보험은 아예 배우자로의 변경을 받아주지 않고 있으며, 부부한정 특약 서비스같은 보험회사의 여러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산의 상속] 허여 씨는 "법척 친권이 없어 현금과 부동산 등 각종 재산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의료적 친권] 허여 씨는 급성 장염으로 새벽에 응급실을 찾아가 입원을 한 적이 있다. 입원을 하려면 이성애 형제나 부모를 뜻하는 가족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허여 씨의 파트너는 서명하지 못하고 그 다음날 허여 씨의 누나가 와서 입원수속을 해야만 했다. 허여 씨는 "내가 만약 사고로 수술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도 파트너는 주변인에 불과하지 않나"고 지적했다.
국제 결혼한 동성애 부부는 비자문제도
S씨는 일본인 파트너인 K씨와 함께 나왔다. 만난 지 9년째, 동거한 지는 3년째인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바로 K씨의 비자 문제다.
현재 K씨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어 취업비자로 한국에 머물 수 있지만, 직업을 잃게 되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커플과 달리 이들의 부부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취업비자가 만료되면 K씨는 한국에서 S씨와 함께 살 수 없다.
S씨와 K씨는 "노후에 어떻게 살지 걱정"이라며 "비자 문제는 비단 국제 동성애 커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부부 등 한국에서 觀管?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국제 커플들의 문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정체성' 또한 정당한 이혼 사유가 되어야 한다"
이날 행사에는 최현수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도 나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늦게서야 깨닫는 다른 중년의 동성애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인생의 대부분을 이성애자로 살았다. 그동안 벌써 성인이 된 아들도 둘이나 두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성정체성과 가정폭력 등을 이유로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다. 그는 "남편이 이혼 요구에 합의해 주지 않는다"며 "남편은 자신이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아내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가부장적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한 여성심리학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남편과 합의이혼한 사례는 있지만, 이혼소송을 벌이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혼소송에 대해 "다른 이유들로 인한 별거나 이혼은 양가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면, '동성애 정체성'을 이유로 한 이혼소송은 나의 친정과 친척들과의 문제로 번진다"면서 "이혼 과정은 다른 가족들에게 나의 정체성을 이해시키는 노력의 과정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성정체성 또한 이혼사유로 인정되어야 하며, 기혼이었던 여성 동성애자에게도 재산권과 자녀 양육권 등이 정당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가족을 법적으로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
이날 행사에서 곽이현 씨는 동성애자 부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방법에 대해 "다른 이성애자 부부를 인정하는 것과 같이 동성 간의 결혼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또 파트너십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외국의 사례와 같이 다양한 동거관계를 인정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동거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동성애자 커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구 등과 같이 다양한 가족들도 포괄해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동성애자 부부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단순히 이성애자끼리의 결혼이 신성하다는 편견 때문이라면 당연히 싸워야 할 문제라고 본다"면서 "이성애자가 누리는 권리는 당연히 동성애자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날 행사에서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해외 사례를 소개한 더글라스 샌더스 교수(오른쪽)와 통역자 ⓒ 프레시안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법학과 명예교수인 더글라스 샌더스 교수는 이날 행사에 참가해 동성애자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방식은 △캐나다 대법원의 사례와 같이 이성 커플에게 적용되는 규정과 권리가 동성 커플에게도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법적 판결을 내리거나 △덴마크나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과 같이 동성 커플에게 파트너 등록제(resistered partnership)나 시민결합(civil union)을 허용하는 동성관계 특별법을 제정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는 "한국은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서명한 바 있는데, 이 조약은 게이와 레즈비언 개개인 및 동성 커플도 이성애자 개개인 및 이성 커플과 동등하게 대접하도록 요구한다"면서 "한국의 법 또한 곧 동성관계를 인정하기 시작하리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채은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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