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호모포비아는 동성애 혐오증이나 또는 그러한 혐오증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동성애를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도 스스로 호모포비아라 칭하진 않는다. 개인적 감정이야 어떻든 적어도 동성애자란 이유로 차별받는 건 반대한다는 정도의 발언은 해야 ‘쿨’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변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글쎄다. 내가 보기엔 평등과 인권을 둘러쓰고 짐짓 객관적인 양 인간적인 양 우아를 떠는 호모포비아들만 더 많아진 것 같다.
1990년 일본에서 ‘오커’라는 동성애자 단체가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운영하는 ‘청년의 집’의 숙박을 거부당해 법적 소송까지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인권 침해라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교육위원회 쪽은 평등한 대우의 결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곧, 이성 간의 성관계를 우려해 남녀 별실을 쓰게 하는 내규를 동등하게 적용해 동성간의 성관계 우려가 있는 동성애자들의 동성 합숙을 금한 것이므로 부득이한 숙박 거절이지 결코 차별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인상적인 논리는 우리나라 청소년보호위원회도 펼친 바 있다. 청소년보호법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 ‘동성애’ 조항이 포함된 것은 동성애자의 평등권 침해라는 항의에 위원회 쪽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해야 하므로 동성애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게 할 우려가 있는 매체물을 단속하기 위함일 뿐, 결코 동성애를 성적 지향의 하나로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견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정말 평등일까 이성애자로 성 정체성을 밝힌다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는 결코 이용할 수 없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매체물을 단속한다는 명목은 이성애를 조장하는 매체물이란 개념으론 연결되지 않는다. 애초 이성애주의에 기반해 만들어진 규칙의 적용이 결코 평등일 순 없다.
에이즈와 동성애를 연결시키는 것도 같은 차원의 문제다. 편견과 차별이 아니라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활동을 위한다며 한해에도 몇번이고 시시때때로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중 동성애자는 몇 명인지 통계 수치를 알리기 바쁘다. 에이즈 문제를 말할 때 동성애를 함께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예방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환상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단언컨대, 설사 감염인 중 95%가 이성애자라고 해도 에이즈 전파의 주범은 이성애자라는 분석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이성애자들의 헌혈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없을 것이다. 이성애만이 자연스럽다고 믿는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이성애자가 어떠한 질병에 걸리는 것 역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동성애자, 이성애자 구별해가며 숙주를 선택하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혈액이나 정액 등의 체액으로 전염되는 수많은 전염병 중의 하나인 에이즈에서만 유독 성 정체성이 중요한 이슈가 될 까닭은 없다. ‘B형간염’의 감염경로가 에이즈와 유사하지만 에이즈처럼 동성애자와 밀접하게 다루어지진 않는다. 하물며 올해 사법시험 합격자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낸 사람 중 동성애자의 비율 따위를 따지지도 않는다. 부정할 바 없이, 에이즈에서 동성애를 강조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차별과 편견일 수밖에 없다. 에이즈에 대한 과잉된 두려움, 동성애의 과잉 성애화 등에 대한 직시 없이 떠드는 건 의도적인 은폐거나 그걸 파악하지 못할 만큼 무지한 것일 수밖에.
자신은 동성애에 편견이 없으며 동성애자의 인권도 존중한다고 기꺼이 말하는 이 시대의 우아한 호모포비아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은 이것이다. ‘이성애주의여, 영원하라!’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충성을 바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 말 앞에 이미 생략된 구절이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입장에서 규정된 보편적 인권인가.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부대표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