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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멜로 속 동성애 코드

신주진 미디어평론가

얼마 전 SBS 연기대상 베스트커플 후보에서 누락된 ‘닷냥커플’이 네티즌의 성화와 항의로 다시 후보에 오르는 해프닝이 발생했었다. ‘닷냥커플’은 ‘바람의 화원’에서 애절한 멜로라인을 형성했던 신윤복(문근영)과 기생 정향(문채원) 커플을 일컫는 애칭으로, 여·여 커플로 베스트커플 후보에 오르는 이변을 이루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남장여자인 신윤복이 또 다른 주인공인 김홍도(박신양)보다 정향과 더욱 애틋하고 감성적인 멜로를 펼쳐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드라마의 발칙한 발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즈음 유행하는 동성애 코드를 적극적으로 전취한 결과다. 확실히 윤복의 정향에 대한 감정은 같은 여자로서 느끼는 연민과 동질감을 넘어서는 어떤 매혹과 긴장의 뉘앙스를 내포했다.

재작년 화제작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과 최한결(공유) 사이에 이성애와 동성애를 넘나드는 모호하고 불명료한 이중적 베일이 그들 사랑의 판타지를 더욱 자극했었다. 은찬이 여자임이 밝혀진 이후 은찬과 한결 사이의 멜로적 긴장이 급락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의 우리 대중문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그 자체로 멜로적 갈등의 주요 요인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영화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전에 ‘내일로 흐르는 강’(1996)이나 ‘로드 무비’(2002) 같은 퀴어영화가 소수자로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환기와 관심을 유도하는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왕의 남자’(2005) 이후 동성애가 빠른 속도로 멜로드라마 안으로 포섭되었다. 독립영화인 ‘후회하지 않아’(2006)가 동성애 관계를 계급관계와 뒤얽힌 진한 멜로로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팬시풍의 쿨한 로맨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나 절대권력자를 둘러싼 격정적 삼각멜로 ‘쌍화점’(2008) 역시 멜로적 갈등의 한복판에 동성애를 새겨 넣었다.

이처럼 동성애는 멜로드라마가 그토록 오래 탐해 왔던 금지된 사랑, 불가능한 사랑을 위한 새로운 블루칩이 되었다. 불치병이나 죽음, 오누이의 사랑과 같은 근친상간, 신데렐라 이야기에서의 계급적 간극, 불륜과 같은 부적절한 관계, 이제는 진부해진 이 모든 것이 넘어서야만 하는 사랑의 장애물이었다. 이제 동성애는 새롭게 각광 받는 사랑의 장애물이 되었다. 운명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혹은 비극적 멜로의 한가운데에 금지된, 불가능한 사랑으로서의 동성애라는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현재의 대중문화에서 동성애가 어떤 매력을 지닌다면, 그건 바로 그것이 사회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금기시되는 것은 유혹적이다. 그것도 치명적인 유혹이다. 이는 마치 뱀파이어물의 고혹적인 뱀파이어와 흡사하다. 인간과 뱀파이어와의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거나 혹은 치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렛 미 인’이나 ‘트와일라잇’처럼 순수하게 혹은 비극적으로 아름답다. 내년에 개봉할 박찬욱의 ‘박쥐’를 포함해 공교롭게도 이런 뱀파이어 영화들이 동성애를 다룬 멜로물들과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뱀파이어물과 동성애물이 모두 성적이거나 (인)종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섹슈얼리티와 결부돼 있다는 것도 둘 사이의 상동성을 말해 준다. 여기서 동성애자는 뱀파이어처럼 낯선 타자이자 이방인이다. 두렵고 공포스러운 낯선 타자는 대중문화의 패션을 따라 어느 새 치명적인 유혹자가 된다. 그러는 동안 낯선 타자의 섹슈얼한 외피 안쪽, 성적 소수자로서 동성애자의 사회적 억압과 고통은 쉽게 탈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멜로물들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동성애자들이 겉으로 명약관화해 보이는 성적 정체성의 기저를 뒤흔드는 도발을 행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관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기 힘든 오늘날과 같은 광속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흔들리는 정체성은 내부로 점점 깊어져 간다.

신주진 미디어평론가
  
기사입력 2009.01.01 (목) 20:44, 최종수정 2009.01.01 (목)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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