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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가?

[기고]권영길-단병호 동지에게

문성현 민주노동당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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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12월 19일 대선이 끝나고 100일이 지났다.
그리고 한 달여 후면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격동 끝에 결국 민주노동당은 분열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적 비대위'로, '진보신당'은 창당으로 분주하다. 나는 대선이 끝난 뒤 2월 3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한 차례 인터뷰를 한 것 이외에는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그러나 얼마 전 단병호 의원이, 그리고 오늘 권영길 의원이 다들 한 말씀 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하루 밤을 꼬박 새우고 이 글을 쓴다.

원래 '평등파'였던 문성현이 '자주파'와의 통합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선택했으나 이 노선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나는 평생 노동운동과 정당을 하면서 놓인 조건에 따라 때로는 '중앙파'로 때로는 '자주파'로 규정되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 '파'가 된 적은 없었다.
혹 '무정파'들이 있어 함께 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무정'파'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로지 대중과 함께 하는 실천을 통해 역사에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활동가가 대중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갈라선 지금 내가 설 땅은 단 한 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것이 정치인가 싶어 서글퍼진다.
그러니 당분간 나 문성현과 같은 '중간 통합'의 역할은 현실 진보운동에서 필요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괜히 통합 같은 것 하려들지 말고 각각의 분명한 노선대로 열심히 국민들에게 헌신할 때이다.

그러면 왜 지금 나는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가?
당 대표를 했기 때문에? 아니다.
우선은 당을 떠난 분들이 당에 덧씌운 '종북'의 굴레를 결코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고, 노동운동가로서 민주노동당의 '노동정치'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먼 훗날이나마' 언젠가는 '부동이화(不同而和)'의 날이 다시 오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신당' 동지들에게:'종북' 딱지만은 떼 주고 가라

당의 분열! 그래 맞다.
그러나 모든 분열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지만, 진보는 필요할 때, 과감한 분화를 통해서 발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의 '분화 과정'이 앞으로 진보정치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진통이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어느 한 쪽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호소한다.

"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종북'이기 때문에 당을 떠난다."고 했던 모든 분들은 지금이라도 참회해야 한다.
진보운동 역사의 제단에, 그리고 남아 있는 착하디 착한 당원들에게, "돌이켜 보니 그것만큼은 아니었다, 미안하다"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정말 단언한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만난 어느 누구도 '친북이나 연북'은 있었어도 '종북'은 없었다.
그래서 그대들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혹시 누군가가 '종북'이기 때문에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면 나 또한 타인의 정치적 양심을 '종북'으로 몰아 놓고도 참회없는 그대들과는 앞으로 '진보 정치'를 같이 하기 힘들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동시에 당의 안이든 밖이든 자주 평화 통일의 길에 '종북'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만약에 실재한다면 그것과도 결연히 싸울 것이다.
최기영 당원의 문제에 대해, 당 대표였던 나를 포함한 당원들의 신상정보가 시시콜콜 정리된 문건을 보고 누구보다 분노했고 '재판이 끝나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종북'이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30년의 노동운동 세월 동안 고락을 같이 했던 대부분의 동지들이 '진보신당'으로 갔다. 숱한 해고, 수배, 구속과 죽음을 딛고 이어 온 투쟁의 역사를 함께 했기 때문에 같이 어깨 걸고 싶고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초심 그대로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종북'만큼은 털어주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한 양심 있는 활동가의 진심어린 축복 위에서 새 출발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을 때 나는 민주노동당 대표를 한 사람으로서 한 때의 '동지'들에 의해 굴레지워진 '종북당'의 멍에를 벗겨내는 일만큼은 민주노동당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크게 할 일도 없고 애써 찾는 사람도 없지만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다.
민주노동당은 1970년 전태일의 죽음에서 시작된 당. 1997년 '국민승리 21, 권영길'에 의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더욱이나 '종북주의자'에 의해서는 더 더욱 아니므로….

민주노동당 동지들에게:문제는 '노동 정치'다

왜 당은 대선에서 참패했는가? 왜? 왜?

나는 고백한다.
투표 하루 전까지도 어렵지만 이렇게 참혹한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7~8%는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던져진 성적표, 아니 국민들이 우리에게 내린 심판은 3%였다.
그래서 나는 당대표직을 그만두었다.

그 후 당은 두 번의 비대위를 거쳤지만 비상한 수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총선을 앞두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당은 선거를 치러야 한다.
'당은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당은 분열되었고 이명박에게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는 여전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명박이 잘하기를 바라고 '이명박 경제'가 잘 되어서 우리 아들 일자리 문제가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국민들의 진솔한 마음일 터이다.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용히 평당원으로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이번 총선에서 내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어쩌면 이 글은 이 말을 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다.

이틀 전에 보건의료노조 홍명옥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작년 임금인상분의 1/3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쓰기로 임단협을 맺었는데 3천 명이 정규직으로 되었고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많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것만이 민주노동당이 이 험로를 헤지고 나갈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믿어 왔다.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 없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으면 민주노동당의 미래도 없다."

전노협을 만들면서부터 스스로 '문산별'이라 감히 별호를 부치고 산별노조운동에 앞장서 왔다.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노조 조직화의 어려움에 부딪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하청, 임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조직적 저항(민주노조운동)에 부딪힌 자본이 '고용의 유연성'을 내세워 비정규직 양산으로 질주한 지 20여년의 세월, 우리는 치열하게 투쟁했고 산별노조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정적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투쟁에서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애타는 호소를 외면했고 투쟁을 책임져주지도 못했다.

'앞으로 비정규노동자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답을 내 놓지 못하는 한, 결단코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어렵게 풀고 싶지 않다.
'우선 보건의료노조의 모범을 모든 노조가 다 받아 안으면 된다.'고 본다.

"임금인상분의 50%를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정규직화, 처우개선)을 위해 내놓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교육, 의료, 주택비 지원 등의 단협상 복지혜택을 확장 적용하자."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보건의료노조에 이어 금속노조가 앞장서 주었으면 한다.
노동현장에서부터 이 작업이 시작되면 민주노동당은 '비정규노동 정상화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전 국민의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정치'의 핵심이다.
노동현장의 실천적 힘을 바탕으로 정치적 힘을 획득해 나가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우리는 때를 놓쳤을 수도 있다.
아이들 학비 대기도 빠듯한 나이 50이 가까운 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으므로.
그러나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선언만으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실천적 결과물을 확인해 줄 때라야만 믿는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던 기본적인 복지는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은 토목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었고, 문국현도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렇게 보았고 그래서 대선에서 표를 주었다.

"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 우선 당장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하청. 임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요구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노동자정당이야!"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덫에 걸려 있다.

당대표를 하면서 내 목소리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다.
바로 '사회연대'의 문제였다.
노-사-정이 1:1:1로 부담하는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을 위해 운용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첫 출발을 노동현장에서부터 산별교섭을 통해 시작하자고…. 이것도 힘들면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이라도 하자고….
그 전에 경남도당 위원장을 할 때 정파를 떠나 모두 동의했고 당의 주요 당직자들도 이의가 없었기 때문에 내용만 잘 다듬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는 중앙위원회에서 이는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자본가들의 '정규직 양보론'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특히 당의 다수파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
정말 좌절했다.
당대표를 그만 둘까도 깊이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때 결단했어야 했다.

지금 당에 남아 재창당을 위해 고생하는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투쟁도 해야 하고 정책도 좋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빨리 내놓아야 한다.
그것도 총선 전에 내놓아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은 '노동현장에서 이를 구체적 실천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독려해야 한다.
혁신적인 재창당을 선언하고 틀에 짜인 비례대표 몇명 배치한다고 이번 총선 절대 돌파할 수 없다.

현장에서 투쟁을 해 본 사람은 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투쟁이든 교섭이든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
'구체적 성과를 원한다.'는 말이다.

30여 년 노동운동을 해 오면서 "내 것만을 챙기는 투쟁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투쟁만이 승리한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모든 나라의 노동운동은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 위에서 승리했다. 그 단결은 '함께 나눔의 단결'이었다. 더 많이 가진 노동자가 덜 가진 노동자와 함께 나누는 그 단결을 바탕으로 그것이 혁명이 되었던 개량이 되었던 자본과 싸워 승리했다는 말이다.
나눔없는 진보는 없다.
그리고 '노동연대-사회연대'는 투쟁의 방법이지 절대 양보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당인 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책임져야 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요구한다.
노동당이니 노동부터 책임져 보라고!
그렇게 해서 보내 준 10명의 국회의원은 비정규악법 재개정 때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 결과가 3%다.

3%의 참패를 하고, 말도 안 되는 '종북' 파동으로 당이 분열된 지금 무엇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나갈 것인가?
무엇으로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소박하고 어쩌면 전혀 정치적이지도 못한, 못난 한 활동가의 외로운 외침일지 모르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내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만약에 문국현 정도의 자본가나 정치가가 한 명이라도 있어 '비정규직 문제를 위해 10년 간 매해 1조를 내놓을 테니 너희도 내놓으라.'고 선수를 친다면….
이것이 미국의 루즈벨트가 노동의 포섭을 위해 내놓은 '뉴-딜, 새로운 거래'가 아니었던가?
그 뒤 미국의 노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운동은 어찌되었나?
무서운 일이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생겨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노동'을 알게 된 그 날이 온 지도 오래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노동의 정치'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믿지 않는다.

'노동정치'마저 할 수 없다면 평당원으로서나마 노동운동가로서 민주'노동'당에서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30년 노동운동에 민주노동당 대표를 한 나도 요즈음 이런 고민을 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노동정치'가 가능하다면 내가 민주노동당을 떠날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해답을 천영세 비대위가 이번 총선에서 주리라 기대한다.

('통합'을 참칭한 당 대표로서 2년간 내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으나, '노동연대-사회연대'를 말할 때 내가 얼마나 진지해지고 열심이었는지 기억하는 당원들이 많을 것이다.
평생을 노동운동의 길에서 함께 했던 권영길, 단병호 의원에게 우선 이 글을 드리고 싶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남아 있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것인지?)


2008년 격동의 2월 마지막 날에 문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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