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줄이라는 '음악다방'이 있었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전문점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음악다방이라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40줄에 있는 사람에게는 추억의 장소다.
<너는 내 운명>에 등장하는 시골 다방과도 사뭇 다르다.
<번지 점프를 하다>에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홀 중앙에 디제이 박스가 있고
그 안에 들어 앉은 디제이가 음악을 골라 틀어 주는 식이다.
음악다방은 다른 다방과 달리
사람을 만나는 목적 외에 좋은 음악을 들으려는 목적이 추가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음악을 신청하고
디제이는 자신이 고른 곡과 신청곡을 적절히 섞어서 틀어주었다.
반줄은 종로2가 YMCA 건너편(옛 코아아트홀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80년대 종로에 드나들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봤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음악다방이었다.
유명한 음악다방의 디제이들은 그 인기도 높아서 팬들을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디제이가 다방을 옮기면 팬들도 따라서 움직이는 식으로...
반줄에도 인기 디제이들이 많았다.
인기 디제이가 되려면 음악도 많이 알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외모가 좋아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꽃미남들을 선호했던 것.
지금은 몸매나 다리와 신체의 비율 등도 보지만
80년대엔 주로 얼굴을 보았다.
반줄에도 몇몇 꽃미남 디제이들이 있었고
손님들은 자신의 취향(게이들은 식성이라고 부른다)에 따라
좋아하는 디제이가 일을 하는 시간에 다방을 찾곤 했다.
물론 내가 좋아하던 꽃미남 디제이도 있었다.
한 때 그를 너무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름도 잊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던 그 미남은 프라임타임(저녁 7시 이후부터 마칠 때까지)에 일하고 있어서
팬들이 아주 많았다.
고로 꽤나 미남이었단 말씀.^^
난 주로 같은 과 여자 친구 둘과 다녔는데,
1학년 때 많이 다녔다.
1주에 2회 이상은 갔었던 것 같다.
나와 동행했던 여자친구들은 음악을 들으러 갔엇지만
난 미남의 얼굴을 보러 갔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학생운동에 매진하느라 음악다방도 디스코텍도 모두 끊었다. ㅠ.ㅠ
그 때는 그랬다.
조국과 민중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취미 쯤은 간단히 버릴 수 있었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여하튼 그 미남은 꽤 많은 여자팬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난 그 중 유일한 남자팬이었다.
디제이가 잘 보이는 자리는 항상 먼저 차 있어서
그 자리를 차지하느라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고 나또한 쟁탈전의 한무리에 속해 있었다.
반줄을 다닌지 반년 쯤 되던 그러니까 대학 1학년 2학기 초 쯤이었다.
난 당시에 김수희의 '마지막 포옹'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더래서
매번 그 노래만 신청했다.
반줄은 그 노래와는 좀 다른 분위기여서
그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이 인상을 좀 쓰고 그랬는데(왜 그랬는지는 노래를 들어보면 안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신청을 했고
그 미남께서는 신청할 때마다 바로 틀어주고는 했다.
하루는 음악신청을 하고 노래를 기다리는데
그 미남께서 노래를 틀어주면서
"이 노래 신청하신 분, 오늘 시간있으시면 맥주 한잔 할까요?"하는게 아닌가?
사람들은 미남의 말에 웅성거렸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나와 동행한 여자친구들은 나더러 좋겠다며 놀려댔다.
당시에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 좀 없던 편이라
내가 그렇게 미남에게 애정을 보였지만
내가 게이인지 눈치 채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나와 동행했던 여자친구들은 지금도 내가 게이인지 모른다.
여하튼 뛸듯이 기쁜 나는
미남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여자친구들은 먼저 집으로 가고
반줄에는 나와 다른 테이블의 여성 너댓이 남아 있었다.
미남과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나를 알까?
내가 남자인 걸 알까?
미남의 일이 끝나고(다방이 문을 닫고) 디제이박스를 나서는 그가 빛났다.
그는 키도 크고 정말 미남이었다.
미남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남아 있던 여자들의 눈이 그를 쫓았다.
미남은 그냥 내게 걸어 왔다.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내 가슴은 터질 것처럼 마구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