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성 소수자 관련 단체와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은 성별 문제에 대해 일보진전한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기독교계와 성균관 등에선 우주의 섭리에 반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한무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대표는 “이번 판결로 하급심에서 계류중인 다른 성별 변경 신청 사건들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그동안 겉모습과 호적상 성별의 불일치로 취직 등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던 성전환자들의 삶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한국 성전환자들의 실태가 알려지고 양지로 나와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남성동성애자 인권연대단체인 ‘친구사이’ 이종헌 대표도 “성전환자는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좀더 특수한 경우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어떤 범주에 포함시킬지 혼란이 많았다”며 “성 변경 허가 결정은 매우 당연하고 환영할 만한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성전환자 호적상 성별 정정 허가를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나아가 성소수자 단체들은 호적상 성별 변경 허가를 뒷받침하는 특례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전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막고 이들의 취업·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성소수자 관련 51개 단체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를 꾸려 활동중이다.

이 공동연대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은 “오는 7월까지 한국 성전환자가 몇명인지 그들의 인권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9월께 민주노동당에서 자료를 바탕으로 입법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 법안엔 성전환 수술을 할 때 의료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도 포함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이동익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총무 신부(가톨릭대 교수·생명윤리학)도 “성별은 생명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주어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라며 “성 정체성 혼란은 심리학·사회학적 원인이 대부분이므로 질병 치유의 관점에서 사회가 도움을 줘야지 성을 바꾸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관계자는 “창조주가 정해준 성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은 창조론을 따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잘못된 것”이라며 “유감”이라고 말했다. 방동민 성균관 기획부장도 “대법원의 판결은 하늘의 이치에 반하는 것이어서 찬성할 수 없다”며 “성전환자들의 행복을 위해서 사회 질서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