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인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주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듯이,
게이라고 해서 게이적인 정체성을 지닌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이들은, 게이에게도 우정이 있느냐고 캐묻지만,
나는 4년가량 오픈리게이로 살면서 평생을 두고 만날 법한 게이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참을 수 없을 만큼 폭소가 터져 나올 때도 있지만,
황당무계함에 혀를 내두르는 일도 있다.
나와 친한 게이 친구는 국가공무원이다.
그는 2년 정도 연애를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서 애인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내 친구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이런저런 고생을 했다.
친구의 애인이었던 사람은 단순히 감정상으로 괴롭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장에 불쑥 찾아와서 친구의 상관을 만나서 사생활을 공개하거나,
친구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씌어있는 친구들에게 피시방에서
괴상망측한 내용의 글을 쪽지에 보내기도 했다.
이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친구의 새 애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히기도 했고,
내 친구와 절친한 한 여자분에게 수도 없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람의 이런 공격에 친구가 속수무책으로 일관하자 파장은 더욱 심해졌고
그는 갈수록 수위를 높여갔다.
결국 친구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야 완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람은 내 친구의 친구들에게
익명으로 메일을 보내서 내 친구가 게이며
사생활이 무척 불결하다는 골자의 메일을 연거푸 띄었다.
누구나 연애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원하는 대로 지배하려고 하는 것부터
상대방의 뜻을 배제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기 쉽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집착과 미련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는 자신도 게이이고, 한국사회에서 게이로 아웃되는 게
어떤 의미였을지 충분히 인지가능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를 일년 넘는 기간동안 괴롭혀서
친구는 결국 자신의 진로설계 계획을 중간에 바꿀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친구는 새로 사귄 애인과도 헤어졌고 직장도 그만두었다.
만일 이성애 커플이었어도 이 정도의 파란만장한 일이 가능했을까.
서로가 공유하는 약점을 악용해서 상대방을 통제하려 드는 행동은 역겹기 그지없다.
특히 게이가 다른 게이를 아웃시키는 것은 이성애자들이
뭣도 모르고 호모포비아를 주체하지 못해서 하는 것과 수위가 다르다.
나를 비롯한 주변 게이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당당함과 대응을 요구할 때
내 친구는 끝까지 침묵과 무대응으로 맞섰다.
그는 미국에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에게 그런 행동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하겠느냐고”?
아무튼 게이인 것이 더이상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날까지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