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하늘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잔뜩 흐린 하늘은 가랑비를 떨어뜨리기도 했고 여우비를 뿌리기도 했고 그러다 장대비를 쏟아부었다.
나는 그런 하늘아래에서 카메라를 들고는 그 카메라가 젖지 않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촬영하느라 혼자서 부단히도 뛰어다녀야했다.
비 때문에 무척 추웠던 날로 기억한다.
저녁쯤이 되어서야 일이 마무리 됐고 연이은 촬영들로 나는 녹초가 되어 사무실 한켠에 몸을 뉘다시피 기댔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죙일 비에 젖어 물범벅이 되어버린 신발을 내려다 본다. 어쩐지 신발을 들어 약간 기울이기만 해도 물이 주르륵 떨어질 것만 같다.
어느새 낡고 헤어진 나의 녹색 운동화.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신발이 낡은 사람은 영혼도 낡아버린 사람이래"
몇번인가 명동의 유명한 브랜드의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감탄하며 어루만지던 그 운동화가 왜 그때 떠올랐는지 나도 모르겠다.
몇개월 전부터 가끔 명동에 들르면 단골 코스처럼 그 신발 가게에 들렀다.
좀 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그 샛노란 광택 때문이었을까. 나는 주머니에 여윳돈이 있을 때도 그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신발을 바라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조금 뒤 가게를 나섰다.
몇개월동안 몇번을 그렇게 신발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냥 그날은 비 때문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나는 종로에서 택시를 타고 명동으로 가서는 신발가게에 들어섰다. 이제는 진열장에서 빠져버린 그 신발을 직원에게 주문하고는 정가보다 약간은 저렴하게 결제를 하고 나는 빗속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종로로 돌아왔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정신차려보면 벌써 며칠치의 시간이 흘러있다.
잠깐 은행에 일이 있어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공터에 멈춰섰다. 며칠이 지나면서 이제는 얼룩도 생기고 때도 탔는데 내겐 아직도 새 신발 같다.
사방이 흙으로된 운동장 한복판에서 발로 흙을 슥슥 차며 한참 길 없는 길을 걷는다.
어서 빨리 신발이 낡아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