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여는 세상]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산일보 2006-02-16 12:12]
연산군이 꽃미남 광대인 공길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 여기저기서 탄성과 비명이 쏟아져나온다.
관객 1천만명 돌파의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의 남자'는 동성애가 한국사회의 화두로 부각됐음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동성애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경멸과 금지의 대상이었다.
서구에서는 가톨릭이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동성애는 교회법에 의해 죄악으로 간주됐다.
16세기 초 영국에서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법률이 제정됐다.
동성애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범죄로 낙인이 찍힌 셈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동성애를 사악한 원죄의 산물이나 범죄적 성향의 표현으로 보는 대신에 정신적 요인에서 비롯된 성적 일탈행위로 규정했다.
마침내 1974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서구문화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부당하게 유린해 온 쇠사슬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견해가 맞서 있다.
하나는 동성애 성향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동성애를 성장 과정의 결과로 본다.
전자는 동성애를 선천적인 운명으로,후자는 후천적인 선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동성애를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선택으로 보기 때문에 경멸하고 박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개인적 선택으로 보는 견해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1990년대부터 동성애의 생물학적 근거를 밝히려는 연구가 놀라운 성과를 내놓은 덕분이다.
1991년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사이먼 리베이는 게이(남성 동성애자)와 이성애 남자의 뇌 구조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1993년 미국의 분자생물학자인 딘 해머는 성염색체에서 게이 형제들이 공유한 유전자의 위치를 발견했다.
리베이와 해머는 둘다 게이이다.
게이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주장은 2002년 미국의 레이 블랜처드가 제안한 '큰형 효과'에 의해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블랜처드는 15년간 형제의 출생순서가 동성애 성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한 끝에 게이가 이성애자들보다 형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큰형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신 중에 어머니의 면역계가 태아에게 작용한 결과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동성애자들은 취업,결혼,군복무에서 이성애자와 동등한 법률적 권한을 요구하고 나섰다.
1975년 미국 연방정부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취업거부를 하지 못하게 했다.
1999년 10월 프랑스 의회는 동성애 부부를 공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0년 7월 미국 버몬트 주에서 미국 최초의 동성애 부부가 화촉을 밝혔다.
2001년 캐나다 정부는 인구 통계에 동성애 부부 항목을 신설해 새로운 가족 형태의 하나로 포함시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부터 동성애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물밑에서 활동하던 동성애자 동아리들이 인권운동을 전개할 협의체를 발족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반(異般)이라 불리길 희망한다.
일반인과 성적 지향이 다를 뿐임을 강조하는 뜻이 담긴 용어이다.
2000년은 동성애자들이 집단적인 커밍 아웃을 시도한 해로 기록된다.
8월에는 장맛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동성애자 행진이 있었고,9월에는 신촌 연세대 강당에서 퀴어(queer)문화축제가 열렸다.
퀴어란 동성애자와 성 전환자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적 지향이라는 의견을 내고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동성애가 운명인가 선택인가 하는 논쟁에서 저울추가 동성애의 생물학적 근거에 힘을 얻어 운명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본성의 산물이라고 해서 동성애를 무조건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 문제는 결혼과 가족제도 등 사회전반에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의 인권 차원보다는 한국사회의 핵심 현안으로 동성애에 진지하게 접근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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