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리신 분께서 어느 활동가와 얘기 나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운동가는 (긍정적인) 결과만 생각하고 다양한 개인적 특수성은 고려 못한 것같네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 건 물론이고
특히 청소년처럼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경우에는
사후 대처 방법 자체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은 강요할 수도 없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다른 LGBT 인권 단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친구 사이에서는 본인이 충분하고 차분하게 생각한 뒤에
진심으로 원하고 준비됐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커밍아웃에 대한 동료, 선후배, 친구, 가족의 반응이란
아무리 서로 잘 아는 사이라도 꼭 예측 가능한 것만은 아니죠.
슬프지만, 끝내 상대방의 이해와 포용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구요.
하지만 관계 자체가 소중하고 또 성소수자 본인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상대방도 결국 자신의 가족, 친구, 선후배, 동료가 LGBT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가령 어제 청계천에서 열린 김조광수 대표님 부부의 결혼식에도
일면식 없는 이성애자 커플이 많이 와서 정성스레 축의금까지 내고 축하했죠.
게다가 양가 가족분들께서도 참석하시고,
대표님 어머님께선 다른 성소수자 부모님들께 '숨어 있지 마시고 우리 자녀들을 돕자'고 하셨구요.
커밍아웃을 단도 직입적으로 한 번에 할 수도 있고 조금씩 단서를 흘릴 수도 있지만,
특히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점을 꿈도 못 꾼 사람에게는
고백 이후에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죠.
LGBT 본인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오랜 시간 고민했을 수 있듯이요.
그리고 커밍아웃은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부단하고 반복적으로 해야 될 수 있어요.
같은 사람이라도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뭔지,
LGBT의 욕망과 어려움이 뭔지 충분히 이해 못하거나 그 고백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결혼과 가족 제도는 물론이고 교육, 문화, 경제, 정치 모두 워낙 이성애 중심적이다보니
성소수자가 어떤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권리와 배려를 못 누리는지 모르니까요.
비록 정신적 부담도 고백 이후의 어려움도 클 수 있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끊임 없이 대화해서 성소수자라는 점이 받아들여지면
관계 자체도 더 편해지고 깊어질 수 있는 것같아요.
일단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자기 자신을 더 긍정하게 되는 건 물론이구요.
또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데 나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일부분에 대해 모르고,
내가 상대방을 계속 속일 수밖에 없다는 건 스스로도 힘겹고 그 사람에게도 미안한 노릇이잖아요.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원치도 않는 이성과의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는 슬픈 경우에는
본인도, 배우자도, 자녀도, 양가 가족들도 행복하기 어렵고, 비밀 유지에 전전 긍긍해야 되구요.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가급적 내 마음과 생각대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게 제일 주체적이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 척 연기하면서 사는 건 상당히 피곤하고 어려우니까요.
단 한 번이라도 커밍아웃하고 또 그 결과가 긍정적이도록 힘써보는 경험은 참 특별하기도 하구요.
암튼 커밍아웃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제일 효과적이고 강력하다는 건 분명해요.
먼 외국의 얘기거나 매체에 비치는 별종들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매일 보고 함께 일하고 놀고 관계를 맺는 '내 사람'이 LGBT라는 걸 알게 되면
근본적으로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열릴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우리도 울고 웃고 사람하고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실감하게 되니까요.
또한 이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있응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만 있는 것도 아니며,
화단에 만발한 꽃이 서로 다르면서도 아름답듯이 사랑도 다양하고 모두 아름답다는 걸 께닫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넓어지는 계기도 될 수 있어서 좋구요.
참고로 친구 사이에서 만든 커밍아웃 관련 자료도 보시면 도움이 될 것같네요.
- '커밍아웃 가이드': http://chingusai.net/xe/Coming_guide
-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 지침서': http://chingusai.net/xe/library/152458
위에도 썼고 저만의 의견이지만,
그 개별 활동가는 전체적이고 집단적이고 장기적인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개인이 당장 처한 다양하고 특수한 상황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같아요.
현실의 어려움과 사람 하나하나의 사정을 생각 못하는 건 제대로 인권적이지 않죠...
커밍아웃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결정이니, 그 자율권을 존중해야죠.
암튼 모든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와 단체가 커밍아웃을 쉽게 보거나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언급한 여러가지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면을 다들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어차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활동가라고 해서
다른 성소수자들과 달리 커밍아웃 이후의 부정적인 여파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요.
활동가도 개인에 따라서는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의 커밍아웃 정도와 범위가 다르거든요.
그러니 L님께서 염려 안 하셔도 될 것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상처 받거나 상심하지 않으시길 빌구요.
앞으로도 관심과 지지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저도 자주 하는 일이지만 ^^;;
아무쪼록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만으로 전체를 판단하지는 않아주시길...
그리고 고맙다는 말씀으로 끝낼게요.
그래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관심이 전혀 없으셨다면
이렇게 분노와 상처도 느끼시고 글도 올리지는 않으셨을 테니까요.
앞으로 여기 놀러오셔서 저희 활동도 구경하고 가세요.
(주절주절 늘어놔서 죄송하구요~ ^^;;)
글쓴이 분께서 화나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damaged님이 쓰신 글 중에
'다양한 개인적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았다는게
정황상 아주 적절한 표현같군요
그분께서는 분명 다양하고 개인적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커밍아웃에 대한 본인만의 일반적인 주관을 말씀하신듯 합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글쓴이께서도 느낀 감정을
저도 부분이나마 공감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님께서 모든 인권운동가들의 커밍아웃에 대한 관념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커밍아웃은 '신중하고 본인의 필요에따라 그 경우가 달라지는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전 확신합니다.
저는 아직 큰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위 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입니다
혹 어떤 행동 때문에 이해하고 포용하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알려주신다면 저 역시도 활동을 하면서
생각하고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