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스케치 #1]
HIV를 둘러싼 다양한 ‘ ’를 이야기하는 모임
: 6·7월 오픈테이블 후기
2019년 6월 22일과 7월 13일 양일, HIV를 둘러싼 다양한 ‘ ’를 이야기하는 모임 6·7월 오픈테이블이 친구사이 사정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HIV/AIDS에 대한 단순한 1차적인 정보 전달의 차원을 넘어서, 이 질병이 게이커뮤니티, 나아가 일반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 질병에 대한 낙인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HIV/AIDS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HIV/AIDS에 대한 낙인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HIV/AIDS를 둘러싼 게이커뮤니티와 사회의 낙인을 경감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감염인과 비감염인 모두가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만듭니다. 이 부분에 있어, 질병에 대한 낙인을 경감시키는 데에 어떠한 별도의 접근과 노력이 필요한가를 이야기 나누는 오픈테이블이 월 1회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다 심도깊은 논의를 위해, 오픈테이블은 친구사이 회원들 중 수명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패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친구사이에서 기획·추진 중인 이 오픈테이블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오픈테이블에 참가한 회원들에게는 행사 종료 후 HIV/AIDS와 관련된 글이 배부됩니다. 6·7월에 참가자에게 배부된 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식지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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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살기 위한 결심
정말 행복한 삶은 어떤 삶일지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섹시하고 나랑 잘 맞는 애인이 있으면 행복할까? 내가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면 행복할까? 커뮤니티 안에서 내가 처한 위치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우리 커뮤니티가 처한 위치에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행복을 보장받는 삶은 어떤 삶이고, 어떤 사회일까? 가끔은 이런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하고, 그런 삶과 사회를 꿈꾼다. 너무나 오래된 얘기지만(그냥, 한 10년 전쯤으로 해두자), 대학 시절, 퀴어 이론 및 사회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됐던 것 같다. 이런 유토피아적인 상상 속에 하나의 옅은 밑바탕을 그려준 책이 있었는데, Samuel R. Delany의 <Time Square Red, Time Square Blue>라는 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계층과 권력과 재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의 접촉/만남이 자주 일어나는, 그런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했었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가 지금처럼 휘황찬란해지기 전, 그러니까 월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전에는, 타임 스퀘어를 둘러싼 좁은 원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성 노동자(sex worker), 배우 지망생,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변호사, 시골에서 갓 올라와서 꿈을 좇기 시작한 청년들까지 다양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건물주, 또는 집주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월세를 걷으러 집집마다 들려서 문을 두드렸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부동산이 호황기를 거치면서, 집주인에게 직접 전달하던 월세는 건물 관리인을 통해 전달되고, 더 시간이 흘러서는, 거대 부동산 기업들이 건물 운영을 하게 됐다. 비단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뿐이겠는가? 사회가 발전하고 더 부유해진 것 같긴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고, 경험하고, 어울리는가? 저자의 궁극적인 질문은 ‘더 부유해진 지금이 더 행복한 삶이고 사회일까?’였다.
오늘 오픈테이블에 참여하는 친구사이 회원들이라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 속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리는 삶,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삶이 포함돼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삶을 꿈꾸는데 자부심마저 가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삶 속에서 스치고,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할 준비가 돼 있을까?
나는 이효리를 참 좋아한다. 예능 프로에 나와서 던지는 기가 막힌 멘트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억하고, 내 기갈에 접목시킬 때가 많다. 이효리가 과거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했던 명언이 있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그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 HIV/AIDS에 대한 외부적인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렇다, 이제야 HIV/AIDS 얘기를 시작한다ㅎ) 우선,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봤던, 빨간 반점이 떠오를 것이다. 말라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이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모습, 더군다나 이제 막 커밍아웃해서 유튜브 같은 공간에서 검색을 했다면, 정말 끔찍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HIV/AIDS에 대한 경험을 지배했을 것이다. 주변의 PL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쉬쉬'하는 분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고, AIDS 합병증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서 들었거나, 친구가 죽었을 수도 있다. HIV/AIDS와 관련해서 얼마나 긍정적인 경험을 하겠는가?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이야기로 경험하게 되는 외부적인 요소들은, 어떤 결심이 있지 않는 한 바뀌지 않고, 경험한 대로(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길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가진 친구사이 회원이라면,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한 결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HIV/AIDS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고,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이 오픈 테이블이 그 첫걸음이길 바라본다.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공동운영자 / 나미푸
무지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혐오를 낳고, 혐오는 배제를 낳고
이반시티 상담 게시판에 종종 HIV/AIDS에 관한 글이 올라온다. ‘썸남이 감염인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원나잇을 한 사람의 집에서 항바이러스제를 발견하였다, 어떤 감염인이 어느 찜방에 있더라’등의 글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댓글이 달린다. ‘감염인이 어떻게 섹스를 할 수 있나, 자기만 죽지 다른 사람도 죽일 일 있나, 양심도 없나, 섹스하면 안되는 거 아냐?’ 등의 혐오와 무식이 결합한 댓글들이 무수히 달린다.
이런 게시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들은 감염인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HIV에 감염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누가 감염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하고, 감염인들은 가급적 섹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외모나 평판 등을 통해 감염인을 색출한다. 그 중에는 정의감(?)에 불타서 꾸준히 감염인에 대한 정보를 올리고 어디에 가니 감염인이 있더라는 경고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가진 믿음은 비감염인과의 섹스는 안전하고 감염인과의 섹스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이야 맞는 말 같다. 당연히 비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고, 감염인과 섹스를 하면 HIV에 감염될 수도 있을 것이다(무조건 감염되지는 않는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감염확률이 높지는 않다). 이 믿음에 따라 이들은 꾸준히 감염인을 피해다니며 비감염인과 만나서 섹스를 하려고 한다. 나름대로의 감별법을 가지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자. ‘비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걸리지 않고 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걸릴 수도 있다’는 진술이 현실 경험에서도 객관적 사실일까? 각자 나름대로의 감별법으로 누가 감염인이고 아니고를 따져서 섹스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방식이 객관적인 대처일까?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자. 감염인들의 대부분은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섹스를 통해 감염되었을 것이다. 그 때 상대방을 감염인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비감염인이라고 여겼을까? 당연히 비감염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감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섹스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안전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들의 주관적 경험에서 나와 섹스를 하는 타인은 당연히 비감염인이다. 그리고 바로 그 관계를 통해 감염되었다. 대부분의 감염인들은 '주관적 경험 안에서 비감염인'들과의 섹스를 통해 '감염'되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주관적 경험에 따라 감염인을 피하고, 역시 주관적 경험에 따라 비감염인과 섹스를 하는 것이 거꾸로 가장 위험하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감염인과의 섹스가 가장 안전하다. 당신이 감염인과 섹스를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만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HIV/AIDS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명확하다. 감염인이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미검출 상태가 되어 타인을 감염시킬 수 없다는 것, 감염인과 성관계시 콘돔을 사용하면 충분한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 때에만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혐오를 낳고, 혐오는 차별과 배제, 추방을 낳는다. 당신의 공포와 불안, 그로 인한 혐오와 배제는 당신이 얼마나 무식한가를 드러낼 뿐이다. 불안을 혐오로 극복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당신이 즐겨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상식이자 도덕이다.
성소수자에이즈예방센터 iSHAP 검진상담실장 / 홍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