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스케치] 지보이스 신입단원의 뮤직캠프 참여기
4월 2일 12시 탑골공원 앞, 지보이스 뮤직캠프(이하 뮤캠)로 향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안은 분주하다.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인원 체크와 짐을 싣기도 했다. 참석자 명단을 든 단장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자. 언제나처럼 지각하는 사람은 있었다. 지각자는 벌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독으로 받으며 런웨이 워킹을 하면 된다. 기대되는 여행에 앞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꾸미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각하기 일쑤다. 아무튼 제대로 꾸미고 온 것 같으니 봐주기로 하자. 다 가려서 그런지 예쁘다(농담).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뮤캠 일정이 시작되었다. 진행자는 완벽한 게이의 상징, 밸런스 붕괴 캐릭터(밸붕캐)인 길형이었다. 예능감 미션. 간단한 넌센스퀴즈를 풀고 점수 순위에 따라 팀을 결정하게 된다. 1, 2, 3위를 차지한 게이는 자신이 원하는 팀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 넌센스 퀴즈의 정답은 절대 야하지 않다. 퀴즈를 풀고 싶지 않거나 자신이 없다면 예능감을 살려 사행시를 지으면 된다.
제시어는 “지보이스, 현숙언니, 뮤직캠프”이다. 나와 같은 음란마귀 노잼 인간은 망연자실 하겠지만 한번 같이 풀어보자. 참고로 이날 점수결과에서 나는 꼴찌에서 세손가락에 뽑혔던 것 같다. (위 사진은 퀴즈와 사행시를 채점하는 모습이다.)
강촌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길이 좀 막혀서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숙소가 보이니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숙소의 모습.
도착하고 짐정리가 끝나자마자 첫 미션이 공개되었다. 컨셉 미션. 미션수행에 앞서 예능감 미션의 점수 순위와 함께 끼 넘치는 답변과 사행시가 공개 되었다. 나는 순위공개 동안 방마다 일정표와 공지사항을 붙이러 다녔다. 덕분에 퀴즈 정답들과 사행시를 듣지 못했다. 나중에 밸붕캐 진행자 길형에게 기억에 남는 정답이나 사행시가 있는지 물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이 글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
지보이스101의 게이들은 자신의 순위를 듣자마자 1, 2, 3위를 제외한 인원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팀이 결정 되었다. 팀은 총 5팀. 청순, 섹시, 전통, 큐트, 걸크러쉬의 지보이스에 어울릴만한 컨셉들을 가진다. 걸크러쉬는 이름이 너무 길기 때문에 ‘걸커’라고 줄였다.
이 다섯 개의 팀은 각자 팀 이름의 컨셉과 어울리는 팀 이름과 구호, 그리고 센터를 정해야한다. 팀 이름은 컨셉 뒤에 음절 상관없이 단어를 붙이면 된다. 우리팀은 발이 섹시해서 “섹시 발” 팀이 되었다. 붙여 쓰면 안 된다.
팀 센터와 구호 발표에 앞서 5개의 팀들 중 1개의 팀은 투표를 통해 표를 얻지 못하면 해체하게 된다. 해체된 팀은 뿔뿔히 흩어져 나머지 팀에 들어가게 된다. 게이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섹시 발, 큐트 하지않아, 걸커 러쉬, 청순 마짜, 전통 해체.” 5팀 중 1개의 팀은 해체되어야 했다. 어떤 팀이 해체되었는지는 사진으로 말하겠다.
초라하다.
지보이스101, 4개의 팀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팀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팀원들과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거나 말하고 싶은 자신의 속 이야기들을 나누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여기 이 자리에 존재하게 해준 흔적들을 듣고 보게 해준다. 이야기 주제들은 자신의 “첫 사랑”과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부정하던 시절, 아니면 내가 누구였는지 몰랐던 그 시절. 나의 마음속의 문을 두드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 사람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 서로가 그 자리에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 시간이다.
잠깐 동안 진지하게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진 팀들. 하지만 감성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바로 최종 미션이 공개 되었다. 제시된 지보이스 자작곡 중 한곡을 선택해 팀의 컨셉에 맞게 편곡, 개사, 매쉬업(다른 노래와 섞는 것), 안무 등등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서 무대를 꾸미면 된다.
제시된 자작곡은 “교정의 추억, Shut Up, 오빠의 결혼식, 환절기,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총 5곡이다. 이 5개의 곡은 모두 올해 제작예정의 지보이스 앨범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ppl).
저녁시간. 알차고 풍성한 뮤캠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배가 든든해야 한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남은 저녁시간 동안은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몇 시간 뒤에 있을 무대 준비에 한창이다. 염탐하기 위해 좀 돌아다녀 봤다. 안무 연습이 한창인 걸커팀과 큐트팀. “교정의 추억”을 부르는 큐트팀.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 들리는 것을 보니 매쉬업이 기대된다.
저녁시간 이후 코러스보이 음악감독님의 음악수업이 시작됐다. 미션에 대한 생각은 잠시 멈추고, 지보이스의 역사를 느껴보는 시간. 뮤캠 이후에도 계속 언급될 정도로 반응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인상 깊은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임진강, 나에게로 가는 길, 어디에나 있어” 등 7곡이나 불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노래들을 배우고 노래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노래를 통해 지보이스를 가슴으로 배우는 기분. 그리고 나는 음역대도 조금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실력향상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노래 부르는 것 자체도 즐거웠지만, 재밌는 사실은 “생일 축하해요” 노래가 원래 알고 있던 바리톤 파트의 멜로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아무튼 내친 김에 4월 1일 생일이었던 훈님의 늦은 생일축하도 있었다. 생일날 단원들이 다같이 이 노래를 불러줄 때의 기분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넘나 기쁘고 감동적이다. 주인공의 표정을 보자. 정말 행복해 보인다.
노래의 감동을 느꼈다면,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재미와 감동을 오가는 아주 거품 없이 넉넉한 구성이다. 스케줄 표에는 맨 나중이었지만 레크레이션이 먼저 진행되었다. 레크레이션 순위에 따라 최하위의 팀은 준비한 무대에 오를 수 없다. 지보이스101의 뮤캠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게임은 공 나르기, 번호 밟기, 종이 옮기기, 마쉬멜로 게임. 총 4가지 게임으로 구성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리뉴얼되어 신선해진 구성이라고 한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 사진만. 내년에도 똑같은 게임을 할진 모르겠지만 뮤캠에서 함께합시다.
레크레이션 미션 결과, 내가 속한 “섹시 발” 팀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슬펐다. 다음 번엔 더 열심히 해서 1등을 해야겠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나머지 3팀의 무대가 펼쳐졌다. 지보이스101의 세계는 가혹하다.
첫 무대는 코러스보이 음악감독님이 속해있는 “큐트 하지않아” 팀의 무대. 음악적 소양이 아주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교정의 추억과 영원한 사랑의 가사와 멜로디를 섞어 귀여운 안무와 함께 총각선생님의 귀여움을 묘사하는 가사로 음악성을 더했다. 또한 가곡 풍의 교정의 추억을 발랄한 분위기로 연출했다는 점이 굉장히 높게 평가된다.
다음 무대는 “전통 해체” 팀 이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주제였을 것 같았던 컨셉을 가지고 “전통 해체!”를 외쳤던 것과는 다르게, 백세인생 등의 여러 전통미가 돋보이는 민중가요들을 매쉬업하여 오빠의 결혼식 무대를 꾸몄다. 생각보다 꽤 터프한 구성으로 노래 원곡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
마지막 무대이자 뮤캠 우승팀인 “걸커 러쉬”팀으로, 컨셉이 걸커, 걸크러쉬라는 것 자체로도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팀이었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곡을 선택하여 지보이스101이라는 뮤캠 컨셉에 맞추어 화려하게 “pick me“ 등의 노래를 매쉬업하고 랩도 첨가했다. 곡을 고르는 순서가 불리했던 탓일까, 전반부의 멜로디 진행은 아쉬웠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노래의 안무연습에 공을 들였다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무대와 자리배치 등이 완벽했으며, 파트 분배가 골고루 되었으며, 개인 개인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솔로 파트와 단체 군무는 완벽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무대, 내가 속한 “섹시 발”팀이다. 지보이스101은 협동의 상징. 가혹하지 않다. 센터 일지를 중심으로 “Shut Up“에 안무와 대사 등을 첨가하여,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력이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다른 곡의 매쉬업 없이 순수하게 원곡만으로 섹시 컨셉을 표현했으며, 동시에 개그코드로 관객들의 호응도 이끌어냈다. 또한 거짓된 모습을 타파하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음악적으로도 완벽했다...고 위로해본다.
모든 무대를 마치고 뮤직캠프 밤이 찾아왔다. 큰방에 모여 이날의 힘들었던 일들과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너무 좋다.
긴긴밤의 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기도 하고 씻기도 하고, 분주하다. 이제 정말 뮤직캠프의 마지막. 모두가 강당에 모여 둘러앉았다. 뮤캠이 처음인 나와 같은 단원들과, 몇 년 동안 계속 함께해왔던 멤버들까지, 이번 뮤캠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어울려서 함께 놀고, 미션수행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속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시원섭섭하다’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뮤직캠프는 마무리되었다. 일단 바닥에 붙였던 스티커는 떼고 가자. 깔끔한 마무리.
종로에 도착했다.
일주일의 끝. 그 동시에 시작이기도 한 일요일. 언제나 나의 일주일은 지보이스 연습으로 끝나고 시작된다. 지보이스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연습에서는 새로운 노래를 받아 파트별 멜로디를 익히면 이게 노래가 되나 싶다가도 함께 부르면 굉장히 멋지게 들린다. 무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며 나와 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대변하기도 한다. 지보이스의 합창은 단지 음들의 어울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지보이스에서의 첫 뮤직캠프는 ‘처음’이라는 것 때문에 당연히 설렜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보다 더 큰 것은 지보이스 단원들의 목소리를 더욱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였고,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지보이스에 더 많이 들려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일요일 2시간의 연습시간보다 더 긴 1박 2일. 그래도 짧은 시간이란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더 크지만 나는 지보이스에 더 어우러져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성소수자이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굉장히 서툰 사람이다. 나를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에 속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란 쉽지 않다.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좌절할 때도 있었고, 막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부정하고 없애려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성소수자로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보이스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단지 소속감만으로도 좋지만, 나를 알아주고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서툴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다. 여기에는 모두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며 화음을 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크게 진지할 일 없이 그저 뮤직캠프를 즐겼다. 이 현장스케치를 써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조금 정신없고 아쉽게 지나가긴 했지만,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보는 것도 정말 즐겁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해주는 것 같다.
사람이 적어서 아쉬웠으니까 다음에는 더 많이 와요...
지보이스 단원, 친구사이 회원 / 싸게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 소식지 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해당 게시판에서 신청해주세요. ☞ 신청게시판 바로가기
*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친구사이의 활동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참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