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영화 ‘몽상가들’은 감독 베르톨루치의 젊은 시절을 담은 영화라 봐도 무방하다. 젊은 혁명의 기운이 물결치던 1968년의 파리에서 현실을 외면한 채 스크린 너머의 세상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은 영화와 시에 빠져 부모 세대의 억압으로부터 일탈하려는 젊은 베르톨루치의 명백한 자화상이었다.
온갖 영화의 이미지들로 도배된 골방에서 젊은이들은 무의식의 근간을 향해 역행하는 자폐적인 마스터베이션에 몰두한다. 그런데 그 어두침침하고 눅눅한 욕망의 저장고를 주시하면서 나는 환갑을 넘긴 베르톨루치가 여전히 얽매여 있는 끈질긴 콤플렉스를 느꼈다.
1940년 생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 그의 생부인 가다나 베르톨루치와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다.
가다나 베르톨루치 역시 시인이었는데, 파졸리니와는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인 교감을 나눴던 친구 사이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자 했던 젊은 베르톨루치는 열 다섯 살 때 처음 단편영화를 찍고 1961년 파졸리니의 첫 영화 ‘걸인’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영화에 뛰어들게 된다.
‘몽상가들’과 베르톨루치 얘기로 서두를 시작한 건 파졸리니에게로 들어가는 입구를 조금은 친근하게 열기 위함이다. 영화광들 사이에선 무시무시한 컬트로 알려진 그지만, 인간의 가장 잔혹하고 처참한 일면만을 노골적으로 파헤친 그의 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신비 속에 떠도는 풍문과도 같다.
더욱이 그가 이탈리아어의 원색적인 리듬과 서정에 탐닉했던 시인이자 파시즘에 정면도전한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비의 장막은 더욱 두꺼워진다.
내 기억으로 파졸리니에 대해 그나마 심도 있게 다룬 한국어판 간행물은 ‘한길로로로’ 시리즈로 출간됐던 ‘파솔리니’(오토 슈바이처 지음, 안미현 옮김, 한길사)와 장편소설 ‘폭력적인 삶’(박명욱 옮김, 세계사)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 미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파졸리니에 대해 얘기한다는 건 곤혹스럽고도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프레스코 성화와 상징주의 시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성과 속의 극단적인 단면들을 재단해내는 파졸리니의 영화적 풍경들은 마음 깊은 곳에 암장된 숨은 욕망들을 기꺼이 해 아래로 꺼내놓게끔 만들고 만다. ‘몽상가들’을 보며 떠올랐던 건 파졸리니의 열 두 번째 영화 ‘테오레마(Teorema)’이다.
‘테오레마’는 ‘정리(定理)’란 뜻의 수학적 개념이다. 파졸리니는 이 작품에서 부성(父性)과 관련된 자신의 오랜 딜레마와 욕망을 끈끈하게 표현하고 있다. 파시스트 장교 출신이었던 아버지 카를로 알베르토 파졸리니는 파졸리니에게 무질서와 폭력, 소유욕에 넘치는 독재자로 남아있다.
어머니 수산나 콜루시가 그와 결혼하게 된 배경에는 일방적인 폭력과 그 당시의 낡은 도덕관이 작용하고 있었다. 파졸리니에게 부모의 이런 불균등하고 억압적인 관계의 외상(trauma)은 평생토록 떠나지 않았다. 그 근간에는 소년 시절부터 그의 영혼을 고통받게 했던 특별한 성적 취향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파졸리니는 죽을 때까지 하룻밤 성관계를 맺을 소년들을 찾아 로마의 뒷골목을 배회했다.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는 그의 죽음 또한 끈질긴 성적 추문과 관련된 음모론에 휩싸여 있다. 파졸리니의 성적 취향은 평생을 사로잡은 딜레마이자 예술창작의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릴 적부터 맹렬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반작용이라 분석하는 건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이다. 파졸리니의 동성애는 보다 근원적인 가톨릭적 원죄 개념과 결합되어 그만의 특별한 살부욕망의 원형적 텍스트를 창조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테오레마’는 파졸리니의 작품세계에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파졸리니는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버지에 대한 끈질긴 원망과 연민을 결합시킨다. 그런데 그 연민의 최종 대상은 바로 파졸리니 자신이다.
‘테오레마’가 나온 건 1968년이다. 베르톨루치가 ‘몽상가들’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던 바로 그 시점이다. 당시 파졸리니가 68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비판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혈기방장한 ‘68’의 젊은이들을 그가 그토록 터부시했던 아버지의 시점에서 파악했다. 그 당시 파졸리니는 ‘오, 불행한 세대여, 너는 불복종 속에서 복종했다./ 이 세계는 계속할 수 있기 위해, 새로운 아들들에게 도와줄 것과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너희는 책과 인생에 대한 사랑 없이 나이 들게 되리라’며, 젊은이들이 듣기에 무척이나 보수반동적인 일갈을 내뱉는다. 그의 나이 마흔 중반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한 극렬한 좌파지식인의 표변이라 보는 건 안일한 해석이다. 한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복잡미묘한 정신적 궤적은 시대적 변화의 소용돌이 이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내적 필연성과 끈질긴 자기탐구의 결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격동의 세월 속에 정치적 변절자로 낙인 찍힌 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파졸리니 또한 끝끝내 이해 받지 못한 자신만의 성채 속에서 해방과 순교의 피해망상만을 극렬히 표출하다가 사회로부터 학살당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살로, 소돔의 120일’(1975)이 마지막 안간힘의 참혹한 방사였다면 보다 시적인 울림이 강한 ‘테오레마’는 미묘하게 변화하는 정신의 파동을 최초로 감지한 영혼의 수난극이다.
어느 부르주아 집안에 한 남자가 흘러 들어온다. 가장의 동성애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그는 바이섹슈얼한 애첩과도 같다. 그는 이름도 없고, 마땅히 하는 일도 없다.
잘 다듬어진 잔디가 깔린 정원에 앉아 랭보의 시집을 뒤적이거나 저택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집안 모든 사람(남녀 불문)과 성관계를 갖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가족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영적 고뇌를 안긴 채 사라진다.
젊은 남자는 신의 메타포다. 그렇기에 그는 존재의 모든 것이다. 동시에 그는 악마이다. 그렇기에 그가 지나간 자리엔 혼돈과 파괴만이 남아있다. 영화 중반 이후, 저택을 떠난 그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슨 불가해한 기운처럼 화면 바깥으로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은 사분오열되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가장은 고통과 환희와 모멸이 뒤범벅된 얼굴로 천천히 세상 바깥으로 떠밀려가 벌거벗은 채로 황무지를 헤맨다. 그리고 공허한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울려 퍼지는 가장의 절규와 함께 별안간 페이드 아웃된다.
시네마테크 골수회원이나 영화 관련 종사자가 아니면 인터넷을 뒤져서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범박하게나마 ‘테오레마’의 줄거리를 훑어 내린 건 삐까뻔쩍하게 개봉된 ‘몽상가들’의 찝찔한 뒷맛을 해갈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 탓이 크다.
하지만 영화사적 관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분석하거나 영향관계를 살피는 건 나의 몫도 아니고 그럴 깜냥도 안 된다. 그럼에도 내게 ‘테오레마’는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인류의 정신사적 잔향으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파졸리니가 천착했던 문제의식은 고래로부터 인간 영혼을 사로잡아온 영적 신비와 원시적 정념의 불가해한 무게와 깊이에 대해서이다. ‘68’ 이후 소위 ‘앙티 오이디푸스’로 대표되는 젊은 지식인들의 반역과 모반이 제 아무리 정신의 진화와 발전을 표방하며 영혼의 해방구를 뚫어놓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과거와 원형으로 회귀하는 불쌍한 영혼의 미아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회귀가 반복되는 자기부정과 연민의 시소타기일 경우, 결국에 도달하는 건 진화론의 최초지점에 놓여있을 어떤 생명체, 가령 ‘신’이라 불릴 수도 있는 신비의 영성이다.
그 영성이 사람을 관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끌 때, 과학과 종교와 예술이 결합된 무시무시한 신비적 삶이 거대한 황무지처럼 펼쳐진다. 이건 파졸리니의 정신적 아버지였던 랭보가 실제로 행했던 삶이기도 하다.
세기를 넘겨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된 듯한 ‘오이디푸스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은 너무 예쁘다. 여배우 에바 그린의 미모보다 몇 배 더 예쁘다. 때문에 호화로운 액자 속에 꿈을 결박한 ‘그림’처럼 가식적으로 여겨진다.
생부와 파솔리니라는 두 명의 아버지를 극복하려는 제스처로 일관해왔던 베르톨루치는 호사취미에나 어울릴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마지막 황제’ 마지막 사랑’ 등)되거나 노골적으로 섹스에 정치를 대입하며 스스로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했다. 그 긴 노정에서 복귀한 ‘몽상가들’은 자신의 집요한 무의식적 억압들을 ‘한 때의 꿈’인 양 요령 좋게 얼버무리고 있다.
그러나 베르톨루치의 정신적 아버지였던 파졸리니는 이미 현실이 요구하는 예쁜 ‘그림’ 을 배반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감지한 세계의 원형적 질서를 판독하려 했다.
원죄처럼 부여된 동성애는 그의 본능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린 파졸리니에게 던진 최초의 빛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이어야 할 것에 어둠의 낙인을 찍은 세상에서 그에게 삶은 끊이지 않는 몽둥이 세례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하룻밤 섹스 파트너를 찾아 로마의 뒷골목을 순례하는 그의 암울한 초상은 어둠 깊은 곳으로 잠행해 빛을 찾으려는 신의 목자였다 해도 과언 아니다. 난 그가 부럽다.
시인 nietz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