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 언니들이 보면 한소리 하겠지만
가끔, 문득 나도 나이 좀 먹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 놓고 딴 짓하고 있다가
문희옥이란 가수가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젠 누가 뭐래도 숙련미 넘치는 모습과 이마에 보기 좋게 생긴 주름.
학창 시절 때 고교생 트롯 가수라는 큼지막한 타이틀을 뒤로 하고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수줍게 무대에서 노래부르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얼마 전 학교 후배들과 오랜만에 만나 집 근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소를 옮기러 길을 걷던 중 영업을 준비하는 한 가게에 걸린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진추하를 기억하세요?’
진추하는 소피마르소가 한창 주가를 올릴 즈음에 활동했던 홍콩여배우로
청순한 이미지, 낭낭한 목소리 등으로 굉장한 인기를 누린 배우 겸, 가수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플랜카드를 본 후배들의 대화 한 토막
후배1 : 진추하, 무슨 시계추 이름인가?
후배2 : 무식한 놈, 전통주 이름 아니냐? 형 우리 저거 마시러 가요.
...........^^;;
하지만 내게 진추하나 소피마르소는 학창 시절의 암울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친구들이 그녀들의 청순함, 가녀림에 뿅 갔네, 어쩌네 떠들어 댈 때,
그 때 당시, 성적 정체성을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나는
친구들의 대화에 도무지 동참할 수가 없었다.
친구사이 회원들과 좋아하는 남자 배우나 연예인 얘기를 침 튀기며 떠들어 댈 때,
문득문득 소피마르소가 주연한 영화나 진추하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잠시 학창시절의 암울함이 되살아나 씁쓸하긴 하지만
이내 쓴웃음으로 넘길 정도의 노련한 나이는 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