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고생으로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겼다.
"퀴어문화축제"
2012년의 퀴어축제는 나에게 있어서 "쇼크" 였다면, 2013년의 축제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
불과 1년전의 나는 청계천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야하나 말아야하나를 두고 나 스스로와의 싸움을 벌여야 했고,
막상 나서는 나의 모습은 선글러스와 모자로 무장을 하고선 축제의 장소로 향했었다.
그리고 끝내 벗지 않았던 검은 안경 뒤로 거뭇거뭇한 풍경만을 나의 눈에 담았었다.
그럼에도 신이 났었다고... 이렇게 축제를 즐겼노라... 이야기를 했었다.
이태원클럽도 처음으로 가본 날이기도 했었고, 사람들이 벌건 대낮에 "나 게이예요." 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벅찼으니까...
그랬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2013년의 6월.
가야하나 말아야 하는 따위의 나 자신과의 싸움은 예초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나의 눈은 더 이상 검은 안경뒤로 숨어있지도 않았다.
"게이코리아" 는 문구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홍대를 돌아다녔다.
단체였기에, 옆에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뻔뻔하게 돌아다녔다.
젊은 청춘들이 빼곡하게 자리한 홍대 거리에서 당당하게 나의 민낯을 드러내며 돌아다니는
그런 꿈같은 상상이 현실이 되어 내가 걸음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친구들이 홍대거리에서 흔들어대는 춤사위를 보며 박수를 쳤다.
그러는 동안 어김없이 나의 어깨에는 "게이코리아" 라는 문구가 새겨진 어깨띠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도 없었다.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서로 눈을 마주치면 찡긋하며 눈 인사를 나눴다.
축제의 꽃인 "퍼레이드"의 시간.
준비한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찍어도 됩니까?"
자신을 기자로 소개한 어떤 이의 물음 그리고 그 사진은 언론에 노출될 거라했다.
"네. 됩니다."
오롯이 아이라인만으로 무장한 나의 얼굴을 언론에 노출하시겠다는데, 그래도 되노라고 말을 뱉는 나를 보며,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자들이 분장을 한 우리들 앞으로 몰려들었다.
'아... 낮에도 플래쉬가 이렇게 반짝이며 터질 수가 있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수십대의 카메라가 플래쉬를 터트리며 마구마구 찍어댔다.
순간적으로 어떠한 포즈를 취해야겠다는 따위의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나 또한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난 1년동안 난 무슨 마법에 걸린 걸까...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들이 생겼던 건가...
퍼레이드의 선두가 출발을 하고 행렬이 이어질때 쯤. 내가 긴장하고 있음을 다른 이들에게 들켰다.
"형 완전 얼었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무지 애를 쓰고 있었다지만, 나의 몸과 얼굴에서까지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웃기 시작하며 손을 흔든 건 사람들의 환호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먼저 웃어보이며 박수를 쳐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옆을 보았다. 보도에 걷던 이들이 우리를 보며 웃으며 손을 흔들엇다.
앞을 보았다. 트럭 위의 사람들, 그리고 스피커가 터져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대표님.
뒤를 보았다. 벅차다....
말 그대로 벅차다. 아스팔트와 보도를 가득 매운 사람들의 행렬이 형형색색으로 나의 눈에 담겼다.
일년의 하루. 그 하루만큼은 너나 없이 당당했고, 소리를 높혔다.
서서히 발가락이 아파오고, 종아리에 경련이 오기 시작할때쯤 퍼레이드의 행렬이 종착점을 향했다.
...끝이 났다...
하루의 끝...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
to.
음... 먼저 기획단으로 같이 일했던 모든 분들 정말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 많은 일들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오히려 미안하구요..(앞으론 열심히 ^^)
사실 이런 글을 빌미삼아서 슬쩍 흘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라인댄스 선봉에 서달라는 말에 제일 앞에서 신명나게 흔들어 주신 재우형.
6월의 뙤약볕은 얼마나 뜨거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무겁고 두껍고...크고 검은 드레스를 우아하게 입어주신 재경형.
부스와 판매대 기타 등등의 모든 상황들을 총괄해달라는 말에 흔쾌히 뒷일을 맡아주시며, 라인댄스까지 추신 라이카형.
혹여 샌드위치, 음료가 다 안팔릴까 싶어 사람들을 호객하고 주문을 받고 일일이 웃음으로 사람들을 챙겨주신 데미지형.
자신께서도 분명 같이 즐기고 싶으신 분인신데, 묵묵히 음악을 선곡하고 부스 안 음악을 계속해서 틀어주고,
퍼레이드 행렬이 흐트러지지 않게 뒤에서 계속 힘써주신 종순이형.
한장이라도 예쁜 사진 찍어 주시려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도 웃으며 원하는 사람들 다 찍어주신 차돌바우형.
퍼레이드 앞과 뒤를 뛰어다니시며 방송용카메라 (8mm 카메라인가요?) 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 사이로 열심히 영상을
담아주신 동하형.
축제의 시작부터 마지막 퍼레이드가 끝이 나는 순간까지 부스와 판매대를 책임지고 지켜주신 조한형.
사무실에서 반출되는 짐들을 축제 장소까지 잘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철호형.
퍼레이드 끝나고 배고프지 않냐며 한명한명 붙잡아서 샌드위치를 사주신 가람형.
... 형들이 계셔서 마음 껏 놀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예쁘게 사진에 담길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뒤에서 저희들이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신 덕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 덧붙여서 지난 1년동안 저에게 (모두를 칭하기엔 너무 주관적이라...) 마법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