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LGBT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
종교인으로서 성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임보라 목사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또한 나를 위한 것”
최근 LGBT커뮤니티에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성적지향 조항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발의를 일부 기독교 세력이 막아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보라 목사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소수자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의 공동대표이다. ‘차세기연’은 기독교인, 무교인, 이성애자, 동성애자, 성소수자, 10대, 40대 등 다양한 회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다. 2007년 말, 보수 기독교 세력이 차별금지법의 '성적지향' 조항에 대하여 '동성애를 허용, 조장' 한다며 거세게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기독교 내에서 그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기 어려운 종교 사회에서 꾸준히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는 어떻게 서울LGBT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매해 우리 영화제를 찾은 그녀는 평소 인권 운동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받은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의 제의를 받고 무척 기뻤다고 한다. 또한 가족과 종교에 관련된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를 맡아야 한다는 부탁에도 ‘아멘’을 하며 제 몫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차세기연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한국 기독교계는 대표적인 성소수자 혐오 집단이라고 한 그녀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을 하면서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힘든 점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그래도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속해 있는 교단과 교회가 열려 있는 상황 또한 소신 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버티면 더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내어주고 함께 행동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죠. 저 역시, 여러 모로 이 사회에 있어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제 자신의 인권을 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동성애 혐오가 대단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 논쟁과 퀴어 영화 제작과 종교의 연관성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우 편향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계의 목소리가 주류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우리나라 교계에서도 한바탕 논쟁이 생길 것이라고 예측 돼요. 그런 논쟁이 있어야 건강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고요. 현재는 이성적인 논쟁 자체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종교계가 억압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들이 높아져 가면 갈수록 퀴어 영화의 다양성도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이 사회의 인식의 깊이가 생길수록 재능을 가진 분들이 퀴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을 구상할 수 있을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는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가 동성애를 다룬 문화 콘텐츠를 강하게 비판해 온 사례들이 많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동성애자에 대한 몰이해를 기반으로 동성애자, 성소수자를 타깃으로 삼고, 혐오를 정당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는 동성애자의 모습은 암울하고, 병들어있고,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등의 부정적 이미지인데 영향력 있는 대중매체에 그와 반대되는 동성애자의 모습이 드러나면 자신들의 거짓선전이 밝혀지므로 더욱더 문화 콘텐츠를 검열하려고 드는 것이죠. 비열해요.”
그녀는 가장 인상 깊게 본 퀴어 영화로 제11회 서울LGBT영화제 개막작인 <창피해>를 꼽았다. 그렇다면 종교인인 그녀가 퀴어 영화의 감독이 된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까. 기존의 퀴어 영화에서 다루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들은 기독교에서 받은 아픔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자연스럽게 하는 교회들이 있어요. 그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습니다. 각자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기뻐해주고 그러면서도 잘 몰라서 생기는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들을 코믹하지만, 리얼하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올해 영화제의 기조인 '발랄한 저항'에 어울리는 듯 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분위기도 발랄하게 느껴지고 일부 기독교 세력의 입장과 반대되는 내용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종교계를 향한 저항의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생각한 소재로 영화가 제작된다면 기독교에 부정적인 기존의 퀴어 영화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서울LGBT영화제는 설렘이다.”
그녀는 영화제를 한 단어로 정의해달라는 부탁에 ‘설렘’이라고 표현했다. 영화제에 올 때마다 설렘과 떨림을 느낀다고 한다. 그녀는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관심이 높습니다. 다양한 주제, 장르로 해외는 물론 국내의 단편까지 프로그래머들이 엄선한 작품들이 연속 상영되는 이 영화제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들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큐를 통해 일상과 희로애락을, 종교나 가족과 관련된 영화를 통해서는 깨달음을, 멜로물을 통해서는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슬픔에 대한 공감 등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성소수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내 곁의 평범한 친구, 이웃, 동료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직 집행위원으로서 드러날 만한 일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하시며 그에 관련된 질문에는 부끄러워하셨지만 계속해서 영화제 활동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에 우리 영화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드러났다. 종교와 성소수자라는 그 둘의 무게중심을 맞추고 있는 그녀가 우리 영화제를 만나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지 기대가 된다.
서울LGBT영화제 데일리팀 김영경(bsongbsong@hanmail.net)
더 많은 정보는 서울LGBT영화제 홈페이지(http://www.selff.org/), 블로그(http://lgbtfilm.blog.me/), 트위터(http://twitter.com/Seoul_LGBT_Film)에서 확인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