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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 2007년 7월호

커밍아웃 이후 7년, 여전한 이슈메이커 홍석천

그가 잃은 것이 더 많을 거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틀렸다. 커밍아웃 이후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 솔직함과 자유로움은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그가 만들어내는 이슈를 쫓아가는 것은 ‘인간 홍석천’의 일부를 훔쳐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도 힘드세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가 힘들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홍석천(36)은 행복하다. 커밍아웃 이후, 그의 삶은 더 자유로워졌다. 힘들기는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감추고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솔직하게 사는 것보다 어렵다.

“아무도 살지 않은 인생을 먼저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커밍아웃 이후 힘들었던 것은 단 한 가지였죠. 방송을 못하게 된 것. 그 외에는 기본적인 제 삶이 무척 행복해졌어요.”

누군가 “너 지금 행복하니?”라고 물어오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가 행복한 이유다. 자신을 감출 이유도, 다른 사람들을 속일 필요도 없다.

커밍아웃 직후에는 타인의 폭력적인 시선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었다. 포비아(Phobia:혐오증)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은 성적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 심한 나라다. 뿌리 깊은 유교 문화와 기독교 문화도 한몫을 한다. 동성연애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두텁지만, 홍석천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난 7년간 눈에 띄게 변했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안고 저에게 와서 ‘이 아저씨가 얼마나 훌륭한 아저씨인 줄 아니?’하고 말하는 어머니도 계세요. 제 레스토랑에 와서 식사하는 분들은 반갑게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완전한 사랑’은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이전의 게이 캐릭터와는 확연히 달랐다. 드라마의 이미지는 대중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바꿔놓았다.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편견의 벽도 얇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은 보수적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역할이든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반응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크니까요.”

‘홍석천 자살 충동, 약물 유혹 받은 적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흔히 생각하는 원인 때문은 아니다.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도 제게 일을 안 주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울분 때문이었죠. 일본 정치인들 보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결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적은 있었죠.”

하지만 자살은 ‘그들’의 승리를 인정하는 셈이었다. 홍석천을 다른 세계로 보내고자 하는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그래서 홍석천은 ‘삶’을 선택했다. 다른 방식으로, 더 열심히, 보란 듯이 살기로 했다. 방송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의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Our Place)와 마이타이(My Thai)는 그 결심의 증거다. ‘나는 너희들이 생각지 못한 사업, 그리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그의 자신감이다. 몸도 힘들고 자금도 달리지만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가 만든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이죠.”

‘아직도 누드가 화제가 된다는 건 좀 새삼스러웠어요.’
최근 그는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했다. 남성복과 여성복, 각각 하나의 사이트를 열었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쇼핑몰이 아니었다. 시작 페이지에 등장하는 그의 누드사진이었다. 그는 남성복 쇼핑몰에서는 남자 모델과 함께, 여성복 쇼핑몰에서는 여자 모델과 함께 누드 촬영을 했다. 포토그래퍼 강영호의 스튜디오에서 흑백으로 촬영한 사진은 선정적이지 않다. “너를 입고 싶다”는 카피는 재치 있다.

“댓글을 봤더니, ‘돈 때문에 별짓을 다 하는구나, 돈을 얼마나 받았길래 누드를 하느냐’는 내용도 있었어요. 제가 돈을 받고 사진을 팔았는 줄 아셨나 봐요. 하하.”

쇼핑몰은 지인들과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그의 이미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도 많았다. 그들은 홍석천의 이름과 이미지를 사고자 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가짜라고 생각했다. 이왕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진짜’이고 싶었다.

“제 돈 들여서 모델 구하고 작가 섭외해서 찍은 사진이에요. 제대로 하고 싶었죠. 똑같이 가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저를 브랜드화 하기로 했죠. ‘너를 입고 싶다’는 카피도 그래서 나온 거예요.”

그는 뭐든지 확실하고 ‘클리어’한 것을 좋아한다. 일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고민하지 않고 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최민령과 함께

인터뷰가 있던 날은 그가 출연하는 현대 무용 공연 하루 전날이었다. 지난 6월 서강대학교에서 있었던 ‘꼬리를 문 물고기’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 공연이었다. 그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동성애의 감정 표현을 지도하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출연 제의도 흔쾌히 승낙했다. 부탁하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였다.

“제가 아는 안무가 한 분이 오셔서 섭외를 하셨어요. ‘아, 재미있겠다’ 하고 승낙했죠. ‘그런데 책정된 비용이 없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니 무용 해서 얼마나 버시려고요, 저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한 파트만 하면 돼요’하고 승낙했죠.”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예술에까지 돈을 요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은 의심 않고 좇는다. 그가 유독 ‘튀는’ 행보를 많이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가 벌이는 일에 ‘즐거움’ 외에 다른 조건은 중요치 않다.

커잉아웃 전에는 싫은 일도 하곤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마디그라(게이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것도, 광화문에서 열린 동성애 퍼레이드에 앞장선 것도 모두 즐거워서 한 일이다. 이번 행사에는 영화 ‘헤드윅’의 감독 (존 카메론 미첼)도 함께했다.

“사람들은 말리죠. 사실 저도 힘이 드는 일이에요. 행사를 진두지휘하고 사회를 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왜 자꾸 게이 행사에 앞장서느냐는 분들도 많아요. 사람들이 그걸 잊어야 제가 편해지니까요.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해야 해요.”

돌아오는 7월에 예정되어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최민령의 전시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온 최민령에게 “예, 그냥 하세요. 사진 찍는데 뭘 돈을 주세요. 대신 스케줄만 맞춰주세요. 컨셉트도 잡아주시고요.” 하고 승낙했다.

‘홍석천씨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최민령이 기획한 전시는 메이크업을 소재로 한다. 주제는 ‘사랑은 생각하고 행동하기(Love is Thinking and Acting)’이다. 메이크업 사진을 소재로 하는 전시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최민령의 전시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갤러리 안에는 메이크업 재료들을 늘어놓을 생각이다. 관객은 모델의 몸에 직접 화장을 해볼 수 있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판토마임 공연도 함께 열린다. 홍석천은 그의 사진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메이크업도 대중 예술로서의 독립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대중에게 널리 알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죠.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가장 폭넓게 다루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메이크업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같이 재미있게 즐기다 가는 전시가 되었으면 해요.” (최민령)

전시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사랑’, ‘생각하기’ 그리고 ‘행동하기’다. 홍석천의 테마는 생각하고 행동하기,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기’의 의미도 포함된다.

“상대 입장을 많이 생각해요. ‘홍석천이 있을까? 없을까? 받아줄까? 거절할까?’ 그런 고민을 했을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었을 거고. 감사하는 마음, 재미,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죠.” (홍석천)

홍석천은 ‘표현’하는 사람이다. 쇼핑몰도, 레스토랑도 그의 일부고 삶의 증명이다. 그의 몸과 패션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이 저한테 ‘넌 참 자유롭구나’하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 이상하다 생각했죠. 저 자신도 스스로 만든 억압과 규범에 싸여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럴 때는 되물어요.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이니?’ 하고.”

일견 자유로워 보이는 홍석천은 사실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행보는 엄격한 내부 규범과 외부의 시선에 맞서 싸워가는 과정이다.

‘홍석천씨의 일상은, ‘춤’ 같아요’
‘일상을 춤추듯이 살라’는 충고는, 매 순간 감정에 충실하고 그것을 표현하라는 뜻이다. 춤을 추는 사람이 감정에 몰입하지 않거나, 그것이 몸짓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춤은 어그러진다. 인간관계든, 일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통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거나, 잘 알고 있지만 표현에는 서툴다. 솔직한 감정 표현은 행복의 조건이다. 지금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홍석천의 일상은 ‘춤사위’를 닮았다. 그리고 그 춤사위는 치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해요. 사라진다는 것은 죽는 거죠. 장례식에 갈 때마다 생각해요.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의 삶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만끽하고 싶다. 계속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식은 사랑에 집착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포장하고 싶지 않다.

자유로우면서도 치열한 그의 자세는, 죽음을 가까이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번이라도 바닥을 쳤던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그 시기는 바로 다음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그리고 죽음이 ‘선택’이 될 수도 있음을. 그 순간에 느껴지는 두려움을 딛고 다시 삶으로 치고 올라오는 반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의 치열함에 공감한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제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요. 저는 감정을 잘 표현하기 때문에, 진심이 아니면 표가 나요. 결과도 좋지 않고, 틀어지게 마련이죠.”

아직도 대중의 관심은 그의 연기가 아니라 홍석천 자체에 쏠려 있다. 지난 6월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강연회와 그의 누드사진이 화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홍석천에게 득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연기자와 인간 홍석천 사이의 줄타기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내세울 것도, 완벽한 것도 없기 때문에, 항상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고수도 실수를 하잖아요. 다칠 수도 있죠.”
그럴 때 홍석천을 받쳐주는 것은 ‘대중’이었으면 한다. 그들이 없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중을 믿을 수 있게 됐어요. 그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굉장히 힘들어지죠.”
아직도 사람들은 그를 ‘동성애자 홍석천’으로 본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그의 치열한 삶에 동기부여가 된다. 레스토랑을 열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꾸준히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가 창조적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할 수 있구나. 저런 색깔을 칠할 수 있구나, 무시할 수 없겠는걸’ 하고 생각하게 만들면 땡큐죠.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인간 홍석천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만든 이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슈들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일 뿐, 놀랄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을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홍석천에게,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그가 추는 춤, 그 치열한 춤사위다.


■글 / 정우성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협찬 / 마이타이(My Thai)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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