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21세기 新가족-21세기 新가족주의> 가족, 핏줄에서 사랑과 신뢰의 연대로 국제결혼·재혼가정 등에 편견 버려야 |
다양한 가족 형태-“옳다 그르다 아닌 차이일 뿐” |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얄. 6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맞붙게 될 후보들이다. 흔히‘극우파 쇠퇴, 중도파 부상’으로 요약되는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두 후보의 가족 관계다. 여성으로 결선에 진출한 루아얄 후보는 법적인 동거를 하면서 4자녀를 둔, 독특한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 둘째 부인과 이혼한 뒤 재결합한 사르코지 후보의 가족관계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무심한 프랑스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대통령 선거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의 가족 관계가 범상치 않은 것은 현대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사회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 여성 지위의 향상 등으로 가족의 형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3대 이상이 한집에 사는 대가족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녀가 한가정에 사는 이른바 핵가족도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대신 늘어나는 것은 이혼한 편부모 가족, 재혼한 부부의 자녀가 함께 사는 복합가족, 소년소녀 가족 등 지금까지 이른바 ‘비정상’으로 알고 있었던 형태의 가족들. 이런 와중에 급격하게 늘어난 국제결혼 가족은 이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이를 입양해 기르는, 동성애 가족이 이 땅에서 합법화하는 것도 어쩌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상상만 해왔던 가족 형태도 이미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테면 난자를 제공한 어머니,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 자궁을 제공한 어머니, 그리고 양육한 아버지와 어머니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 요컨대 이제 가족 형태에서 ‘정상’이나 ‘비정상’, 혹은 ‘옳다’거나 ‘그르다’는 것은 없다. ‘차이’만 있을 뿐이다. # 姓이 3개로 구성된 아이… 올해 만 15세 된 박이조수진(여·가명)양의 성(姓)은 3개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박은 생부, 이는 생모, 조는 생모가 재혼한 아버지, 즉 계부의 성이다. 처음 수진양의 이름을 듣는 이는 어리둥절해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수진양은 당당한 편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헤어지고, 새 아버지와 새 동생을 만나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까. 나이보다 조숙한 수진양의 말은 간단하지만 어른스럽다. “이혼하고 재혼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부모가 이혼하거나 재결합하는 등의 이유로 극적인 가족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는 이는 물론 수진양뿐만 아니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06년 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건수는 12만5000여건. 이혼건수가 16만7100여건에 이르렀던 2003년을 정점으로 다소 감소세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3쌍이 결혼하는 동안 1쌍 이상이 이혼하는 추세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언젠가 우리사회에서 결혼한 3쌍 중 1쌍은 이혼을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1996~2006년까지 11년 동안의 누적 이혼 건수는 어림잡아 100만건이 넘는다. 10여년 사이에 200여만명의 남녀가 이혼을 경험하고, 이들 이혼 남녀가 두었던 150만~160만명의 미성년 자녀가 가족 형태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이혼한 부부가 가졌던 20세 이상 성인 미혼 자녀까지 포함할 경우, 이혼으로 가족 형태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은 400만명 선으로 전체 인구의 10분에 1에 육박한다. 혼인 형태의 다양성도 극적인 가족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통계청의 ‘2006 혼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4~2006년까지 31만~33만건에 이르는 혼인 중 남자의 재혼비율은 16.7~18.9%, 여자의 재혼 비율은 18.0~21.1%. 해마다 최소 10만 이상의 남녀가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 했다. 혼인 형태의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근의 모습은 외국인과의 결혼이다. 6년 전인 2000년 1만200여건으로 총혼인건수의 3.7%에 불과했던 외국인과의 결혼은 2004년 3만5000여건으로 처음으로 전체의 10%선을 넘어선 뒤, 지금까지 11~1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6년 동안 외국인과 결혼해 국제 결혼가정을 꾸민 이들만 40만명에 육박한다. 국제 결혼으로 태어나는 아이의 부모 중 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국 출신이다. # 김흥국도 기러기 아빠, 가족 그리워하며 방송중 눈물 유쾌한 남자, 국가대표 축구선수팀 응원단장, 인기 라디오 DJ…. 가수 김흥국씨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 중 일부다. 그러나 얼굴에 걱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김씨가 최근 한 방송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으로 간 아내와 아들, 딸을 보낸 기러기 아빠로서, 헤어져 사는 가족에게 음성 편지를 보내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3년여 처자식과 헤어져 사는 사연을 이야기하며 “가족이 너무 그립다. 길 가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만 봐도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또 아내에겐 “혼자 방송하기도 힘들다, 그만 정리하고 들어와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가족 관계의 특별한 변화로, 기러기 아빠 등으로 대표되는 1인 가구의 증가를 빼놓을 수 없다. 정부의 ‘2005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수는 317만1000여가구. 전체 1588만7000여가구의 20.0%에 해당하는 것으로, 5년 전보다는 42.5%, 20년 전보다는 379%나 증가했다. 이들 1인 가구의 혼인 상태별 분포는 미혼(45.0%)이 가장 많고, 사별(31.6%) 이혼(11.8%) 기러기 아빠와 같은 유배우자 1인 가구(11.6%)의 순이다. 1인 가구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비)혼 1인 가구의 증가다. 최근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비혼 남녀가 늘어나면서 혼자 사는 남녀가구 수가 5년 전보다 47만가구(49.1%)나 늘었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1인 가구도 전체의 11.6%(36만8000여가구)로, 5년 전보다 37.9%나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이혼으로 인한 1인 가구 증가율(70.5%)에는 못 미치지만,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와 맞물려 개인주의화가 두드러지는 사회 구조와 관계가 없지 않은 변화라는 측면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부부와 모자, 부자 등 두 사람이 가족을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2인 가구가 전체의 22.2%로, 20년 전보다 2배 가까이나 늘어난 것도 이런 사회 변화의 추세와 관계가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인식과 정부 정책, 그리고 제도가 이같은 가족 형태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 ‘정상’은 없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 ‘자신들 스스로가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전형적인 가족 임무를 수행하는 2인 이상의 사람들.’ 지난 90년대 미국사회사업가협회(NASW)가 형태적인 측면에 주목해 새롭게 규정한 가족의 정의다. 오늘날 가족 정책을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혼인이나 혈연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생활을 하는 전통적 가족 외에 지속적인 연대의식으로 일상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집단까지 가족의 개념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일각의 이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가족변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급속한 가족 형태의 변화로 가뜩이나 정서적,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이런 사회의 편견에 더욱 멍이 든다. 사회 구조의 변화에 책임이 없지 않은 가족의 위기가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불행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부담과 비용으로 이어진다. 가족 변화의 책임을 당사자인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정부가 함께 져야 하는 이유다. 우선 시급한 것은 이혼이나 편부모 가정, 국제 결혼 가정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것. 이와 관련한 법적, 제도적 미비점을 정비하고 이들에 대한 정서 서비스와 교육지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정자(가정관리학) 동아대 교수는 “이제 외형적으로 어떤 형태의 가정이 모범이라는 식의 표준이나 우열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며 “편부모 가정, 국제결혼 가정, 비혼자와 기러기 아빠를 포함한 1인 가구 등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가족을 우리 사회 전체가 현실로 적극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통합적이고 다각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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