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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대체복무제는 ‘상식’을 따르라

평화주의자·성소수자 등 여호와의 증인 외에 군대를 거부한 28명…‘신체’로 현역·사회복무를 가르는 제도로는 그들 양심을 지켜줄 수 없어

기획연재 양심에 따른 사람들 ④

▣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취로사업 나오셨어요?”

“아, 예. 철대위 가시는가 보네….”

유호근(32)씨가 주민 이아무개(여·53)씨와 반가운 눈인사를 건넨다. 서울 동작구 상도5동, 큰길을 따라 들어선 한적한 주택가에서 불과 50m 남짓이나 떨어졌을까? 산자락을 끼고 들어선 비탈길 사이로 철거촌이 숨은 채 버티고 섰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린 4월9일 오전 유씨를 따라 폐허를 뚫고 그나마 남은 주민들이 기대 사는 언덕길을 올랐다.

“참, 당뇨 있으시죠?”

“네. 당뇨도 있고, 혈압도 있고…. 약을 계속 먹고 있어요.”

“어쩌죠, 당뇨가 있으면 치과 진료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 철거촌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유호근(왼쪽)씨가 치과진료 지원사업 대상자인 한 주민의 치아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병역거부 선언 때부터 수감생활을 마치기까지 그가 흘려보낸 3년10개월은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이었는지 모른다.

‘국군장교’가 꿈이었던 유호근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남부장애인복지회 등 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요즘 장애인 치과진료를 주선하는 데 열심인 유씨가 건넨 말에, 장애 3급이라는 임아무개(남·63)씨는 “혈당 수치가 그리 높지 않으니 괜찮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레 되물었다. 철거촌 들머리부터 낯선 이를 따라나섰던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적막한 산동네가 울리도록 ‘컹컹’ 목청을 높인다. 저 너머 깡충하게 숲을 이루고 치솟은 고층 아파트 숲이 아련하기만 하다.

“저도 이 근처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그런데도 여기에 철거촌이 있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어요. 큰길만 다니다 보면 (철거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거든요. 이렇게 숨겨진 철거촌이 동작구에만 서너 군데 더 있어요.” 유씨는 ‘희망나눔 동작네트워크’(희망동네)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04년 2월 보증금도 없이 월세 40만원에 세 평 남짓한 사무실을 낸 것을 시작으로, 이젠 아이들 공부방 2개와 사무실까지 갖춘 제법 의젓한 단체로 성장했다. 그사이에 유씨는 1년3개월가량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는 양심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다.

어릴 적 ‘국군장교’를 꿈꿨던 그였다. 대학에 진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평화주의라는 신념이 싹텄다. 그는 2002년 7월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저의 소망이며 또한 모든 이의 소망일 것”이라며 “다만 저는 그 소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실천의 진정성을 온전히 보전하고자 개인적 소신에 비추어 그에 반하는 행위를 적극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고는 2001년 12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에 이어 양심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것은 유씨가 두 번째다.

“사실은 병역특례를 가려고 정보처리기사 자격증까지 따둔 상태였습니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저 막연히 ‘군대는 아니다’란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얘기를 들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결심을 굳히게 됐습니다.” 서글한 눈매의 유씨가 찬찬히 병역거부를 선언하던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병역거부를 선언한 2002년 10월 영장실질검사를 거쳐 구속됐다가,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17일 만에 풀려났다. 당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법적 판단이 진행 중이었고, 그를 포함한 거부자들의 재판이 사실상 무기 연기된 상태였다.


△ 현역 전투경찰로는 처음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유정민석씨는 “공익적 성격을 띤 대체복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흘려보낸 세월’은 만 3년10개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오랫동안 재판이 열리지 않으면서 많이 답답했어요. 사실 좀 지치기도 했고.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한 상황인데, 뭔가 새로 일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뭔가를 시작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잠깐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막막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을 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주변의 도움을 얻어 ‘희망동네’를 설립하고, 스스로 생각한 ‘대체복무’에 들어갔다. 한창 일에 열중하려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법원의 소환장이 날아왔다. 2004년 7월과 8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지지하는 결정을 내린 탓이다.

“당시 국회는 한창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었어요. 2004년 9월23일 속개된 재판에서 국회의 입법 논의를 지켜보자며 다시 재판이 연기됐죠. 해를 넘겨 이듬해 2월에야 결심공판이 열렸고, 결국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병역거부를 선언한 지 꼬박 2년7개월여 만의 일이다. 2006년 5월4일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1년3개월 수감생활을 했으니, 그가 병역거부 때문에 ‘흘려보낸 세월’은 만 3년10개월이다. 그는 “항소심 때 재판부가 판결문 낭독에 앞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로선 법에 따라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맑게 웃었다.

출소 직후 ‘희망동네’로 돌아온 유씨는 “내 방식의 평화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평화는 ‘밥’이란다. 지난겨울엔 철거민 가정에 연탄과 난방유 지원사업을 벌였고,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옷가지를 구해오기도 했다. 지역단체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의료지원 사업도 시작했다. 유씨가 수감 중일 때 시작된 공부방에는 매일 저녁 중학생 4명과 초등학생 9명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학생운동권이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전단지 몇 장만 붙여도 자원활동을 하겠다는 문의 전화가 쏟아진다. 그러니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대가로 그가 흘려보낸 46개월은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했던 비용이었던 게다.

평화단체 ‘전쟁 없는 세상’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모두 11명이다. 또 이미 수감생활을 마친 나동혁·염창근·임재성씨 등 15명이 있고, 병역거부 선언 이후 재판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이 2명이다. 오태양씨가 병역을 거부하고 나선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이는 모두 28명이다. 여기에 2007년 2월 말 현재 여호와의 증인으로 병역을 거부한 수감자 810명과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인 134명이 있다. 우리는 이만큼의 ‘양심’조차 보듬어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 평화주의자 오태양씨가 병역을 거부하고 나선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이는 나동혁·임재성·염창근(왼쪽부터)씨 등 이미 수감생활을 마친 15명을 포함해 모두 28명이다. 우리는 이 정도의 ‘양심’도 보듬어주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성애자·군필자에게만 시민권이…

“사실 나도 혼란스러웠다. 동성애자냐 아니냐, 나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해 방황했다. 이성애 중심적 세상에서 기존 언어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나를 드러내고 설명할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성전환 수술을 할 의향은 없다. 여자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것이다.”

지난 2005년 9월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전투경찰로 차출돼 서울 도봉경찰서에 배속된 유정민석(25)씨는 지난해 3월 휴가를 나온 뒤 고심 끝에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의 병역거부는 현역 전투경찰로선 처음인데다, ‘성적 소수자’라는 그의 성 정체성 탓에 눈길을 끌었다. 병역거부 선언 직후 경찰에 자진 출두한 그는 유치장에서 사흘을 보낸 뒤 검찰로 송치됐고, 구속 적부심에서 불구속 결정이 나 풀려난 뒤 지금껏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몇 차례 심리를 진행한 뒤 ‘병역 기피를 위해 성 정체성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재판이 연기됐고, 그사이 법원의 정기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바뀌었다. 꼬박 1년째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석씨는 “성적 소수자는 예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고 말했다. “단지 사회적 억압이 컸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다. 흔히들 ‘군대 가면 남자가 된다’고 말한다. 민석씨는 “그럼 가기 전에는 여자였냐”고 되묻는다. “사회가 남성이라고, 여성이라고 나눠버리는 ‘젠더(성) 이분법’이 강력하다. 하지만 동성애자냐, 트랜스젠더냐를 가르는 명확한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간지대가 대단히 넓다. 끊임없이 딱지 붙이고 규정하려는 것은 편견이자, 폭력이다.”

그는 “공익적 성격을 띤 대체복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이라면 딱히 군복무 때문이 아니어도 자원해서 할 만한 일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도 고통이고, 이를 숨겨도 고통이다. 이성애자·군필자만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사회복무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군사주의 문화를 해소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민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정부는 지난 2월 초 국가 차원의 인적자원 활용 방안의 하나로 사회복무제도를 도입할 뜻을 밝혔다. 현역 충원 뒤 남는 인력을 현역 복무대체 차원에서 ‘활용’하던 것을, 중증 장애인을 제외하곤 예외 없이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사회적 인적 자원으로 개발·활용하는 차원으로 발전시킨 것”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효율’과 ‘합리성’을 강조하면서도, 정부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신체등급을 현역복무와 사회복무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사회복무 대상자에 대해서도 1주일간의 군사훈련을 부과하기로 한 탓이다.

사회복무자도 1주일간 군사훈련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말한다. “사회복무제는 이제껏 시민사회가 도입을 주장해온 대체복무제도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정부는 신체등급제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는 신체등급과 관계없이 사회복무에 대한 선택권을 주라는 것뿐이다. 700~1천 명의 젊은이가 매년 총을 드는 대신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의 복무기간을 늘려 감옥에 보내지 않으면 국가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건 당연하다. 사회복무를 할 젊은이들에게 굳이 1주일간의 군사훈련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노인 수발이나 장애인 지원 등 사회복무 관련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언제쯤 ‘상식’의 외침에 귀기울일 텐가.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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