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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 호주 상원의원, 반발 커지자 억지사과



윤여문(sydyoon) 기자    


▲ 노사관계법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동당 지지자들.  
ⓒ 윤여문

"호주에서 가장 고약한 언어를 듣고 싶으면 국회의사당으로 가라."
호주정치판을 비아냥거리는 수많은 우스개 중의 하나다. 국회의원들을 일컬어 '두뇌 없는(no brain) 사람들'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주국민들이 정치계에 보내는 냉소인데, 최근에 그런 비아냥을 들을만한 또 하나의 해프닝이 발생했다.

오는 10월 총선을 앞둔 호주정가의 일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대선을 앞둔 한국의 유력한 후보 중의 한 사람인 박근혜 의원을 떠오르게 하는 사안이라서 그 내막을 알아보았다.


"출산경험도 없이 총리하겠다고?"
호주 집권여당 소속 빌 헤퍼난 상원의원(NSW, 자유당)이 제1야당인 노동당 소속 줄리아 길라드 부당수를 향해서 "총리가 되기 위해서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호주의 총리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

지난 5월 4일, 한나라당 두 대권주자의 최근 만남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전 시장에게 "애 못 낳는 여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공박했다는데, 공교롭게도 이틀 사이에 두 나라에서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헤퍼난 의원은 5월 2일 발간된 호주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불리튼>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신체적인 문제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자녀를 키우는 지역구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런 여성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 수 있겠냐?"고 잘라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길라드 의원을 향해서 비슷한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데 이번에 또 다시 거론해서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말 그에게 저의가 있었을까?

그런 의문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 중의 하나가 두 의원의 정치성향 차이다. 헤퍼난 의원이 극우성향인 반면에, 길라드 의원은 좌파정당인 노동당 안에서도 좌파 성향이 가장 강한 의원(radical left winger)인 것.

더욱이 길라드 부당수는 그림자내각(야당이 구성한 예비내각) 노사관계 담당 장관직을 맡고 있어서 2007년 호주총선의 최대쟁점 중의 하나인 노사관계법 논란의 중심에 있다.

'꼴통'으로 소문난 빌 헤퍼난 의원

▲ 노동당을 지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 윤여문

길라드 부당수는 "노동당이 집권하면 2006년에 자유-국민 연립당에 의해서 사용자 위주로 개정된 노사협약규정을 개정 이전으로 되돌려놓겠다"고 선언해서 업계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빌 헤퍼난 의원이 딱 부러지게 노사협약규정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노동당 안의 강성좌파그룹 리더인 길라드 부당수가 내놓은 현행 노사협약규정 폐지 주장을 '자녀출산 문제'를 들이대며 에둘러서 공박했을 가능성은 높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헤퍼난 의원의 괴팍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2년 3월 "마이클 커비 연방고등법원 판사가 10대 소년과 동성애를 즐겼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발표했다가 사과한 바 있다.

또한 그는 2005년 9월, 여기자를 상대로 "오늘 밤 같이 잘 수 있냐"는 등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정계를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존 브록든 전 NSW주 자유당 당수 퇴진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서 비난을 받았다. 브록든 전 당수가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던 그 당시의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도록 했다는 것.

헤퍼난 의원의 괴팍한 언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존 하워드 총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당론을 거스르는 동료의원의 기자회견을 방해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중요한 법안의 통과여부가 단 한 표로 판가름 나는 상황에서 야당표결에 동참한 바나비 조이스 의원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여당 쪽에 표결할 것을 강요하는가 하면, 조이스 의원이 여당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서 방해하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워드 총리의 지시로 억지사과

▲ 길라드 의원 기사를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 인터넷 <시드니모닝헤럴드>

빌 헤퍼난 의원의 좌충우돌은 대부분 떨떠름한 사과로 마무리 됐다. 이번에도 그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10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소속정당에 나쁜 영향을 주고서도 사과하지 않고 미적거렸던 그는 지난 5월 3일 오후 존 하워드 총리의 사과독촉을 받고 억지로 사과했다.

그는 시드니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 하다가 "나의 발언으로 모욕감을 느꼈을 길라드 의원에게 사과한다"는 짤막한 발언을 하고나서 하던 연설을 계속했다. 그 장면이 TV에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전혀 미안하거나 사과하는 표정이 아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5월 4일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그의 사과가 충분했다는 의견은 12%에 불과했다. 52%는 그를 상원의원직에서 해임시켜야한다고 답변했고 그가 해괴한 사람이라는 답변도 25%나 됐다.

그러나 정작 헤퍼난 의원의 공격을 받은 길라드 부당수는 4일 아침 채널9의 '투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의 발언이 집권당의 공식발언이었다면 큰 문제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이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면서 "그를 구시대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어찌됐건 사과발언을 했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여당 소속의 토니 애보트 의원도 "헤퍼난 의원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러나 신속하게 사과했으니 이쯤에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반면에 '투데이' 프로그램의 여성 진행자는 "그의 발언으로 상처를 받았을 여성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고 뼈있는 멘트를 덧붙였다.

호주는 여권운동의 선진국인데...

▲ 호주의 한 선술집에서 만난 남성 노동자들.  
ⓒ 윤여문

1800년대 말까지 호주 여성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호주가 평등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지켜온 나라였지만 여성은 그때까지 투표권과 재산소유권도 없었고 전문직을 갖거나 대학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호주는 여권운동의 선구적인 나라다. 여성참정권동맹 등의 활발한 여권운동으로 세계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했다. 또한 1세기에 걸친 투쟁 끝에 1970년대에 남성과 똑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지금도 특정직종에서 남녀가 똑 같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고, 럭비와 크리켓으로 상징되는 호주의 남성문화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현상은 현실정치에서도 나타나는데 아직까지 여성총리가 없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좌파정당(실제로는 중도좌파정당)인 노동당에서도 강성좌파그룹의 리더인 줄리아 길라드 부당수. 그녀는 호주정치사상 첫 번째 여성총리감으로 지목받고 있고, 또한 그 무거운 짐을 지고나가기 위해서 출산까지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호주의 이웃나라인 뉴질랜드는 총리는 물론이고 야당 당수도 여성이다. 머지않아 오세아니아의 두 나라 모두 '여인천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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