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멀쩡한 퀴어영화를 만들고도 감독이 먼저 ‘절대로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우기는 이상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송희일은 <동백꽃> DVD 인터뷰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언급하는 사람이다. 그의 존재감이 대단할 수밖에 없으며, ‘정통 퀴어 멜로’를 표방한 <후회하지 않아>는 가장 용기있고 통쾌한 한국영화가 됐다. 특히 동성애적 욕망을 과감하게 선언한 마지막 장면은 눈이 튀어나올 만한데, 지배적인 이성애적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식기를 부여잡는 행위 앞에서 ‘브라보!’를 외치지 않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후회하지 않아>의 장르적 특성이 가려진 건 안타까운 부분이다. 딱딱한 대사, 계급 구도, 뻔한 신파를 탓하는 사람은 도대체 서크와 파스빈더의 멜로드라마를 보지 않았단 말인가? 관객과 주제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후회하지 않아>는 못마땅한 현실을 뚜렷이 인식하게 만든다. <후회하지 않아>는 지금 이곳의 게이 문화에 관한 인류학적 기록이다. 거칠고 어두웠던 스크린의 영상이 부드럽고 밝은 톤으로 바뀐 것에 대한 호불호를 차치하면 <후회하지 않아> DVD는 독립영화 홈비디오에 대한 인식을 바꿀 만큼 잘 만들어졌다. 두개의 음성해설- 감독, 제작자, 배우의 것과 감독, 제작자와 팬 카페 회원, 게이 인권운동단체 회원의 것- 이 지원되는데, 둘 다 워낙 원색적이어서 ‘미성년자 접근금지’ 딱지를 붙여야 할 정도다. 시종일관 즐거운 수다를 늘어놓는 제작자 김조광수와 영화 이야기로 돌리고자 애쓰는 감독 사이에 앉아 있다는 기분으로 듣다보면 4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메이킹 필름(44분), 인터뷰(33분), 삭제장면(15분) 등 영화의 실록에 해당하는 것도 좋지만, 야사로 불릴 부록 또한 인상적이다. 영화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한 팬 미팅의 현장(17분), 그들이 외전격으로 만든 두편의 단편영화 <영화보기 좋은 날>(10분), <야만의 날>(12분) 등은 분명 다른 영화들이 시샘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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