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성소수자 진보포럼 Rainbow Action 개최돼
지난 29일 연세대에서는 동성애자, 성전환자, HIV/aIDS감염인 및 사회단체 회원들이 이틀간의 일정으로 ‘2006 성소수자 진보포럼-Rainbow Action'(진보포럼)을 개최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 주최로 열린 이번 포럼은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 성소수자 진보포럼으로서 이틀 동안 성전환자, 군대, 에이즈, 동성결혼 등 성소수자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한무지, “성별정정 요건, 성전환자 현실 고려되어야”
이날 진보포럼 첫 순서로 마련된 ‘성전환자 인권과 성별정정 운동’ 토론회에서 한무지 ‘성전환자인권모임 지렁이’ 대표는 한국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성전환자 인권 증진운동의 일환으로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성별정정운동의 개요를 설명했다.
한무지 대표는 “성별이 표기된 신분증 내미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은 신분증을 요구하는 취업, 입학, 관공서업무 등 사실상 모든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성전환자가 가지고 있는 내부적 고통과 사회적 억압의 이중굴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성별정정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무지 대표는 지난 6월 대법원이 내린 성전환자 호적상 성별정정 허가 결정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대법원의 결정을 환영하지만, 성전환자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이 성별정정의 요건으로 외부 성기성형 수술까지 하도록 한 것은 과도했다”며 “성전환수술과 관련한 의료적 가이드라인이 부재하고,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성전환자들은 성별정정을 위해 수술로 인한 위험과 과도한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한다”고 대법원 결정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그는 “완벽한 외부 성기 성형까지를 성전환자로 규정하고, 성별정정을 허가하면 사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성전환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외과적 수술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성별정정 허가 결정을 통해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는 성전환자를 ‘의학적 기준에 맞추어 성전환수술을 받아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정욜,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 대책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문제와 이에 대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의 투쟁 성과와 향후 과제 등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지난 3월 한 동성애자 사병이 군대 내에서 겪은 인권침해 실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당시 군 당국은 원치 않게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난 A씨에게 동성애자 사실을 입증하라며 성관계 하는 사진을 찍어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던 바 있다.
정욜 활동가는 “언론 등에 크게 보도된 사례도 심각하지만, 많은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례가 드러나지 않고 묻혀 있다”며 “특히나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군대라는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자들에게는 고통”이라고 군대 내 동성애자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인권침해를 경험하는 동성애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욜 활동가는 A씨 사례를 통해 군대 내 동성애자들의 인권침해 실태가 폭로된 이후 지난 5월 국방부가 동성애자 인권보장 방안으로 내놓은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관리지침)에 대해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성폭력 가해자 내지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관리지침에서 ‘동성애자들의 병영 내 유입·확산 차단대책 미비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전역 조치 시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등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보호가 아닌 오히려 감시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욜 활동가는 특히 관리지침이 담고 있는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 ‘전환을 원할 시에 전신과 군의관·군종장교와의 상담을 적극 주선’, ‘체육·동아리활동을 통한 성적욕구 해소 지원’ 등의 부분을 언급하며 “국방부는 이를 통해 동성애자들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국방부가 표현한 그대로 동성애자 관리를 위한 지침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욜 활동가는 이어 “동성애자 운동진영의 쟁점들이 대사회적으로 크게 확대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지지와 연대를 확산시키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운동의 성과로 축적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진옥, “‘세이프섹스’, 도덕률로 기능하며 ‘악의를 가진 전파자’ 만들어내”
이어진 ‘섹슈얼리티, 고위험군, 그리고 에이즈’ 섹션에서 변진옥 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 활동가는 HIV/aIDS 문제에 항상 뒤따라 나오는 ‘세이프섹스’ 논리가 담고 있는 정치성과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변진옥 활동가는 1890년대 이후 성과학의 등장과 함께 의학의 표준이 새로운 도덕적 규범으로서 제시되었고, 이를 통해 ‘고위험’의 성적행위들은 금지의 영역으로 선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이즈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세이프섹스’ 개념은 섹스에 대한 행위 규칙이자, 도덕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이프섹스’는 건강위험에 기초한 명령 앞에 즐거움과 욕망이 재조직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다”며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길들어져야 하고,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로 통제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인간이 이성적인 인간으로 추앙받아 마땅하게 된다”고 ‘세이프섹스’가 도덕률로 기능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변진옥 활동가는 이어 “이러한 ‘세이프섹스’의 도덕률을 지키지 못해 초래된 결과는 우리가 정상으로 규정한 섹슈얼리티를 벗어난 쾌락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위협이며, 따라서 이 결과는 당한 사람이 스스로 수긍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면서 정상적 섹슈얼리티나 섹슈얼리티와 무관한 경로를 통해 감염된 사람들은 무고하고 억울한 ‘희생자’로 만든다”며 “무고한 희생자의 존재는 ‘악의를 가진 전파자’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도덕률로서의 세이프 섹스의 본질을 설명했다.
결국 ‘세이프섹스’를 둘러싼 담론은 어떠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자신을 규율할 것을 요구하고, 스스로의 규율에 실패해 질병에 걸리면 ‘네 잘못이다’라는 견고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변진옥 활동가의 주장이다.
변진옥 활동가는 끝으로 “동성애자들이 기존 사회가 변덕스럽게 요구하는 ‘바른생활’에 충실함으로써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본질적 다양성에 대해 강조하고 그런 섹슈얼리티를 누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동성애자 HIV감염인이 많은 것은 동성애 차별의 원인이 아니고 그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거기에 바로 HIV감염인 운동을 동성애 운동이 받아 안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동성애자운동과 HIV감염인 차별 철폐 운동의 연대를 주문했다.
한편, 이틀 간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 당사자들이 직접 준비한 ‘부러진 부메랑! 인권의 날개를 달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도 진행되었다. 전시회에는 한국과 세계 감염인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과 당사자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되었고, 미국의 동성애자와 감염인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김삼권 기자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